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잠깐 어떤 작가님과 예기치않게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 분은 나에 대해 글쓰는 걸 들었다며 브런치에 연재하시냐 물으셨다. 아니라고, 알라딘에 쓴다고 했더니 알라딘에 글 쓰는 폼이 생겼냐고 하시는거다. 아뇨, 알라딘에 원래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국내 작가라면 어쩐지 알라딘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모르시는 분들도 있는거구나 하면서 어쩐지 좀 서운했달까. 내가 알라딘을 하니까 다른 사람도 알라딘을 알 것 같은, 그런 자기중심적 느낌적 느낌, 뭔지알쥬?
그리고 어제, 김기태의 단편집을 읽다가 이런 구절을 만났다.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 넣어둔, 아직 읽지는 못한 이름들을 떠올렸다. 스피박, 버틀러, 아감벤, 랑시에르, 라투르, 브라이도티, 차크라바르티, 마사타케, 흰테게르키, 량밍쉬고우, 음뚜아스부아 …… 하지만 자신이 뷔페식 속류 인문학을 좇는게 아닌지도 의심했다. -p.177
'나는 『자본론』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수업을 했다.'
그러므로 『자본론』의 서문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교실에 앉아 대표적인 석학이 몇 해전 내놓은 전면 개역판 세트를 검색했다.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었고 쌓아둔 포인트가 넉넉했으며 '지금 주문하면 오후 여덟시까지 배송'이었다. 귀가하면 서재부터 정돈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곽은 교실 전등을 끄고 문단속을 했다. -p.177
김기태의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의 단편 <보편 교양>의 화자는 국어 교사이다. 고등학교 3학년의 선택과목으로 '고전읽기'를 만들었는데, 그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밀린 잠을 보충하며 그 수업시간에 깨어 있으면서 수업을 진지하게 듣는 아이들은 고작해야 두세명이다. 그 중에 한 명이 수업중 언급된 마르크스에 흥미를 느껴 마르크스 전작읽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고, 그 아이는 결국 서울대에 합격을 하게 된다. 졸업식날, 화자 곽에게 와서 선물을 주었는데 그 안에는고등학교 시절을 통틀어 가장 좋았던 수업시간은 고전읽기 시간이었다는 글이 적혀있었다. 그런 곽이 다음 학기의 고전읽기 수업을 준비하다가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을 생각하고,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으니 다시 읽어보자 생각하며 책을 검색해보기도 하는거다.
인터넷 서점의 장바구니? 어떤 인터넷 서점일까? 설마.. 알라딘?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다가 그 다음 인용문에서 '포인트가 넉넉했'다는 구절을 보고 흐음, 알라딘은 포인트가 아닌데.. 했다. 포인트는 예스랑 교보 아닌가. 그런데 예스랑 교보를 다시 들어가니 둘다 '지금 주문하면 오후 여덟시까지 배송' 같은 구절은 .. 안나오지 않았나? 이 배송 부분은 작가의 창작인걸까? 그러니까 특정 인터넷 서점을 떠올리지 않게 하려고 만들어둔 설정인걸까? 지금 주문하면 몇 시까지 배송, 이거는 쿠팡 멤버십 아닌가? 내가 저런 구절을 어딘가에서 보긴 했었는데, 지금은 쿠팡 불매로 멤버십 해지해가지고 확인이 안되네? 설마 책을.. 쿠팡에서 사는걸까? 얼마전에 누군가로부터 쿠팡에서 책 샀다는 얘기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김기태 님, 알라딘.. 안하세요? 작가들도 독자들의 리뷰를 찾아볼텐데.. 네이버에서만 찾아보나요? 책은.. 예스나 교보에서 사나요? 김혜수 는 알라딘에서 산다고 했는데.....
인터넷 서점 얘기 나오면 알라딘일까? 자꾸 생각하는 나는.. 알라딘을 사랑하는걸까..
다락방은 알라딘에서 책을 삽니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을 담아두고요. 가끔 교보에서도 사고 예스에서도 사고 그러지만, 그것도 확 줄었습니다.
하여간 자본론 얘기가 책에서도 나와서 말인데,
며칠전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저명한 교수가 함께 책을 읽어 보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저명한 교수라고 광고를 해서 그렇지 나는 그 교수를 모른다. 하여간 일년동안 다양한 분야의 필독서를 완독하자는 취지인 것 같았는데, 한 달에 9만원씩 지불하는거였다. 한 달에 9만원씩 내면 이 교수와 함께 다양한 필독서를 완독하게 된다는 것. 대충 기억나는 책으로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있었고 존 롤스의 정의론, 그리고 한강의 채식주의자,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 라이어... 이것 말고도 하여간 책들의 리스트는 다양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기를 하진 않았지만 한달에 9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니, 아마도 책값을 포함한게 아닐까. 그러다가 아, 돈은 이렇게 버는거구나 싶었다. 야... 책 같이 읽어 완독하자는 거, 나는 2018년 부터 해왔는데... 그렇게 벽돌책 뽀갠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그걸로 돈을 벌지 않는데...... 이거, 돈벌기가..가능한거였어? 이걸 돈받고 해? 책 같이 읽는걸 돈받고 한다고? 오, 자본주의여.....별걸로 다 돈 벌 수 있는 것이었구나....그러니까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도 이걸로 돈벌어야지!' 생각한게 아니라 '이런 걸로도 돈을 벌어보겠다고?' 이런 마음이었달까. 그건 아마도 내가 평소에 책을 읽는 사람이고, 내 주변(이라기 보다는 알라딘)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채워져서이겠지. 그게..가능한건가요.. 그 프로그램의 매출과 이익에 대해 궁금해지네.....그런게 생겨났다는 건 그런 수요가 있을거라고 짐작해서가 아닌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필요한것이겠지...그렇겠지.....그게 돈을 버는 사람은 아닐 거라는 데 오백원 건다. 그러고보면 자본주의, 없어선 안될 것을 시장에 내놓는게 아니라,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너네 이거 필요하게 될거야!' 로 움직이는 것 같다. 그전에는 필요성에 대해 전혀 인지 못하다가 갑자기 이런 프로그램 마주하는 순간 '오, 이거 나 필요하네!' 이렇게 되어버린달까. 일단 공급한다, 그러면 수요가 따라온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놈의 인스타그램, 이거에 혹하면 안되는데.
엊그제 자기 전에 인스타그래 봤다가 빅사이즈 가슴을 안정적으로 모아주고 단단하게 받쳐주고 어쩌고..하는 브라 광고를 보게 되었고, '나는 이걸 사면 분명 나한테 안맞아 후회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주문을 해버렸다. 영상 속 모델이 너무 예뻤던거다. 그게 이 브라를 해서 예쁜게 아니라 원래 예쁘기 때문에 이 브라의 광고 모델이 되었을텐데, 어쩐지 이 브라를 하면 내 가슴도 이렇게 되고 내 모습도 이렇게 될 것 같은 미친 느낌적 느낌.. 으로 브라를 주문했고, 한 후에도 '나는 그렇게 안될거야' 하면서 드디어 배송되어 받아본 순간, 그리고 착용해본 순간... 내가 주문한 브라는 꼭지 가리개가 되어서 내 가슴을 아무것도 받쳐주지 못하였고.... 나는 바로 반품을 접수했다. 하.. 쉬바 택배비만 날렸네... 어리석은 나여, 안될줄 알면서도 대체 왜 산 것이냐. 나는 사던 데에서 사던 거만 사자.. 가서 직접 착용해보고 사자. 모델들이 입는 브라 같은거, 나한테 안맞는다는 거, 십수년간 경험해보지 않았니? 그런데 대체 왜... 이게 다 모델한테 반해서다. 너무 화딱지가 나서 브라 반품 접수한 뒤에 그 광고 계정주 차단했다. 연달아 나오는 다른 빅사이즈 브라 광고주들도 차단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봤자 또 보여지겠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놈의 자본주의는 항상 나를 노려. 나는 자꾸 거기에 당해버리고 만다. 안돼, 꿋꿋하게 버텨, 쓰러지지마!! 내 가슴, 아무 브라나 막 할 수 있는 그런 가슴 아니야. 정신 차렷!!
김기태 책을 요즘 자기 전에 읽는데 한두장도 제대로 못읽고 자꾸 잠이 쏟아져. 그건 책이 하는 일인가요, 내 육체가 하는 일인가요? 안되겠다 싶어서 오늘은 꿀같은 출근길에, 정말 귀중한 출근길에, 정치와 역사의 젠더였나.. 젠더와 역사의 정치였나 하여간 그 책을 읽는 대신 김기태 책을 읽었는데, 와 너무 잘 넘어가고 단편 하나 후딱 끝내서, 역시 독서는 출근길이 짱이다 했다. 그렇지만 정말 귀한 출근길 독서... 여성주의 책 읽어야 되는데........ 흠흠. 아직 다 안읽었지만 김기태 책의 별은 이미 정해졌다. 그것은.. 몇개일까요?
이만 총총.
아, 요즘 퇴근길에는 아마존 프라임에서 잭 리처 시즌3 보고 있는데, 너무 꿀잼이다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드라마 시작 전에 원작이 persuader 라고 되어있어서 오, 하고 찾아봤더니 내가 급박하게 사두고 안읽은 책, 『처단』이었다.
아 잭 리처 진짜 너무 좋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