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정희진 오디오 매거진 중 <한 문장의 세계>코너를 들었다. 정찬, 발터 벤야민, 임화 와 그들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코너 중 정희진 쌤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들은 사상가라고. 사상가와 문장을 가져서 소설가인 거라고 하시는 거다. 와- 그 때 뒤통수를 확 때리는 깨달음이 왔다. 바로 그거였어. 내가 이렇게 적절한 단어와 문장으로 정리하지 못했지만 내 나름대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들의 작품은 한두권 읽으면 더 안읽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밀어두는 작가들이 있는데, 그들이 하는 건 '그저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내가 계속 찾아 읽게 되고 읽었던 거 또 읽기도 하는 작가는 그들이 자신의 '사상'을 문장으로 풀어내기 때문이었던 거다. 물론,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서! 내가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데 이야기로 가득한 소설인데 왜 싫지? 하고 갸웃할 뿐 그 이유를 몰랐는데,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사상을 담은 이야기였어. 뭐 굳이 얘기하자면 내가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 기욤 뮈소, 마르크 레비, 더글라스 케네디... 이 세명이 대표적으로 한 두권 읽으면 더 안읽어도 되는, 그런데 영화로 만들어지기에는 아주 적합한 이야기를 쓰는 그런 작가들 되시겠다. 물론 제 기준, 저의 주관적인 기준입니다. 다른분들은 그 작가들로부터 어떤 사상을 캐치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쓰면서 생각하게된건데, 세상의 베스트셀러 소설들은 다 이 '이야기만' 담고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지 않나 싶다. 자정의 도서관이랑 꿈 디파트먼트스토어... 흠흠. 각설하고,
선생님은 정찬 작가를 언급하시며 '제 주변의 다섯명 정도는 한국에서 노벨상을 타는 작가가 있다면 그건 이승우나 정찬일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셨다. 그 다섯명은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들 하고 있다고. 이 부분에 대해 들으면서 '설마... 그 다섯명 중에 내가 있나?' 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딱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선생님과 얼굴을 본 적 없는 사이이고. 아, 나는 강연에서 몇 번 뵙긴 했지만 선생님은 나를 모르시는 부분. 그러나 내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은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르시므로.. 그리고 선생님과 내가 다른게 있다면 선생님은 정찬을 그렇게 생각하시고 나는 이승우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되시겠다. 이쯤에서 공개하는 나의 이승우 콜렉션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국내작가중 이승우에 대해서만 나의 책장 한 칸을 주고 있다. 이승우 말고는 이승우만큼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없다. 이승우 외에는 국내에 책 모으는 소설가가 없다. 이승우 책은 팔지 않는다. 그리고 이승우 책은 아껴 읽는다. 위 책들 중에서도 독, 소설가의 귓속말, 에리직톤의 초상, 이국에서 이렇게 네 권은 아직 안읽었는데, 어제 정희진쌤 매거진 듣고나니 그냥 다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하자..고 생각하고 있다. 나름 한국 소설가들 책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하지만 항상 나로 하여금 '아니, 좀 더... 좀 더....' , '아 이렇게밖에 못한다고?' 막 이렇게 되어버리는데, 이승우의 책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질 않고 매번 한문장 한문장 감탄하게 된다. 한국어로 쓰여진 작품을 읽는 한국사람의 순수한 기쁨을 가장 많이 주는 작가이다. 엄마한테도 이승우 책 한 권 읽으시라 드렸었는데, 엄마가 다 읽으시고는 '야 소설가 되기 되게 쉽다, 같은 문장 또 쓰고 또 쓰고 그러네?' 이래서 내가 완전 빵터진 부분. 아니야, 그게 그게 아니라고!! 같은 문장 같지만 같은 문장이 아니란 말이야!! 굳이 엄마에게 이승우 책을 읽어보라 드렸던 이유는 그 책이 성경을 재해석 했기 때문이었고, 그 얘기를 하자 엄마가 읽어보고 싶다 하셨던 거다. 《사랑이 한 일》이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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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의《캉탕》을 읽고 쓴 리뷰 ☞ 아직 항해중인 당신에게
나는 예전부터 생각해오고 또 말해왔지만, 이승우는 다른 모든 한국작가들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한국작가를 하나의 그룹으로 봤을 때 이승우는 그 그룹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승우가 한국작가들 다 모아놓고 강연이라도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 지점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다고 해야할지를 나는 표현하지 못했었는데 정희진 쌤이 그걸 '사상과 문장'으로 얘기해주신 거다. 아, 사상과 문장! 문장임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를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네, 내가.
나는 그게 이야기보다 더한 어떤 것, 그러니까 이야기에 더한 어떤것, 이야기로써 완성시키는 어떤 것 이라고 생각을 했고, 그것을 '천착'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나는 이승우의 책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 라는 큰 단어와 죄책감이라는 큰 단어가 이승우 작가의 뇌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정희진 쌤의 추천으로 정찬을 읽으면서는 정찬의 뇌의 중심에 '폭력'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정찬은 폭력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그게 나는 좀 힘들어서 정찬 읽기를 한 권 하고 그만두었던 거다.
정찬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 있다고 쌤도 매거진에서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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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정찬의 책을 한 권 더 주문해두었고 지금 내게로 오고 있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음주 월요일 책탑을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