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공주에 여행갔을 때 아무리 호텔을 뒤져도 내가 원하는 호텔이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공주에서 좋다고 하는 호텔을 잡아 예약하긴 햇는데 관광호텔이라고 되어있긴 했지만 모텔스러웠달까. 그래서 가격도 저렴했다. 패밀리트윈룸인데 10만원. 둘이서 각자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한 방에 두 침대가 아니라 룸 두개짜리 객실이었다. 코를 골기도 하고 화장실도 그렇고 잘 때는 혼자인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전에 e 랑 여행갔을 때는 다행스럽게도 콘도형 레지던스가 있어서 각자의 방에 쏙 들어갈 수 있었고 각자의 욕실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e 와는 레지던스가 아니라면 객실 두 개를 얘약하자고 얘기했었던 터다. 그런데 이번에 공주에 간 k 는 달랐다. 어차피 저렴한 가격의 호텔이니 그러면 객실 두 개 잡자고 내가 말했더니 k 는 혼자 자기 싫다고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어쩔수없이 한 객실에 침대 두개짜리를 선택하게 된거다. k 도 나를 따라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하는걸 좀 두려워했다. 혼자 달리는게 영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는 거였다. e 의 경우도 나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는데 e 는 달리기가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이라 너무 좋다고 했다. 둘다 자신을 내성적이라고 하지만 이렇게나 다르다. 하여간 내가 하고자 했던 얘기는 누군가는 각방 쓰는 걸 더 좋아하고 누군가는 각방 쓰는 걸 두려워한다는 거였다. 나의 경우엔 룸이 두 개인 객실 잡는게 제일 좋기는 한데 아니라면 객실 두 개가 좋기는 하다. 여행가면 어쩔 수 없이 비용문제도 그렇고 둘이 한 침대에 자야 하는 경우가 생기긴 하지만 선호하는 건 역시 혼자 방을 쓰거나 최소한 혼자 침대를 쓰는 것이다. 나는 이게 누구나 다 원하는 건줄 알았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네? 여하튼, 내가 왜 침대 얘기를 하나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허먼 멜빌' 의 [모비 딕] 이기 때문이다.
화자인 '이슈미얼'은 포경선에 타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선다. 어느 포경선에 탈까, 그는 고래를 잡고 싶기도 하지만 그 항해를 통해 세상을 구경하고 싶기도 하다. 포경선에 타서 고래를 잡는 일에 참여하게 되는건 사실 큰 돈을 벌게 되는 일도 아니다. 숙식이야 해결되지만 노동의 대가로 받게 되는 돈 자체는 적다. 하여간 그는 포경선을 타기 위해 낸터킷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그에게는 먹을거리도 필요했지만 숙박할 곳도 필요했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숙박시설을 찾아냈는데, 하아- 세상에 방이 없다는게 아닌가. 주인은 '방이 다 찼으며 침대 하나 남은 게 없다(p.58)' 고 말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작살잡이랑 한 담요를 덮는 건 어떤가? 보아하니 고래를 잡으러 가는 모양인데, 그럼 이런 일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거야." (p.58)
윽- 뭐라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랑 한 이불을 덮고 자라는거야, 지금? 나는 기겁한다. 나만 그랬겠는가. 이슈미얼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나는 한 침대를 둘이 나눠 써서 좋았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한다면 그건 그 작살잡이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며, 당신(주인)에게 그 침대 말고는 정말 내줄 잠자리가 없고 그 작살잡이가 너무 무례한 자만 아니라면, 이토록 추운 밤에 낯선 도시를 더 헤매고 다니느니 그냥 꾹 참고 점잖은 사람과 담요를 같이 덮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했다. (p.58)
아아 이슈미얼은 이런 경험이 없던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좋았던 적이 없다'는 것도 너무 이해되지 않는가. 한 침대를 둘이 나눠쓰는 일은 불편할것이다. 게다가 모르는 이라면 더하지. 그러니까 이런 제안을 앞에 두고 누구나, 특히 나의 경우는 '아니오'를 말할 것이다. 으, 너무 싫어, 싫어, 난 안그럴거야, 라고 순간적으로 바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더 나은 대안을 찾을 방법이 없다면 어떡하는가. 이슈미얼도 말하지 않난. 이토록 추운 밤에 낯선 도시를 더 헤매고 다니느니, 라고 말이다. 이토록 추운 밤에 낯선 도시를 더 헤매고 다녀서 내가 혼자 몸을 뉘일 곳을 찾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이슈미얼이 아고나다 호텔닷컴 있는 시대를 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 힘들게 찾아서 지친 육체를 끌고 숙박업소에 들어갔는데 방이 없어, 그런데 낯선 이와 한 침대를 쓰는건 어때? 라는 제안을 듣는다면, 내가 무조건, 무작정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싫지만, 정말 싫지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가 되지 않을까.
이슈미얼도 그랬다. 이슈미얼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직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작살잡이랑 한 침대를 쓰는건 역시 불편하단 말이야? 하고서는 숙박업소 내부의 벤치에서 자보겠다고 한다. 거친 면을 주인이 대패질을 해줘도 벤치는 딱딱하고 이불도 없고 키에도 맞지 않아 영 잘 수가 없다. 하는수없이 이슈미얼은 아직 본 적 없는 사내와 한 침대를 사용하기로 한다.
한 침대에서 둘이 자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형제라 해도 같이 자고 싶진 않은 법이다. 까닭은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잘 때 온전히 혼자 있기를 원한다. 더군다나 낯선 도시의 낯선 여인숙에서 낯선 이와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데, 게다가 그 낯선 이가 작살잡이라면, 그 거북함은 무한정 불어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선원이라고 해서 특별히 남과 한 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법도 없었다. 육지의 홀몸인 왕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로 나간 선원들 또한 한 침대에서 둘이 함께 자지는 않기 때문이다. 분명 선원들이 한 방에서 함께 자긴 하지만, 다들 각자의 해먹이 있으며, 다들 각자의 담요를 덮고 남과 살을 맞대지 않고 잔다. (p.62)
이 책은 e 와 함께 읽고 있는데 이 얘기를 하면서 e 랑 서로 그랬다.
싫죠
너무 싫지
너무 싫죠
응 너무 싫지. 그런데 어떡해. 그럴 수밖에 없으면 그래야지.
그쵸.
너무 싫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다른 방법이 없는데. 추운데 어디에 있을지 모를 여인숙을 찾아 나설것인가. 그렇게 간신히 찾았다고 했을 때 그곳에 침대가 있을 확률은? 침대가 있을 확률을 기대하며 무작정 나서지만 내가 길바닥에서 잘 확률은? 아아.. 때로는 싫지만, 정말 싫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 싫다고 마냥 궁시렁거리고 불평만 늘어놓고 울기만 한다고 아무것도 해결되지가 않는다. 인간은 때로는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자면, 한 침대를 나눠쓴 작살잡이와 이슈미얼은 굿 프렌드가 되기는 한다. 하하하하하.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책을 샀다.

[세 번째 전장, 자궁절제술]은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의 신간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가 없다. 직접 읽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책의 존재를 알자마자 구입했다.
[몸에 갇힌 사람들]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4월의 도서이다. 받아보니 사이즈도 작고 얇기도 해서 금세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야 뭐 딱히 몸을 압박하며 사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서 자유로운 육체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응?)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압박으로부터, 그러니까 신체가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는 규정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획일화된 몸으로 만드는게 뭐 그리 좋은 일이겠어요. 육체를 자유롭게 풀어두세요. 나는 너무 자유롭게 풀어뒀지만.. 하하하하하.
[호르몬 체인지]는 트윗에서 '서브스턴스의 소설판' 이라는 리뷰를 보고 구입했다. 아직 그 영화 안봤지만.. 나 왜 극장 갈 시간 없어?
[럭키스트 걸 얼라이브]는 넷플릭스에 영화로 나와 있다는데(드라마였나) 책으로 한 번 먼저 보자, 하고 구입했다.
[그해 봄의 불확실성]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 시그리드 누네즈의 책을 딱히 좋게 읽지 않았던터라 나의 관심 작가가 아닌데, 이 책의 소개에서 '결국 (이 책의 주인공인)작가는 앵무새 유레카와 Z세대 이상주의자 에코 테러리스트이며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는 대학생 베치와 함께 기묘한 동거 생활을 시작한다.' 라는 구절을 보고 흐음, 한 번 읽어볼까 하고 구입했다. 코로나 시대의 이야기라고 한다.
[괴물들]은 중고로 나와서 구입했다. 처음 폴란스키 감독 이야기만 일단 읽었는데, 나에게 예술이 중요하긴 하지만 미친듯이 막 중요한 건 아닌건지, 미성년자 성착취범 인 감독에 대해 그의 작품은 훌륭하다고! 하면서 갈등하지는 않기 땜시롱 작가의 글이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다른 사례들도 있을테니)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다른건 몰라도 미성년자 성착취한 놈에 대해서라면 나에게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일들-모든것이라고 말하진 않겠다-에 있어서 우선 순위라는게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에게 '미성년자 성착취범을 배제'하는게 '그의 뛰어난 작품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선한다. 그 편 읽고나니 그 다음부터 책장이 안넘어가서 일단 멈춤 상태이다. 난 하여간 진짜 미성년자, 아동 대상 범죄자 새끼들에 대해서는 코딱지만큼의 여지도 주고 싶지가 않고 죄다 죽여버리고만 싶다. 그런데 로만 폴란스키.. 비터문 도 감독했네요? 비터문.. 오천년전에 봤는데 요플레..... 그거 비터문 이었지?
하여간 우디 알렌 감독을 내가 좋아하긴 했었는데 이젠 좀 징그럽다.
[네버 라이]는 프리다 맥파든의 신작이라고 해서 얼씨구나~ 하고 잽싸게 주문해서 읽었는데 지금 책탑 사진에 없는 이유는 회사 동료를 빌려줬기 때문. 프리다 맥파든의 [하우스 메이드] 재미있게 읽고 '이런 책 또 있어요?' 물어봤던 동료라 빌려줬다.
달리기 얘기도 쓰려고 했는데 페이퍼가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자.
오늘의 간식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조합, 카스테라와 흰우유 이다.



저 책들 사고 멀티수납 북엔드 받았는데 너무 좋아서 ㅋㅋㅋ 어제 책 또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일단 받자마자 책만 꽂아본 사진이고 이 후에 저기 서랍에도 뭐 막 넣었고 ㅋㅋㅋ 옆에도 막 뭐 꽂았더니 책상이 조금 깔끔해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하여간 이때 어린왕자 받고 어제는 이거 말고 다른거 신청했다. 글자 써진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