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여러분들이 1월 읽은 책들을 정리하시길래 따라서 해보기로 했다.
나는 1월에 총 13권을 읽었다.
일단 좋았던 책은 이 세 권.
좋은 책들의 특징들 중 하나는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는 게 아닐까.
《르 귄의 말》읽고 르 귄의 책들을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했고, 《얼굴 없는 살인자》는 내가 추리/미스터리 소설에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주었다. 사건에 대한 해결, 범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흥미로움과 그 과정에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바랐는데, 그걸 모두 충족시켜 준 작품. 발란데르 경감 시리즈라고 하니 이 시리즈도 차차 한 권씩 읽어보자 싶다.
《오, 윌리엄》은 번역서를 작년에 읽었고 원서를 작년말과 올해 초에 걸쳐 읽었다. 정말 뛰어난 작품이고 덕분에 그간 읽지 않고 미뤄둔 《버지스 형제》도 꺼내들었다. 국내 번역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을 다 읽었고 그래서 좋은데 그래서 아쉽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은 여러번 읽어도 전혀 지루하거나 지겹지 않아서, 오히려 새로운 감정이 더 찾아들어서, 다른 책들을 반복해 읽어봐야지 싶다. 아마 다시 읽기 할 책은 《다시, 올리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을 읽으면 버지스 형제를 잠깐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좀 어려웠지만 읽기를 잘한 책도 역시 세 권.
《한나 아렌트》책은 내가 살아가면서 모두 읽어주리라 결심했기 때문에 읽었지만 크리스테바의 글은 어려웠다. 이게 강의를 엮은 거라는데, 이런 강의를 듣는 대학생들의 수준은... 나따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는 왜 대학시절 학사경고 받고 만화방에서 라면이나 주문해 먹었는가. 나의 학창시절이여..
《섹스 자본이란 무엇인가》도 내가 전작을 다 읽겠다 결심한 에바 일루즈의 책으로서 너무 좋았다. 딱히 새롭다는 느낌을 주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나 이런 식으로 누군가 정리해둔 걸 읽는 건 덩달아 내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고마움과 짜릿함이 있달까. 내 머릿속.. 누가 정리해줘야 된다. 나도 정리를 못해. 에바 일루즈는 내가 정리 못하는 내 머릿속을 대신 정리해준다.
읽고 싶었는데 나오자마자 읽을 수 있었던 건, 다정한 알라디너가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한나 아렌트도 에바 일루즈도 다 알라디너 들의 선물. 이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 선물해주는 사람들... 이곳은 나에게 천! 국!
《레즈비언 페미니즘 선언》은 1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읽기 위한 준비 도서였는데, 역시 읽기를 잘했다.
레즈비언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 그러니까 '여자랑 여자가 사랑하는 것'이라고만 인식하는 거라면, 정말로 너무 수박의 겉만 보는 것. 그 안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고 흐름이 있다.
좀 아쉬운 책은 이렇게 세 권.
《보부아르의 말》은 보부아르가 아무리 똑똑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세상의 변화와 흐름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사르트르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뒷걸음질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은 상대가 사르트르여서는 아니고,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 게다가 그것이 각인 같은 것이라면, 아마도 이 세상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증상일텐데, 그걸 알지만 좀 아쉬웠다. 사르트르의 입이 되어 대신 말해주는 느낌이 영 별로였다.
《페미니즘 이론과 비평》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1월의 도서였는데, 오타 천국인 책이었고.. 저자의 의견들에 적극적 동의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읽다가 자꾸 갸웃갸웃 거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이론을 정리한 것에서는 매우 유용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누가 내 머릿속 좀 정리 해줘야 되고, 거기엔 책이 아주 도움이 된다. 그런 식의 도움을 준 책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재미있고 책장 팔랑팔랑 넘어가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고(그래서 누가 죽인건데?), 결말 또한 마음에 들지만 카야의 삶에 중요한 인물들이 전부 젊은 남자들이라는 게 영 거시기하다. 글과 사랑과 배신과 섹스를 알려주는 게 죄다 남자들이여.. 씨부럴..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냐?
재미있었지만 소장하지 않아도 될 책은 이 두 권. 보뱅은 에세이에서도 느꼈지만 문장 겁나 아름다운데 그게 나한테 꽂히기에는 무리가 있다. 문장이 아름다워서 나로 하여금 사유를 하지 못하게 한달까? 소설도 마찬가지. 소설은 에세이보다 나았는데, 거기에서는 분명히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이고, 그러나 역시 사유의 늪으로 풍덩- 빠지는데에는 적절치 못한 것 같다. 왜, 어떤 사람은 나랑 찰떡같이 궁합이 맞는데,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인 거 알면서도 딱히 나랑 합이 맞는 느낌은 안들지 않나. 어쩐지 어색하고. 그러니까 싫은건 아닌데 딱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은, 모임에 그 사람 있는거 알아도 그 자리에 나가긴 하지만 그러나 내가 그 사람에게 만나자고 하지는 않게 되는 .. 그런 사람처럼, 보뱅은 나랑 합이 안맞는 것 같다. 약간 토이의 좋은 사람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바바야가의 밤》은 재미있고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통쾌하다. 우리 조카 읽으라고 빌려줬는데, 그러나 네 갈 길은 슈퍼바이백. 두둥-
그리고 이 달의 워스트..가장 나쁜 책은 이렇게 두 권. 놀랍지 않게도, 같은 작가다!
리뷰대회 1등 적립금 10만원이라는 말에 혹해서 달려들었다가 나는 너무 어처구니 없는 책을 재독하게 되었고, 나의 고집이라는 것은 좋지도 않은데 좋다고 리뷰 써서 돈을 받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나는 꼿꼿합니다)... 별 두 개 리뷰를 썼고, 그런데 나는 또 돈을 너무나 좋아라 하기 때문에 욕심나서 다시 한 권 더 읽었는데, 그런데 그 책도 똥맛인 경우....
어디로 가죠, 아저씨?
아 진짜 너무 싫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여러분, 감상은 독자의 몫. 책을 읽는 것은 읽는 자가 다시 쓰는 것이라고 우리의 정희진 쌤이 말씀하셨습니다. 막상스 페르민의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래서 이렇게 번역 출판되고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좋다는 리뷰도 많으니, 저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지 마시고, 읽고 싶으면 읽고! 쓰고 싶으면 쓰고! 그렇게 살아갑시다.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근데 나는 막상스 페르민 좀 뻔뻔하게 느껴짐. 소재만 바꿔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 -.-
아무튼 우리 수지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요.
무슨 뜻이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