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는 머리가 생각을 멈춰서 책을 읽을 수가 없는데 오디오매거진이나 오디오북도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게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영상물이었고, 그렇게 한때는 액션물을 쫙 훑다가(본 시리즈를 모두 다시 보았다) 전체관람가 영화를 보기도 했고 예전 무한도전을 보기도 했다. 무한도전은 보다가 포기했다. 인기있다는 드라마들을 시도해보기도 했는데 나는 드라마를 잘 못보겠다. <더 글로리>는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고 <오징어 게임>도 안봤다. 최근에 SNS 에서 돌아다니는 영상을 보고 이하늬 주연의 <원더우먼>을 시작했는데 이것도 처음에 재미있게 보다가(며느리가 시아버지한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장면이 좋았다) 시들해졌다.
그러다 며칠전부터 시작한게 이 <사내맞선> 이다. 제목부터 디게 안보게 생긴거고 제목부터 너무 처음부터 끝까지를 짐작할 수 있는 드라마. 존재를 진작에 알았지만 으- 너무 뻔하다, 너무 시대에 역행하는 스토리야.. 하고 무시했었는데, 주연 여배우를 무슨 짤에서였나 보았고 너무 예쁜거다. 사내맞선에 나온 배우라는 걸 알고 검색했더니 걸그룹 출신인가 보았다. 오, 가수로 먼저 데뷔하고 연기를 하는구나. 그런데 진짜 너무 예쁜거다.
대학시절 복학한 선배가 송윤아 얘기를 하면서 '뭐 저렇게 예쁜 사람이 다있지?' 했다는데, 나는 이 사내맞선의 여배우를 보고 '뭐 저렇게 예쁜 사람이 다있지?' 했다. 그래서 연기를 보고 싶어서 이 드라마를 보게됐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아직 끝까지는 안봤고) 사람들이 짐작하는 바로 그 스토리대로 이어지고,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이게 말이 되냐 싶은 설정들이 좌르르 쏟아진다. 무엇보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나는데, 20대의 젊은 남자 주인공이 대기업의 사장인데 하버드대를 수석 졸업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 피아노도 수준급이며 얼굴과 신체가 남들보다 뛰어난... 껄껄. 피아노 언제 배웠냐? 여튼 뭐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 '다이어트는 개나 줘버려!'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고.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내가 근무하는 부서에서 제일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 '이사'였다. 당시의 나는 20대 중반이었고, 아마 이 회사에 들어오기 몇해전에 인기 있던 드라마가 <이브의 모든것>이었을 거다. 거기에 채림이 뉴스 앵커로 나오고 방송국 '이사' 가 장동건이었는데, 이 회사에 입사한 후 얼마 안돼 친구들을 만나 돗자리 펼쳐놓고 피크닉 하다가 회사 얘기가 나왔고 그 때 친구들이 내게 물었다.
"니네 이사님도 장동건 같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냐, 아냐, 친구들아. 현실속의 이사님은 전혀 장동건 같지 않아. 뭐 들여다보면 장동건이나 비장동건이나 그 내면은 똑같아서 한남문화에 찌들어있지만, 그건 지금의 내가 하는 얘기고, 그 때의 나는 전혀 오해다, 장동건 같은 이사는 텔레비전에나 있다. 우리 이사는 안씻어서 냄새 나고 사무실 안에서 담배 피고 쭈굴쭈굴하고 안웃긴 농담이나 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부서 이사님만 그랬던 건 아니고, 다른 부서의 팀장들도 다...
게다가 내가 다니는 회사가 제조업이라서 임원들은 죄다 늙은 남자들인데(여자중에 가장 높은게 나다 ㅠㅠ), 코로나 이후로 그걸 안하지만 코로나 전에는 전체 임원들 다 올라와서 매달 회의가 열렸다. 모두들 양복 입고 어느 정도 일에 경력 있는 중년 이상의 남자들이었는데, 그들이 회의를 마치고 나간 뒤에 회의실에 들어가면 진짜 지독한 냄새가 났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이고 어느정도 규모있는 회사의 임원들이니 나름 관리들도 할텐데 어째서 그들이 한 공간에 있다가 나가면 그토록 지독한 냄새가 나는지. 다른 여직원과 들어가서 얼른 환기하자 환기하자 이러면서 환기를 했던 세월이 길었다. 코로나 이후로 하지 못해서 좋은 것들이 몇 개 있는데 이 임원회의도 그중 하나다. 정말 지독한 냄새가 풍긴다.
이 냄새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친구들한테 도대체 어느 정도 돈도 벌고 권위도 있고 매일 양복 입는 중년 이상의 남자들에게서 왜 그런 냄새가 날까, 그 냄새의 정체가 뭘까? 했더니 친구들은 저마다 의견을 보탰다. 그거 정수리 냄새야, 그거 귀 뒤 냄새야, 그렇게 귀 뒤를 안닦는다네 남자들이... 뭔 냄새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사들 몇 명 모이고 밀폐된 공간에 잠깐 두면 그 안에서는 해괴망측한, 보지 않았다면 인간의 냄새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냄새가 난다.
내가 경험한 건 냄새나는 회사원들이었는데 드라마에서의 젊은 남자 사장이 공부도 잘해 운동도 잘해 피아노도 잘쳐 심지어 요리도 잘한다 ㅋㅋㅋ 이 모든걸 잘하면서 잘생기고 매너있고 돈까지 많은... 네.... 그래, 로맨스를 위한 재미를 위한 극적인 설정이겠지, 하면서 보고 있다. 그래, 로맨스 드라마의 판타지가 이 안에 다 있어. 가난한 여주가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다 재벌집 아들하고 엮여버리는.. 여주가 27살로 나오는데, 사람마다 자기가 경험하는 바가 다르고 또 자기에게 주어진 어떤 운명도 다르고 그러겠지만, 내가 여주의 거의 두 배를 살았는데 나는 저 남주처럼 돈 많은 남자는 지인으로라도 없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렇게 잘생기고 돈많고 공부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고 몸매도 뿜뿜하면서 심지어 나를 좋아해? ㅋㅋㅋㅋㅋㅋㅋ판타지다 판타지 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도 이 젊은이들이 썸타고 긴장하고 막 애태우고 이러는게 너무 재미있어서 역시 이야기는 사랑이 최고다. 아 로맨스 봄에 내 마음에 불을 질러... 이러면서 보고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내가 로맨스는 판타지다, 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아니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설정이 있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로 이 대기업의 모든 여직원들이 사장을 흠모한다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미친 회사가 체육대회 엠브이피에게는 사장과 단둘이 식사하기를 상품으로 준다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씨발 직원들이 내가 우승할거야 내가 우승할거야!! 막 이러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극을 쓴 사람,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하아,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느 미친 인간이 보쓰랑 단둘이 밥을 먹고 싶어하냐. 아무리 그 인간이 잘생긴 남자라고 해도 보쓰는 보쓰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는 보쓰 가족이 사무실에 있는데 그 가족 구성원이 사무실에 입장하는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보쓰가 밥먹자고 할까봐 전날부터 잠을 못자는 사람이다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여직원들이 꺅꺅 거리면서 내가 사장하고 밥먹을거야!! 너무 잘생겼어 우리 사장님!!! 이러는 것도 너무 어이가 없고 남자들은 '사장하고 밥먹는건 승진으로 가는 케이티엑스를 타는 길' 이러는 것도 너무 개구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뭐 사장도 사장 나름이겠지만요...
아 그런데 내가 이 얘기를 하려던게 아니고, 일단 여기에서 설정은 '신하리' 가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인 '강태무'랑 썸타다 애인이 되는것이 이 극의 줄거리이고 그 사이사이 설정은 현실에는 없을 듯한 것들이 수두룩한데, 또 거짓으로 이어지고 연결되는만큼 스트레스 주는 부분도 있는데, 나는 이들 말고 조연 커플의 어떤 면이 좋았다. 신하리의 친구 '진영서'가 강태무의 비서 '차성훈'과 서로 첫눈에 반해 결국 사귀게 되는데, 여기에도 당연히 말도 안되는 설정이 쏟아지고 클리셰가 범벅이지만, 그런데 이들이 사귀고나서 데이트를 시작하고 또 헤어질 때, 진영서는 차성훈에게 '연락할게요!'라고 말한다. 아침을 같이 먹고 출근하면서도 '연락할게요' 라고 하고 업무 중에 잠깐 만나 간식을 전해주고 돌아가면서도 '연락할게요!' 라고 한다. 연락할게요, 라는 말도 잘하고 또 '연락해요!' 라는 말도 하는데,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은 거다.
이건 아마 사람마다 가진 고유한 성격이 다르고 또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만큼 서로 다른 부분에 꽂히게 될텐데, 내 경우에는 전화통화를 진짜 졸라 싫어한다. 개싫어한다. 나는 가족들말고는 통화하는 걸 진짜 너무 극도로 싫어하는데, 웬만하면 문자나 왓츠앱으로 좀 했으면 좋겠고, 그것조차도 아무나 다 말걸게 하고 싶지 않아서 카카오톡은 여태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튼 전화하지 마세요 나한테... 내가 그런 사람이라서인지 전화통화를 한다는 건 나에게는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전화통화할 시간에 쉬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나는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고, 물론 그것이 좋은 사람일 경우지만, 만나서 얘기하는 건 즐긴다. 그렇지만 전화는... 아니야. 통화는 싫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아주 가끔 어떤 사람에게 오는 전화가 반갑고 설레이고 긴장될 때가 있다. (오죽하면 끊지를 못하고 변기 위로 가 앉았을까) 그런만큼 내게 '연락할게요!' 나 '연락해요!'는 아주 특별하고 다정한 말로 들린다. 이건 그러니까 철저히 나란 사람의 지극히 사적인 꽂힘일 것이다. 오래전에 수화기 너머로 상대가 '연락해요!' 하는데 그 말 듣자마자 가슴 가득 따뜻함이 차올랐던 때가 있다. 그 말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나에게 연락해요! 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사람은 내 연락을 반가워하고 기다리고 있다 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거다. 내가 이 사람에게 연락하면 이 사람은 나를 서운하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게 생겼던건데, 무엇보다 그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다. 그런 마음이 그 순간 들었고 그래서 어떤 특별한 사람의 경우, 다시 말해 내가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연락해요, 라든가 연락할게요 라는 말이 그렇게나 다정하게 들리는 거다. (비슷한 말로는 '너 왜 연락 안해!' 가 있겠다.)
이 드라마의 작가가 어느만큼 그 부분에 신경을 쓴건지 모르겠지만, 이 진영서라는 캐릭터는 그 전에 하지 않았던 말, 그러니까 베프인 신하리와는 그런 말 없이 잘도 만나고 놀고 함께 다녔지만, 반해서 사귀게 된 남자에게는 헤어질 때마다 연락할게요! 혹은 연락해요! 라고 말한다. 연락했으니 만났을 것이고 그리고 또다시 만날 것임에도 연락할게요! 라는 그 말이 나는 정말이지 하염없이 다정하게 들리는 거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휴 연락하지 마!' 막 이런 마음이 들어버려서 카톡도 안하는 사람인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직장생활 하면서 카톡 안하긔 얼마나 어렵게요? 수시로 압박이 들어온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임원들 자꾸 내게 '너 왜 카톡 안하냐' 묻는데 진짜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연락하세요! 라고 할 때는 그것이 내게 얼마나 특별한지!!
아무튼 이 젊은이들의 연애를 보면서 '좋구나', '참 좋을 때다' 한다. 스물일곱. 나는 그 때 뭐했지? 나의 스물일곱은 그냥 썩은 시간들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누가 내게 물어보면 서른부터 인생이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드라마속의 이십대들은 아주 그냥 반짝반짝 빛이난다. 스물일곱 그 때 나는 뭘했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서른하나에 스물일곱 남자를 만나 그 날 반하고 정신줄 놓았더랬는데, 그래서 맨날 그 남자 생각하고 그랬는데, 도대체 이 스물일곱 나한테 왜그렇게 나한테 들이댔나, 그는 무슨 생각인가 알 수가 없어서, 당시의 직장에서 내 옆자리의 스물일곱 직원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씨. 스물일곱은 무슨 생각하며 살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물일곱마다 다르겠지. 껄껄. 내 스물일곱, 그 때의 나는 그냥 똥멍충이였는데... 인생을 낭비했었는데... 십대와 이십대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때여야 할 것 같은데, 남들 보면 잘도 빛나더만, 나는 왜 그 때 우중충했을까. 드라마 보면서 나도 다시 한 번 인생을 살면서 이십대를 환하게 빛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십대는 어리석고 어두웠는데, 똥같았는데, 이렇게 빛나는 이십대를 나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내 이십대에 만난 남자들은 좆같았는데 그래서 내게 똥같은 인생의 오점을 남겼는데, 그런데 드라마속 이십대들은 좋은 남자들을 잘도 만나고 다니는구나.
인생을 다시 한 번 살면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서 라라 진이 어느 대학을 갈지 고민하는데 언니가 조언해주는 장면이 너무 인상깊었다. 내 주변엔 나에게 대학에 대해 조언해줄 어른이 없었다. 내가 대학 갔을 때 친척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이름 있는 대학 들어간 사람이었을만큼 내 주변에는 나의 진로에 대해 말해줄 어른이 없었다. 인생을 다시 한 번 살면 라라 진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도 진로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줄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단 대학과 전공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을 주고 싶다. 다시 한 번 살면 이십대에는 우중충하지 않고 나쁜 선택을 하지 않고 드라마속 젊은이들처럼 반짝거리고 빛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런데 나의 인생에 삼십대에 나는 '아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고, 어떤 날에는 내 인생이 너무 축복받은 것 같아서 엉엉 울기도 했더랬다. 엄마, 사람들이 나한테 다 잘해줘, 왜이렇게 잘해주지, 이러면서 엉엉 울었던 때가 나의 삼십대였다.
인생에 어느 한때쯤 빛나는 순간이 있는 거라면, 그 때는 누구에게나 다를 것이다. 이십대에 빛나는 사람이 있고 사십대에 빛나는 사람이 있겠지. 사실 나는 우리 외할머니는 팔십대에 반짝거리는 삶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빛나는 구십대를 보내고 계신다. 빛나는 것은 한 때이기 때문에 빛난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빛나면 그게 어떻게 빛나는 것일까, 고유의 색이겠지. 다른 곳보다 더 밝아서 빛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보면 그게 언제이든 그런 때가 왔을 때 잘 캐치하고 즐기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인생의 지혜일 것이다. 오호라, 지금이 나의 반짝거리는 때이네, 개행복하네? 하고 그것을 꽉 붙들고 즐기기.
아무튼 사람들이 전화좀 안했으면 좋겠다, 나한테. 할 말이 있다면 문자메세지로 ... (왜 결론이?)
그러고보니 연락해요! 라는 말을 듣고 가슴 가득 따뜻해졌던 때가 아주 오래전이다.
스물일곱.
좋을 때다.
행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