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소개시키지 말라는 조언은 인생의 참트루 팁 되시겠다. 저런 조언이 그간 없었다면 내가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소개시키지 말라. 바꿔말하면, 내 친구를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소개시키지 말라가 되시겠다. 이러다가 망한 케이스가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내가 있다.
사실, 처음부터 망하려고 소개한건 아니었다. 나의 남사친도 싱글이고 나의 여사친도 싱글이고 나는 이 둘 다를 모두 좋아했다. 그래서 이 둘을 소개시켜주었고, 소개시켜주다보니 연락을 자주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만나는 일도 좀 잦아지게 되었는데, 아니 그러니까, 내가 이 남사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여사친에게 소개해주었을 것 아닌가. 그래서인지 볼수록 이 남사친이 너무 좋아지는거다. 아 대환장 지점.. 아 쉬바 어떡하지.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로 커져가는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어디 다스려지는가. 너네 잘해보라고 소개해주었으면서 그러나 정말 잘되는걸까? 신경이 곤두서는 그런 마음. 이 얼마나 모순적인 마음인가.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를 향한 마음이 커져가는 것도 괴로웠지만, 이 괴로운 상황을 내가 만들었다는 것이 더 괴로웠고, 무엇보다 내가 이런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게 가장 괴로웠다. 친구에게 얼마나 못할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딱히 발전하는 것 같진 않았다. 서로 잘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의욕도 있는 것 같았지만 그 기대만큼 잘 되는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는 과중에 나의 여사친에게 다른 남자가 접근해왔고, 그렇게 여사친의 마음이 흔들거렸고, 여하튼 내가 소개해준 이들은 흐지부지 하게 되었고, 어느덧 내 남사친과 나는 매일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고, 자주 만나게 되었고, 내 남사친은 내 남동생과도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그러니까 내 애인들은 내 남동생이랑 술 마신 경우가 거의 없는데, 내 남사친들은 내 남동생과 술을 마신 경우가 많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번은 남동생과 백화점에 갔던가, 갑자기 남동생이 "누나 **형 아니야?" 해서 보니, 나의 또다른 남사친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아, 그게 아니고 아무튼 내 커져가는 마음 너무 힘들어서 너무 힘들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해서 내 친구에게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는데 잘되지 않았고, 그 남자가 어느날 나에게 '나는 너를 좋아한단 말이야' 라고 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마음이 없었는데, 사귀자고 하는 그의 말에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괜찮다고 친구에게 소개한 남자인데 만약 내가 '아니'라고 한다면, 분명 '야 괜찮은 남자라면서 너는 왜 안사귀는건데?' 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나는 사귀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사귀지 말아야 할 이유도 생각해낼 수가 없었고, 내 스스로 모순됨을 행동으로 보일 수 없어서, 언행은 일치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의 사귀자는 말에 오케이를 하고 그 때부터 그와 연인 관계가 되었는데, 문제는, 내가 여태 사귀었던 남자중에 제일 잘생겼던 그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못생긴 남자가 취향인가?)...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냐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 연인 관계가 된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아직 그랑은 손잡는 것 밖에 하지 않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낯선 남자 만나서 키스를 하는 일이 벌어졌고, 나는 바로 '바람핀 여자'가 된 것이다. 하아- 낯선 남자를 만나는 중에 너 누구랑 있냐, 설마 남자 만나는거냐, 막 이렇게 이 연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는데 아냐, 친구랑 있어, 곧 집에 갈거야 이러면서 속여버린.. 그래놓고 집에서 한 숨도 못잤다. 내가 너무 못된짓을 해서. 아니 세상에, 남자친구라고 있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고, 이름도 기억 안나는 남자랑 키스를 하고 들어왔... 나란 여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나는 나의 연인에게 이거 그만하자고 말했다. 다른 남자랑 키스하고 와서도 이 연애를 지속하는 일을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고, 지금 이렇다면 나는 아마 앞으로도 이런 행위를 또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그에게 세이 굿바이를 말했고, 그 때부터 나의 연인은 밥을 굶기 시작하는데....
그리고 또 있다!
내가 애정하는 소설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서 '에미'는 '레오'라는 남자와 이메일 친구가 되고 그래서 자주 연락하게 된다. 물론 이메일로. 레오는 싱글이고 에미는 기혼 유자녀 여성이었던 바, 그런데 이메일로 감정이 자꾸 커져버리고.. 에미는 레오에게 자신의 친구 '미아'를 소개해준다. 미아는 레오와 이메일로 교류하지 않는다. 여느 소개팅처럼 그들은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난다. 이 만남과 그 후의 일들, 그리고 만나서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낸걸까, 서로 마음에 들었을까, 섹스는 했을까? 하는 것이 에미는 너무나 궁금하고 초조하다. 미치겠다. 그 답을 듣고 싶다. 내가 그 때 에미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바보야, 그러게 왜 친구를 소개시켜줘!!! 아마 에미는 친구를 소개시켜줌으로써 레오를 계속 알고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욕심은 화를 부르는 거다. 레오는 미아랑 잤을까?
내가 왜 아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면, 지금 친구들과 함께 읽고 있는 이 책 때문이다.
'헤이즐'은 대학시절부터 '조쉬'를 알게 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선배였는데 조쉬는 잘생기고 공부도 잘하는 인기남이었고 헤이즐은 실수를 연발하고 엉뚱하고 뭐랄까, 좀 '과잉'된 성격의 여자다. 헤이즐의 성격은 엄마로부터 받은 것인데, 아빠는 엄마의 그런 성격에 끌려 결혼했으면서도 정작 결혼하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통의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헤이즐의 엄마 역시 엉뚱하고 유쾌하고 과잉되어 있고 또한 남자한테 사랑받기 위해 그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이 성격은 헤이즐에게도 그대로 온 바, 헤이즐은 자신의 외모로 인해 남자들이 다가오고 처음엔 매력을 느끼다가도 이내 별난 성격으로 자신의 곁에서 떠나길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헤이즐은 조쉬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조쉬가 자신에게 매력을 느낄거라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앞으로 살면서도 남자 때문에 자신의 성격을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나야, 라고 생각한다. 이게 나인걸?
내가 이 책을 읽는게 좀 괴로운 이유는 내가 헤이즐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술마시면 웃통을 벗어젖히는 헤이즐이 좋지가 않고 너무 수다스럽고 감정과 행동이 좀 과잉이 되어있는 이 성격이 싫다. 당연히 헤이즐도 긴장하고 수줍음도 많고 부끄러움도 느끼는데, 그런것들에 대한 방어기제로 나오는 것 같은 이 과잉이 나는 너무 싫은거다.
헤이즐은 앵무새와, 물고기와, 개와.. 또 뭐가 있더라? 여하튼 반려동물들 여럿과 살고 있는데 살고 있는 집에 배관이 터져서 당장 머무를 곳이 필요했고, 그렇게 조쉬의 집에 머물게 된다. 마침 조쉬는 다른 지역에 사는 여자친구를 2주간 만나러 다녀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케이 해줬다. 2주면 헤이즐의 집이 다 수리가 될터였다. 그러나 조쉬가 예정보다 빨리 자신의 집에 밤에 돌아오게 된다. 여자친구랑 헤어졌고 그래서 고작 이틀만에 집에 오게된 것. 그렇게 집에 돌아왔을 때 조쉬가 마주하게 된건먹던 피자를 치우지 않은 엉망이 된 부엌이었다. 나는 이게 너무 너무 싫었다.
물론 나 역시 정리도 잘 못하는 사람이고 혼자 있을 때 집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니 집을 어지르는 헤이즐이 싫다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곳은 헤이즐의 집에 아니었다. 조쉬의 집이었다. 나의 집이 아니라 타인의 집이었다. 물론 조쉬가 2주 후에 올줄 알았다가 이틀만에 돌아왔으니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고, 조쉬가 돌아올 때만 깨끗하게 돌려놓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여기에 별 문제는 없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에서 헤이즐이 되는게 아니라 조쉬가 되었다. 그리고 제삼자가 되었는데, 조쉬의 편이 된다. 어떻게 타인의 집을 어지를 수 있을까? 여기서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버린 거다. 나는 이런게 진짜 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헤이즐이 조쉬의 집을 어지럽힌건 헤이즐이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경쓰지 않으면 헤이즐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그러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감정을 상하게 만들게 된다. 내가 상대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고 우리의 관계를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려면, 신경을 써야 한다. 사소하게는 약속을 지키는 일부터 시작해서 같이 쓰는 공간에서도 최소한의 청결을 유지하는 일 같은 것들. 신경쓰지 않고 애쓰지 않고 그저 나를 나 편한대로 내버려둔다면 누군가는 나로 인해 불편함을 겪게 되는거다.
물론, 사람이 언제나 이걸 신경쓰며 살 순 없고 때로는 신경쓸 에너지가 부족해서 본래의 내가 튀어나와 버릴 때가 있다. 다정하지 않은 말투가 튀어나오는 것이 본래의 나고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는 것이 본래의 나다. 그리고 이럴 때 조차 받아들이고 예쁘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게 사랑하는 사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랑 함께야, 라고 느낀다면, 그게 사랑이겠지. 그런데 나는 헤이즐이 저렇게 잠깐 본래의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저 장면에서 짜증이 확 샘솟는 거다. 나는 헤이즐을 사랑하지 않아. 싫다. 그러나 조쉬는 달랐다. 그 일에 대해 나처럼 스트레스를 받거나 나처럼 짜증내지 않는다. 조쉬와 헤이즐이 연인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쉬는 '아 이렇게 잇었구나' 정도의 느낌으로 받아들인달까. 조쉬는 헤이즐의 좋은 면만 보려는것 같다. 헤이즐이 엉뚱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정말 넌 특이해, 라고 말하면서도 헤이즐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는 아마 앞으로 헤이즐과 연인이 될 수 있는 거겠지. 아무튼, 그렇게 2년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온 조쉬는 집안에 처박혀 넷플릭스만 끌어안고 산다. 헤이즐이 아무리 나가 놀자고 해도 다 싫다고 한다. 너 그러다가 복근 다 사라지겠어, 라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야, 너는 건강한 남자이고 그렇게 멋진 얼굴과 몸을 가졌는데 섹스하고 싶지 않니? 헤이즐은 조쉬를 자극한다. 아니, 나랑 하자는게 아니야, 하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는 거지.
결국 헤이즐이 생각해낸 건 소개팅이었다. 나도 너에게 여자 소개해줄게 너도 나에게 남자 소개해줘, 그리고 우리 더블 데이트를 하자!!
"Just listen," I tell him, pusing up onto my knees and invading his space. "What if I set you up with someone, and you set me up with someone, and we went out together?" -p.94
나는 조쉬에게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나는 너한테 소개해주고, 너는 나한테 소개해줘서, 우리 둘이 같이 나가면?" -책속에서
아아, 헤이즐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조쉬는 헤이즐이 하도 조르는 바람에 그러겠다고 한다. 나는 딱 여기까지만 읽었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될지 아직 읽지 않았으나, 아아, 나는 그 뒤에 찾아오게 될 감정들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후회, 미련, 질투, 갈망.........
나는 헤이즐에게 그러지말라고 말리고 싶지만, 그러나 내가 그러지 말란다고 안그러겠는가. 젊은이들은 원래 나이든 사람들의 말을 안듣는 법이다. 그래, 경험으로부터 배워라 헤이즐이여. 헤이즐 나이가 스물다섯이라고 했던가. 그래, 스물다섯, 그런거 스스로 경험하고 배울 나이지. 그렇게 살다보면 헤이즐이며, 한 이십년 뒤에 나처럼 이런 글 쓰고 있을 것이다. 자고로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친구에게 소개시키는 미련한 짓은 해서는 안된다!! 는 글 말이다.
다행한것은, 같이 읽는 친구들중에 헤이즐을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는 것이다. 나처럼 다들 싫어하면 헤이즐을 어쩌나. 나는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주변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의 삶을 잘 꾸려가길 바란다. 헤이즐에게는 조쉬가 아마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어주겠지만, 조쉬 말고도 유진이도 있고(세상에, 조쉬도 에밀리도 한국인이다! 때문에 여기에 'oppa' 나옴 ㅋㅋㅋ 징그럽다 이 오빠..).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기편을 만들고 살아가기를 바라고, 다들 자기편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혼자이기를 바라진 않는다. 이건 그냥 인간에 대한 기본적 도리와 예의 같은 거다. 아무튼 근데 내가 헤이즐이 싫어서 지금 이 소설이 별로 재미가 없다. 아놔... 다만, 잘생긴 개자식 쓴 크리스티나 로런의 소설이므로 야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계속 보겠다.
어제 SNS 에서 핫하길래 넷플릭스의 드라마 <연애대전>을 보게 됐다. 김옥빈이 여자주인공인데, 변호사이며 각종 운동을 다 잘해서 나쁜놈들 다 뚜드려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미있게 보고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청난 클리셰라면, 여기에 남자주인공 직업이 인기배우라는 것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넷플릭스는 외국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페미니즘 한스푼 넣는 것 같다. 김옥빈이 하는 대사중에 페미니즘 양념 친 대사가 주루룩 나오는데, 어제는 '남자만 조심해도 인생 위험하지 않게 살수 있죠. 재소자의 80프로는 남자니까요.' 라는 대사가 나오더라. ㅎㅎ 아무튼 김옥빈이 액션하는 드라마다. ㅋㅋㅋㅋㅋ 앞으로 사랑도 하겠지만.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