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수술과 근육
이번 9월호 정희진의 오디오매거진은 만족도가 매우 크다. 그간 들어온 정희진 매거진 중에서 만족도 크기가 제일인 것 같다. 정희진 선생님의 매거진을 듣는 일은 즐겁고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하면서 때로는 동료나 친구들에게 들은 걸 전달하기도 하지만(물론 여기에도 쓰고) 때로는 흐음, 딱히 동의되진 않네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10 이란 숫자를 최고점으로 볼 때 6~7의 만족도를 얻을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세상에 13정도의 만족도를 주는 것이다!! 이번 9월호는 뭐 하나 어긋남 없이 내가 온전히 그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특히, <마담 버터플라이> !!
고등학교때 음악 선생님은 남자였는데 본인이 성악 동아리에 들어 있었다. 동아리라기엔 좀 적합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고, 아무튼 아마추어 합창단 소속이었는데, 하루는 <열린음악회>에 본인이 속한 합창대가 출연한다며 오라고 해서 학교 아이들이 다 열린음악회 관람을 갔더랬다. 내 의지로 간 건 아니었던 것 같긴한데, 그런 일이 있었다. 음악 선생님은 클래식을 좋아했던 분이셨는지, 숙제중에 음악회 하나 보고 감상문 써오기도 있었고(티비 시청으로도 가능했다), 실기 시험은 <오 솔레미오> 였다.
그때 음악 감상해보라며 마담 버터플라이 오페라를 틀어주신 적도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때 마담 버터플라이 라는 오페라의 존재를 처음 알았고 음악이 유명하다는 것도 선생님 덕에 알았다. 그때 들었던 음악이 기억나는 건 아니고, 선생님이 이야기해준 굵직한 것, 백인 남자와 일본 여자(라고 나는 기억한다)의 사랑이야기,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더랬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는데, 한참 후에 어딘가에서 '오리엔탈리즘' 으로 마담 버터플라이를 얘기하길래, 아 오리엔탈리즘 잔뜩 보이는 영화인가 보구나, 하고 말았더랬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딱히 볼 생각도 없었다. 그러다 이번에 정희진 선생님 덕분에, 이 영화에서 그걸 비판하고 있다는 걸 알게된거다.
마담 버터플라이 라는 오페라의 여자주인공을 맡은 '송'을 사랑하게 된 '르네' 는 기혼남임에도 불구하고 송에게 빠져들고 그런데 알고보니 송은 스파이었고 심지어 남자였다는 게 아닌가. 아니, 내가 그건 몰랐네?! 영화를 보지 않으니 그걸 알 리가 있나. 그렇게 선생님이 이야기해준 영화의 스토리도 충격이었고 그걸 이야기하며 들려준 선생님의 생각들도 너무 듣기에 좋았다. 막 짜릿해져서 다 듣기도 전에 중간에 멈추고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직 다 보지는 못했는데, 나는 방송을 듣고 이미 아는 상태로 봐서 그런건지 너무 여주인공이 남자 같은 부분 … 지하철에서 보기 시작했다가 둘이 막 키스하려고 해서 멈추고 나중에 그 뒤를 좀 더 보고 그러고 있다.
백인 남성이 아시안 여성에게 기대하는 여성성과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이야기는 그 자체로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마지막에 백인 남자가 감옥에서 진한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자살한다는 결말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 충격이었다. 아직 영화를 다 보지 못해 보고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어떤 사랑은 너무 깊고, 그런데 내가 한 사랑이 내가 한 사랑과 달랐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힘들지에 대해서도 영화가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한 너가 그런데 너가 아니야? 그렇지만 너가 너이기도 한거잖아? 내가 사랑한 건 무엇인가, 누구인가. 하는 것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가 그리고 이 이야기를 또 전달해주는 선생님의 생각들이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완전 흥분해서 콩국수 먹으면서 동료에게도 얘기해줬다. 콩국수 11,000원인거 실화냐 ….
데이빗 크로넨버그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 선생님도 크로넨버그 좋게 말하는 미친놈이라고 하셨는데, 내가 진짜 크로넨버그 너무 좋아해서 <폭력의 역사> 보고 진짜 너무 쑝 가가지고 <이스턴 프라미스>는 극장으로 보러 달려갔었다. 그 때 같이 본 친구들은 좀 힏들어 했는데, 나는 폭력의 역사를 거쳐 이스턴 프라미스 까지 너무너무 좋았다. 진짜 너무 좋았다. 내가 과거에 그래서 크로넨버그 예찬하는 페이퍼 쓴 게 있을텐데. 너무 오래되어서 찾기가 힘드네.
<폭력의 역사>는 오래전에 폭력배였던 남자가 조용히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그리고 잊고 살려고 조용하고 작은 마을로 이사가 카페 사장을 하는데, 거기에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다가 뉴스에 나오게 된다. 그렇게 얼굴이 공개되어 버리고 그러자 기존에 그의 폭력을 알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씩 그를 찾아오는 거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또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과 싸우며 그들 모두 죽여버리는데, 그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지금 죽은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어서 또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 제목도 정말 잘 지었지만 내용도 너무나 기가 막히다. 내가 과거에 저지른 것으로부터 나는 피할 수 없다. 진짜 너무 재미있게 봐가지고 <이스턴 프라미스> 보러 극장으로 고고!!
이스턴 프라미스도 역시 엄청난 폭력이 나오는데, 그래서 같이 본 친구들이 보기 힘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상적인 건 대중목용탕의 폭력씬이다. 대중 목욕탕이니 당연히 다들 옷을 다 벗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공앞에 주인공을 해치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래서 목욕탕에서 다 벗고 엄청 폭력적으로 칼까지 나오면서 막 싸우는 거다.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한데, 내가 그거 보면서 막 '얘들아 밖에 나가서 옷 입고 싸워, 목욕탕에서 싸우다 미끄러지면 머리 깨져' 하고 또 '주인공 저러다가 고추 잘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걱정이 ㅠㅠ 그것밖에 생각나는 게 없군. 흠..
이번호 매거진에서 다룬 KAL 기 폭파사건에 대한 얘기도 너무나 흥미로웠다. 내가 어린 시절 일어난 일이고 지금은 완전히 잊고 살았는데, 그 때 목격자이자 가해자이자 생존자가 김현희 하나 뿐이고, 피해자와 비행기 자체가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와 이번호 매거진 너무나 알찬 부분. 너무나 재미있게 들었다.
자, 그리고 강동원 얘기를 좀 더 해볼까.
강동원이 잘생겼다는 걸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강동원에게 크게 매력을 느낀다거나 반한다거나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그냥 저기 잘생긴 남자 배우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유퀴즈를 보게 된거다. 채널 돌리다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것을(유퀴즈가 늘 재미있진 않다), 강동원이라서 오호라, 하고 보게 됐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찍고나서 일년정도 너무나 힘들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강동원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상담을 받았어야 했던건데 그 때는 몰랐다, 고 얘기했다. 몰라서 괴로움을 감당하고 지나온 사람들이 강동원 말고도 아주 많겠지.
그리고 강동원은 중간에 그만두는 걸 너무 싫어한다고 했는데, 그 말을 하는 강동원이 너무 좋아서 내가 그 날 밤, 취중에 북플을 열게 된거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내게, 성실함은 중요한 덕목이다. 성실하기는 사실 재능없기의 다른 이름인 것 같다는 생각을 오래 해왔었는데, 그러나 꾸준히 성실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해낼 수 없는 것이기에 이젠 그것이 재능이라는 것도 안다. 꾸준히 열심히 해내는 사람들을 그래서 나는 좋아하고,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뭔가를 해도 해내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게 강동원의 중간에 그만두는 거 너무 싫다는 말은 너무 매력적으로 들리는 거다!!
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말 뿐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나는 약자의 편이야, 나는 한 말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야, 나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야 등등.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말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행동이 보여준다. 아무리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말해도 행동이 그것을 받쳐주지 않으면 그저 허공에서 사라지는 부질없는 말뿐인 사람인거다. 이걸 할거야, 저걸 해줄게 말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걸 하고 저걸 하는지는 행동이 결정한다. 해야 하는거지 하겠다는 말이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기대가 별로 없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내 스스로에게 쪽팔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 내게 '가구 사러 갔다가 가구가 너무 비싸서 '내가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실제로 가구를 만든 강동원은 너무 멋진 거다. 강동원은 가구를 만들어서 주변에 선물하기도 했고 집에 몇 개 가지고 있기도 하단다. 아, 너무 멋지지 않은가. 그런 한편,
저걸 내가 해보지, 라고 생각하는 일은 또 얼마나 피로한가. 물론 가구 만드는 것은 적성에 맞고 재미도 있어서 계속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을 해내는 과정에 왜 피로가 없었겠는가. 내가 이걸 왜 하는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때도 있지 않았을까?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이 일', 즉 배우 일을 너무 좋아하고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죽을때까지 하고 싶다는 강동원이 부러웠다. 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끔 일로부터 뿌듯함을 얻기도 하지만, 그러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결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하고 있을 뿐. 나는 이 일이 아닌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 책읽기라든가 글쓰기라든가.
아가 조카가 아파서 소아과를 찾아야 할 때면 남동생은 언제나 그 누구보다 먼저 튀어가서 대기1번으로 기다린다. 주말에는 예약도 받지 않는 큰 병원에서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소아과 문제는 시사인에서도 한 번 다룬 적 있지만, 정희진 선생님 오디오 매거진에서도 얘기한 바 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로 의대생들이 몰리는 이유, 그런데 거기에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셨더랬다. 소아과는 정말 필요한데 너무 적고,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 하염없이 대기하고 혹은 진찰도 받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게 너무 안타깝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할까, 소아과 의사?'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보게 되는거다. 소아과 의사가 하나라도 더 필요한데 누구한테 강요할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스스로 해내는 수밖에 없지 않나, 하다가. 이건 내가 '파김치, 어디 나도 한 번 해보자!', '빵, 어디 내가 한 번 만들어보자'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당연히 깨닫는다. 이건 재료를 준비하고 실패하고 그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플레이팅 못한다고 껄껄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니까. 일단 나는 학창시절 공부도 못한데다가 문과였으니, 의대를 가기 위해 수능을 보는 것 자체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었다. 5~6년 공부한다고 된다는 보장이 없겠지만, 그래, 그렇게 의대에 합격했다고 치자. 그러면 또 의대에서 6년을 보내야 하는거 아닌가. 그 공부 다 따라가면서. 그러면 나는 … 환갑?
어제 순댓국에 소주 먹으면서 이 얘기하니 동료는 백세 인생인데 환갑에 닥터 시작하라고 뭐 어떠냐고 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수능 다시 봐서 의대갈 자신이 없고, 그건 나에게 안될 영역이라는 것도 너무나 안다. 가구 만드는 강동원, 거창고에 한양대 공대 나온 강동원, 저기, 소아과 의사 도전해 주시면 안될까요? 부탁합니다. 저는 정말 소아과 의사는 안되겠거든요. 잘 한 번 생각해봐주세요.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