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에 <알쓸신잡>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할 때, 나는 불만이었다. 회차가 거듭되면서 좀 달라진걸로 알고 있지만, 처음 패널들은 죄다 남자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잡학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올텐데, 그렇다면 그 프로를 보고난 후의 인용 역시 죄다 남자들의 것일거란 말이지. 이게 너무 짜증이 나서 당시에 트윗에다가 그렇게 남자들만 데려다놓으면 그 후에 인용 출처도 다 남자들의 것이다 라고 적어둔 적이 있었더랬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읽는 도나 해러웨이가 내가 그 당시 느꼈던 것에 대해 얘기해줬다. 더 지적으로, 더 상세하게. 크-
근대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가부장제적 목소리로부터 물려받았다. 생물학은 아버지의 말에 의해 잉태되고 창시된 생명과학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부계로부터 지식을 전수받았다. 그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자 갈릴레오의 말이며, 베이컨의 말이고 뉴턴의 말이자, 린네의 말이고, 다윈의 말이었다. 반면 육신은 여성의 것이었다. 그리고 말씀은 자연스럽게 육신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젠더화되어 왔다(engendered). 샌드라 길버트(Sandra Gilbert) 와 수전 구바(Susasn Gubar)는 19세기 여성작가들을 연구하면서, 목소리를 구성하고, 권위를 가지고, 텍스트를 저술하고, 이야기를 말하고, 말씀을 출산하려고 애쓴 여성들의 노고에 관해 논의한다. 저술한다는 것은 창시하고 이름 짓는 권력을 갖는 것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배워야만 했던 우리의 자매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을 생산하고자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 의해 합법적 권위를 부여받았던 텍스트인, 자연의 책(book of nature)을 읽어내야만 했다. -p.128~129
처음부터 어려워서 간신히 100쪽을 넘기고 있는데 그래도 어렵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어려운 단어들이 아닌 것 같은데, 단어들의 어렵고 낯섦이야 크리스테바를 이길 수가 없는데, 그렇게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장은 왜이렇게 어려운걸까. 도나 해러웨이 읽는게 처음도 아닌데 책장 안넘어가서 미치겠다. 그런데 벌써 3월 21일. 미치겠구먼. 어쨌든 열심히 읽어나가야 한다.
페미니즘은 새로운 이야기를 탐색하고, 이를 통해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명명할 언어를 탐색하는 활동이다. -p.148
여자사람 학자가 더 많아지고 또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 여성이라는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남자들의 말로 우리의 육신을 구성할 순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만들어진 몸은 어떤 몸인가. 도나 해러웨이는 젠더화된 몸이라고 했다. 젠더화되기 보다는 내가 되기 위해서 읽고 쓰고 공부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걸 하고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