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를 갖추어두고 아직 읽지 않은 《the Love Hypothesis》의 번역본인 《사랑의 가설》이 출간되었다는 걸 알게 된 바로 그 날-그러니까 화요일!- 나는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렀다. 너무 읽고 싶었는데 영어로 읽을 자신이 없었고 그런데 번역본이라니 완전 만세만세 만만세 아닌가. 그렇게 교보에 들러 이 책을 산 뒤에 집에 도착해서는 읽다만 미셸 우엘벡을 던져버리고(미안.. 책장이 잘 안넘어가네요.. 나중에 다시 만나요.... 잠시만 안녕.....)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침대에 자리잡고 앉아 이 책을 펼치면서 그러나 '안된다'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시작하면 어쩐지 중간에 멈추기 힘들테고, 나는 열시에 취침해야 하는데... 좋았어! 놀라운 자제력으로 열시반에 끊고 자자! 라고 하였지만 열두시가 되어서야 '더이상은 곤란하다!'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절반정도 남은 뒷부분은 다음날 출근길인 어제 아침에 읽었다. 야한장면 겁나 기대하고 읽었다가 출근길에 만난 섹스신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그러나 무척 기뻤고!), 로맨스 소설 읽을때면 그 소설 속으로 빠져서 주인공과 같이 사랑을 시작하는 나로서는 그 아침 격렬한 섹스를 하고야 만것이었다. 사랑했고 이별했고 울었고 섹스도 했다. 오, 신이시여. 로맨스 소설 읽으면서 대리섹스 가능한 사람입니다, 제가.
자,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이학부 교수인 30대의 남자 '애덤' 과 대학원생 20대 여자 '올리브'가 같은 학교에 다지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내용이다. 올리브는 췌장암으로 엄마를 잃고 아빠는 원래 없었고 친척도 없고 그래서 뒷배경도 없고 또 가난한 대학원생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떠날거라는 컴플렉스를 안고 살아서 그녀에겐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있다. 대학원에 와서 자신과 친한 친구들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고, 그래서 자신이 썸타던 남자에 호감을 보이는 절친을 위해 '나는 다른 남자랑 만나'를 보여주기 위해, 갑자기, 느닷없이,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붙잡고 키스를 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걸 친구가 목격하고 '아 쟤 정말 다른 남자 있으니까 썸남하고 데이트를 시작해도 되겠구나!'로 양심의 가책없이 이어지게끔 하자는 의도였다.
이 소설 《사랑의 가설》은 재미있고 주인공 캐릭터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뇌과학 분야 논문을 다룬 과학자라서 이학부의 연구와 논문 학습과정들에 대해 아주 생동감있게 써낸다. 그러나 치명적인 단점이랄까, 내가 이 소설 읽기를 사실 좀 꺼려했던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 도입부였다. 갑자기 복도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키스해도 돼요?' 라고 묻고 키스를 해버리는 것. 이게 나로서는 도무지 용납이 안되는거다. 어떤 사정에 의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할 수 있다는 건 물론 안다. 그런 일들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부러 그런 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과, 그러니까 이 사람은 누구냐, 아무것도 모른다, 이런 상태에서 하는 키스? 이게 도무지 곱게 봐지질 않는거다. 김기덕 감덕의 영화 《나쁜 남자》에서는 낯선 여자한테 키스했다가 뺨 맞고 그 여자를 사창가로 넘겨버리는 남자가 나오지 않나. 왜 낯선 사람에게 키스를 하지?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는 남자의 욕망에만 충실했기에 나쁘다면, 올리브는 뭐 다른가?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는 본인의 의도가 있었잖아? 그래서 이 설정이 나는 너무 싫은거다. 갑자기 복도에서 낯선자의 키스를 받게된 사람의 기분은?? 이게 내 안에서 소화가 잘안되는거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는 이걸 받아들여야 했다, 이 상황을. 물론,
이 소설은 더 진행되기 위해 이 상황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불쾌한 상황은 아니었음을 설명해준다. 일단 그녀가 키스하기 전 '키스해도 돼요?' 라고 물었다는 거고, 무방비 상태로 그 키스를 '당한' 애덤은 사실 3년전에 우연히 그녀를 처음 만나고난 후부터 그녀를 관심있게 보고 있었으며 호감도 가지고 있던 바, 이것이 어떤 범죄로 이어지지 않는거다. 게다가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가짜 연애'를 하기로 한다. 기한을 정해두고 우리 그동안은 연인처럼 지내자. 가짜 연애, 계약 연애. 로맨스 소설이나 영화에서 일어나는 뻔한 설정! 그런데 그게 또 그렇게 재미지지요.
영화《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에도 사귀는척 하는 커플이 나오는데, 그러나 그들이 결국 어떻게 되던가! 남들에게 커플처럼 보이기는 해야겠고 그런데 정말 사귀는 사이는 아니니, 신체적 접촉은 할 수 없지만 서로의 바지 뒷주머니에 손은 넣을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지 않았던가. 《사랑의 가설》도 마찬가지. 우리의 가짜연애에 섹스는 없다, 노섹스!를 선언하지만, 남들앞에서 연인으로 보이기 위해 그들은 어쩔 수 없이 키스를 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애덤의 무릎에 올리브가 앉게 되고, 어쩔 수 없이 애덤의 벗은 등에 올리브가 썬크림을 발라줘야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쫄깃하게요? ㅋㅋㅋㅋㅋㅋㅋ자, 여기서 잠깐 '무릎에 앉는'걸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올리브가 '가난한 대학원생'인걸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은 연구를 해야 하고 돈도 벌 수가 없고 그녀에겐 뒷배경도 없고 그래서 먹는게 신통찮다. 제 때 끼니를 해결하기도 힘들어서 그녀는 말랐다. 키는 170센치이지만 삐쩍 말랐어. 그러니 170의 그녀가 올려다볼 정도로 큰 키를 가진 애덤, 그리고 식스팩보다 더한 에잇팩을 가진 애덤이기에, 꼼짝 않던 트럭도 혼자 밀어서 움직이게 하는 그런 파워 스트롱 애덤이기에, 그런 애덤의 무릎에 올리브가 앉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그 상황에서 애덤의 무릎에 앉을 수 있었을까? 앉았다면, 그렇다면 애덤의 무릎과 허벅지는 어떻게 되엇을까? 설사 애덤이 엄청난 근육을 가지고 있어 무릎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기꺼이 상상해볼 수 있다. 무릎위에 앉았을 때 그 남자의 손과 팔은 어디로 갈지... 그러면 나의 온몸 곳곳에 떡하니 자리 잡은 살들은 어디로 갈것인가. 그의 손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 진짜 왓 더 뻑이다.
바야흐로 시간이 흘러 그들이 섹스를 하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서로의 맨몸을 보게 되었을 때, 아아, 올리브는 자신의 드러난 갈비뼈를 부끄러워한다. 나는 이것이 너무 충격이었는데, 그러니까 벗은 몸을 자기만의 기준으로 어쨌든 상대에게 부끄러워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갈비뼈가 드러나는 몸이라서 부끄러울 수 있다는 걸 내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 상상은 내가 아는 한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나는 갈비뼈가 드러나는 몸을 알지 못한다. 요가를 하다보면 호흡할 때 자신의 갈비뼈를 만지라는 자세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없어, 없어, 갈비뼈가 없어... 일전에 대중목욕탕을 갔다가 여동생의 드러난 척추뼈를 보고 '야 이게 뭐야 난 이게 없는데?' 했더니 여동생이 '언니 있어, 안보이는거지, 이게 없으면 어떻게 살아' 하는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냐, 없어. 나는 없다고. 있는데 안보이는 거 아니야. 있을 리가 없어.
갈비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나는 아무리 아무리 뒤져봐도 갈비뼈가 없다. 존재하지 않아. 나에겐 없고, 그래서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갈비뼈가 없어가지고 갈비뼈가 드러난 나의 벗은 몸으로 인해 부끄러울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생소한 얘기인 것이다. 아아... 나는 출렁이는 뱃살과 셀룰라이트 가득한 허벅지 살, 아래로 퍼지는 가슴과 커다란 엉덩이 때문에 벗어놓고 부끄러움을 자주 느끼긴 했지만, 아아, 그렇구나, 누군가에게는 드러난 갈비뼈가 부끄러울 수도 있는 거였어. 오......... 너무, 너무 충격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군요. 역시 인간은 모두 다르고 저마다의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이며, 우리는 자신의 처지가 아닌 것을 상상하지 못한다. 내 상상의 한. 계.
이 책을 읽으면서 요즘의 로맨스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생각했다. 오래전 읽었던 할리퀸에서는 남자는 무조건 재벌, 나이도 많고,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에, 섹스에 능숙했고 여자는 어리고 순수하고 약하고 처녀성을 가졌다가 남자를 만나 중요한 순간마다 '이러면 안돼요!' 했었는데, 이제 젊은 여성들이 쓰는 로맨스는 어느 한쪽의 권위로 쏠릴까봐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 인종과 성정체성의 다양함을 책에서 드러내는 건 물론이요, 이 책의 설정에서 교수와 대학원생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 자신도 그걸 알고 신경쓰고 있다. 교수와 대학원생은 기본적으로 권력관계이고 그래서 사귀면 안되지만, 이 가짜연애를 하기 위해 애덤은 학교측에 문의를 하고 그러나 다른 학부이기 때문에 이들이 사귀는 것은 문제 없다는 답을 듣게 된다. 섹스를 함에 있어서도 애덤은 수시로 올리브가 동의를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게 맞는지, 진짜 이래도 되겠는지. 지나칠정도로 참고 묻는 남자였다. 그러면서 섹스 스킬은 세계 최고인 남자였기 땜시롱 내가 어제 아침에 읽다가 하루종일 말랑거린 것이다.....
사실 이 가짜연애를 시작할 때부터 이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었고, 혹여라도 자신들의 호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싶어 자신의 감정을 속인다. 올리브는 심지어 자신이 짝사랑하는 대상이 있다는 걸 애덤이 알게 되었을 때 '그건 다른 사람'이라고 거짓말까지 한다. 이 부분이 정말 싫었는데, 나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순간적으로 멍청하고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는 걸 안다. 이들은 교내에 커플로 보여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으므로 매주 수요일 오전 교내 스타벅스에서 만나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한다. 대화가 너무 즐겁고 이들은 서로 자주 웃는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애정이 점점 자라나고 이제 서로에 대한 마음까지도 짐작하고 알게 되었는데, 올리브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하버드대학의 연구 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공교롭게도 이 교수는 애덤의 친구였고, 애덤은 이 친구가 고마운 친구라고 몇번이나 말했던 바, 올리브는 자신에게 닥쳐온 이 좆같은 일에 대해 애덤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참기로 한다. 내가 이걸 말한다면 애덤과 그 친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가짜연애의 지정날짜가 다가오고, 그들이 즐거운 섹스도 하고난 후이므로 앞으로의 시간도 내내 즐거울거라 기대했던 애덤은 갑작스런 올리브의 이별 통보에 절망한다. 나는 올리브가 이별을 선언하기까지의 그 마음과정을 충실히 따라가 그녀가 되었으므로 함께 운다 ㅠㅠ 이별 아파요 ㅠㅠㅠ
그런데 이게 로맨스 소설이고 야한 장면이 기대되는 소설이기 땜시롱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는데,
애덤은 이마를 문지른다. 말하지 마. 너를 망가뜨리고 말 거야. 이건 가장 기본적인 자기보존 본능이야. -p.417
처음에 이렇게 읽었다.
애덤은 이마를 문지른다. 말하지 마. 너를 망가뜨리고 말 거야. 이건 가장 기본적인 자지보존 본능이야. -p.417
자지보존 본능이라니, 맙소사.. 이러다가 다시 보고 자기보존 본능한 음란마귀가 여기있다.. 먀네.. 내 안의 음란마귀 물럿거랏!!
재미있게 읽었고 그래서 한 번 손에들자마자 쭉 읽었다. 물론 중간에 잠도 잤지만. 화요일밤과 수요일 아침을 이 책 읽느라 보냈고,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이 그렇듯이 이걸 아침에 읽고 어제 하루종일 막 사랑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로맨스 소설 읽으면 사랑할 것 같은 충동이 샘솟는데, 그건 로맨스소설 속의 남자주인공이 기꺼이 사랑할 만한 남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여자의 감정을 살피고 예의가 바르고 근육으로 무장한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고(심지어 에잇팩!!) 따뜻한 마음과 관심, 배려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섹스 스킬 어쩔거야 진짜.. 하아- 난 오랄 싫어하는데 여기 너무 현란한 오랄이 나와가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로맨스 소설 읽고 주인공 남주에게 마음이 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 속의 애덤이라면 충분히 사랑에 빠질만하다. 특히나 주인공들의 대화가 오고가는게 재미있는데 대화도 잘되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가 에잇팩을 가지고 현란한 섹스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중에 하나도 갖기 힘든 사람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사랑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조슈아가 짱인것 같다. 등근육 개쩌는 진지한 남자. 나는 역시 이쪽인 것 같다. 에잇팩 보다는 등근육이 좀 더 좋아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흙핥 등근육과 전완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제 이 책 읽다 말고 무슨 책을 샀냐면, 잭 리처 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근육질 남자 보고 싶어가지고. 내가 근육이랑 운동이랑 막 이런 얘기하면 좀 속절없이 반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왜이럴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무튼 잭 리처도 한 권 사고 이 책 사랑의 가설 책 뒷날개에 소개된 로맨스 소설 또 한 권 주문하고 교보문고 가서도 이 책만 산게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슨 말이냐면, 다음주 월요일 책탑을 기대하세요~ (찡긋~)
그나저나 등근육 가지고 전완근 가진 남자의 무릎에 앉기 위해, 그러니까 앉았을 때 그의 몸을 박살내지 않기 위해!!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겠다!!!!! (어휴 써놓고나니 스트레스. 이건 믿거나 말거나 합시다. 걍 넘겨요.)
책속에서는 사람이 너무 붐비는 공간에 가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하게된 것이었는데, 나는 그런 붐비는 공간에 가면 그냥 집에 가는 걸로... 그리고 다이어트는 안하는 걸로....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