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책장을 보면서 한숨이 났다.
책은 자꾸 사서 점점 더 많아지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항상 그 자리에 꽂혀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보였던 까닭이다. 이미 읽은 책이고 다시 읽진 않을 책이었으니 팔아버린다면 좋겠지만, 그건 그 책들을 내게 준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것들 중 일부는 작가가 직접 내게 싸인해준 책들이 있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책은 낡아가고, 이렇게 여기에 꽂혀 있으면 공간의 낭비이며 책의 낭비이기도 하지만, 작가 싸인이 되어 있으니 팔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누구한테 선물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면 이걸 어쩐담? 나는 이 책들이 어딘가에서 본래의 기능대로 책으로 읽히길 바랐다. 종이더미나 폐품이 아니라. 그래서 곰곰 생각했다. 책의 쓸모를 가지면서 그러나 나아게 이 책을 준 사람들에 대해 무례하지도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다 나는 기증을 생각했다.
인터넷에 중고책 기증이나 기부로 검색해보면 국립중앙도서관이었나 어딘가 나오긴 하지만 거긴 작가 싸인본에 대해서는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가게 같은 곳은 판매가 가능한 것들을 받았다. 작가 싸인본은 판매가 불가할 터였다. 자, 그렇다면 나는 이걸 어디에 줄까.
이 책이 책의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이 생기면 일단 생필품을 사야해서 책으로는 차마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곳.
게다가 성인을 위한 책들이니 성인들이 있는 곳.
그렇게 나는 미혼모돌봄센터 여러군데를 검색해 이메일을 보내거나 게시판에 문의를 남겼다. 혹시 제가 읽고 소장했던 책들을 보내드리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까요? 작가 싸인본도 있지만 책의 상태는 좋습니다, 도움이 된다 하시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하고. 그리고 주말 밤에 책을 읽었다. '존 버거'의 《킹》이었다.
노숙인들에 대해 얘기한 책이었는데, 책의 마지막, 역자는 이 책의 번역 인세 전부를 노숙인 복지시설인 마리아마을에 기부했다고 했다. 오? 거기도 한 번 물어봐야지. 나는 노숙인 복지센터에도 같은 게시물을 남겼다.
답변이 온 곳도 있고 새 책만 받는다는 곳도 있었고 감사하지만 사양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있는 책도 읽지 않고 있다고. 그런데 노숙인 복지센터와 미혼모 쉼터 두 곳에서는 감사히 받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한 곳만 연락이 오면 그 곳에 몽땅 보낼 생각이었는데, 세 군데에서 답이 오는 바람에 책을 나눠 보냈다. 가장 먼저 답을 준 곳에 가장 많이 보냈고 그 다음엔 그보다 더 적게, 그리고 그보다 더 적게. 어쨌든 그렇게 주말 동안 수십권의 책들을 박스에 넣어 보냈다. 그렇다고 책장에 여유가 생기진않았다. 신기한 노릇이다.
그리고 책을 샀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는 2024년 3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리스트에 포함했다. 이미 가진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준비된 자들입니다!! ㅎㅎ
《너의 퀴즈》는 구매하면서 '으.. 실망하고 별 셋 줄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어쩌면 아닐 수도 있겠지' 했건만, 역시 딱 별 셋의 소설이었다. ㅎㅎ 번번이 자꾸 도전하는 나여, 외롭네?
어제 잘 때를 놓쳐서인지 밤새 잠을 잘 못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했다.
오늘 열심히 일을 해야지.
역시 작업실에서 글 쓰는 능률이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