백수가 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낮밤이 바뀌지 말자'는 거였다.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로 갈 데가 없다면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고 그러다 더 늦게 자고 더 늦게 일어나고.. 하면서 완전히 낮밤이 바뀌어버리는 경우를 더러 보게됐고, 나는 그러지말자고 생각했던거다. 내 비록 백수여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항상 자던 시간에 자도록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하아, 미래는 예측불허, 낮밤이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나는 최근에 아예 밤을 꼬박 새며 자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밤에 잠들지 못할까봐 낮에 자고 싶어져도 꾹 참았는데도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집에 일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을 수습해야 했고, 나는 며칠간 부동산, 법무사 사무실, 은행을 돌고 또 돌았다. 전화통화도 수차례. 급격한 스트레스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어쩌다 잠들고 일어나면 한쪽 목의 근육이 뭉쳐서 너무 아파 계속 주물러줘야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 우리는 매일 이걸 해결할 방법을 찾고 누군게에게 묻고 발품을 팔며 지내고 있다. 엄마도 역시 밤에 잠을 잘 못주무셨다. 나는 출발 5일을 남기고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취소했다. 비행기 취소 수수료만 24만원이 나왔다.
그런채로 지난주에 경주를 갔다. 남동생네 가족과 경주를 가서 리프트를 탔는데 어린 조카랑 함께 리프트를 타니 더 무섭게 느껴졌다. 우린 다 너무나 무서워서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끊임없이 합창을 했다. 첫번째 돼지가 집을 지었는데 짚으로 지었고 늑대가 나타아 후- 불어서 무너져버렸다는 내용의 노래부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하여간 계속 불렀다. 노래가 멈추면 빨리 노래를 시작하자고 했다. 너무 무서워, 우리 노래 부르자, 하면서 이 공포를 몰아내고자 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해 루지를 타고 내려왔다. 남동생이 먼저 출발하고 그 뒤에 내가 출발하고 그 뒤에 올케랑 조카가 함께 출발했다. 나는 내려가면서 조카와의 거리를 좁혔고 조카는 뒤에서 고모를 잡을거라고 소리지르며 웃었다. 신나게 루지를 타고 내려와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숙소 구경을 한 뒤에 크게 만족하며 우리는 이제 첨성대를 보러가자, 했다.

숙소에 이런 그림이 있었는데 조카는 이 그림을 여러차례 보았다. '궁둥이야?' 이러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그림으르 걸어둔 의도는 뭐죠? 단독주택 숙소라 수영장도 있었는데, 수영장 앞 거실이라 이렇게 엉덩이 그림 걸어둔건가요?
오후 네시였고 태양이 뜨거웠다. 너무 뜨거운 것 같지만 실실 걸어서 첨성대 보고 그런 뒤에 황리단길 가자, 했는데, 첨성대를 가기 위해 걷다가 대릉원 근처로 갔는데 어어? 우리 모두 알지 못했던 <비단벌레 전동차> 라는게 보인다. 오오.. 우리 이거 타고 가볼까? 하고 시간을 보니 15분 후에 출발. 우리 이거 타자, 하고 부랴부랴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서 주변에 앉아 대기를 했다.

네 명이 나란히 자리잡고 앉았는데 내 전화가 울린다. 전동차는 출발하고 나는 통화를 하고 그런 후에는 내용증명의 내용을 검토했다.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끊었는데 내 앞으로는 여러개의 능과 함께 푸른 풍경이 펼쳐졌다. 천천히 달리는 전동차 안에서는 바람이 느껴졌다.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날이 뜨거웠는데 이렇게 달리는 동안 바람이 불고 눈 앞은 온통 초록과 연둣빛이고. 이 순간이 정말 너무 좋다. 그렇게 달리다가 전동차 안에서 첨성대까지 보았다. 아, 이거 너무 좋은데?
나는 앞으로도 힘든 일이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경주로 내려와 이걸 타고 여길 한 바퀴 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힐링될 것 같아. 전동차 안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 20분 이었는데 기분이 한결 나아져있었다. 아, 정말 너무 좋았다.
그리고 황리단길로 갔다. 나는 황리단길이 처음이었다. 온통 낮은 건물만 가득한데 하늘도 예쁘고, 황리단길 걷는 것도 역시 너무 좋았다. 경주에는 여러번 갔었는데 갈 때마다 불국사에 갔었다. 석굴암을 가기도 했다. 그런데 불국사에 가지 않은 지금 이 경주가 그동안 내가 갔던 경주 중에 제일 좋았다. 조카랑 나는 여러번 뛰었다.

아 진짜 너무 예쁘다. 하늘도, 조카도.
다음날은 조카네는 워터파크를 가고 나는 동네를 산책하다가 달렸다.


오후에는 동생네 식구와 미술관에 갔다. 능이 보이는 통창 앞에서 차를 마셨다.

조카는 신나게 구경했다.

본격 전시는 2층 이었다.

역시나 능이 보이는 통창. 너무 좋지 않나요..

전시된 그림이 많지는 않고 미술관 사이즈가 크지도 않았지만, 능이 보이는 통창을 가진 까페가 참 좋아서 이곳 역시도 다시 방문하고 싶었다. 언젠가 다시 경주에 온다면 비단벌레차를 다시 타야지, 그리고 이 미술관에 와야지. 경주에선 이렇게만 해도 충분할 것 같고 힐링이 될 것 같다.
밤에는 숙소로 돌아와 넷이 다함께 족욕을 했고, 조카가 시키는대로 한 명씩 일어나 발 담그고 노래도 불렀다.
아주 좋은 여행이었다.
중세시대 기사 얘기가 나오는데다 마술사들이 나와서 이걸 과연 끝까지 읽을것인가, 하다가 오오 의외로 재미있어 훌렁훌렁 책장 넘겨버린 책이다.
살이사건이 일어나 범인을 찾으려는데 날씨가 궂어 주인공들이 추워 몸을 녹일 것이 필요한 상황.
눈보라에 휩싸인 나룻배는 크게 요동쳤고 손가락과 귀는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팔크와 니콜라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안색을 보니 그들 역시 추위에 떠는 듯했다.
하지만 영주관에 들어가 몸을 녹일 시간은 없다. 문 앞에 쭈그려앉아 손을 비비는 매슈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낮 경비 당번인 모양이다. 날 보고 황급히 일어났지만, 그의 태도를 일일이 지적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자신이 보초를 선 날에 주인이 죽었는데,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태만한 모습을 보이는 건가. 이런 자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
"아미나 님, 지금 마침......"
황급히 변명하려는 매슈의 말을 끊고 명령했다.
"가서 야스미나에게 전행. 잘 마른 걸로 두건이 달린 망토를 준비해 서쪽 탑으로 가져오라고. 나와 기사 피츠존, 니콜라 것까지 세 벌이야. 그리고 꿀이 든 따뜻한 포도주 세 잔도 함께 가져오라고 하고." -p.356-357
오옷? 꿀이 든 따뜻한 포도주?? 이게 뭐지????
아아 너무 궁금해졌다. 따뜻한 술이라면 사케를 마셔본 적은 있지만, 따뜻한 포도주? 게다가 꿀이 든? 그렇다면 이렇게 추울 때 금세 몸을 녹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할 터. 이건 몹시 추울 때 마시면 몸을 녹여주겠지만 추운 날씨탓이 아니라 여러가지 이유로 스트레스 받았을 때도 좋지 않을까? 감기에 걸렸을 때도 어쩐지 좋지 않을까? 막 이런 생각이 들면서 꼭 한번 이렇게 마셔보고 싶어진다. 두고봐라, 내가 언젠가 꼭 한 번 마셔볼테다. 누구나 와인과 꿀 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꿀은 심지어 알라딘에서도 팔았잖아요.
어떤 일들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면 되지만, 어떤 일들은 시간이 흐름과 동시에 무수히 많은 액션들을 취해야 한다.
인생의 이 시점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무릇 해결하지 못할 일이란 없지 않겠는가, 하고 방법을 찾아 시도들을 해보고 있다.
생할의 루틴과 욕망을 다소 잃어버리긴 했지만, 천천히 다시 찾아볼 생각이다.
그런 의미로 하우스메이드 페이퍼도 좀 써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