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의 미친 여자》13장과 14장은 '조지 엘리엇'의 작품들에 대해 다룬다. 13장은 《벗겨진 베일》을 얘기하는데, 조지 엘리엇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로서는 그 전에 읽었던 작품들에 대해 얘기할 때보다 당연히 재미가 없었다. 벗겨진 베일을 검색해보니 100페이지도 안되는데 후딱 사서 읽어볼까 생각도 하였지만, 그정도 쪽수에 만원이 넘어가는 책을 보니 도저히 살 마음이 생기지 않더라.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그 책이 없었다. 하는수없이 나는 벗겨진 베일을 모르는 채로 다락방의 미친 여자 13장을 마쳤다. 그러면서 찜찜해 조만간 벗겨진 베일을 읽어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다.
문제는 14장인데, 와.. 여기선 조지 엘리엇 작품이 폭발한다. 천페이지 넘어가는 《미들 마치》부터,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아담 비드》, 《다니엘 데론다》, 《성직 생활의 장면들》등등이 언급되는데, 미들마치 말고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고,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은 얼마전에야 그 존재를 알고 사두었다. 아, 그 책이라도 미리 읽어둘 것을. 조지 엘리엇 하나도 안 읽어서 14장 읽을수록 도대체 뭐라는건지 미간에 힘 빡 줘야 하고, 그래서 결국 조지 엘리엇이 혁명적으로 페미니즘 책을 썼다는 건지, 너무 혁명적으로 가려다가 조심했다는 건지, 그래서 여성의 해방에 영향을 미쳤다는건지, 미치려다가 뒤로 주춤했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 거다. 그래서 당장 미들마치라도 읽을까 싶었지만, 여러분 알쥬? 미들마치... 완역본 1,416 페이지.. 어디 한번, 내가 읽어볼까? 하고 지금 집어들기에 적당하지 않은 책. 그런데 한 권이라도 읽어야 14장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거다. 뒤에 디킨슨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환장 지점..
아무튼 그렇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는채로 읽어나갔지만, 그래도 죽음과 해방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는 진짜 짜릿했다. 사실 짜릿했다는 표현이 너무 비도덕적인가?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어떤 경우에는 '살기 위해서' , '죽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락방의 미친 여자》읽다보면 《빌레뜨》의 결말까지 보여주는데, 빌레뜨를 읽으면서도 어떤 '죽음'에 허망하고 슬프면서, 그런데 나는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 어디에도 매어있지 않다', '구속되어 있지 않고 갚지 않아도 된다' 같은 것. 물론 이건 '살기 위해' 죽은 것과는 다르지만, 해방이라는 것, 자유라는 것이 인생의 소중한 가치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보았을 때, 어떤 죽음이야말로 자유의 완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 '살기 위해' 죽는 것에 대해 조금만 더 얘기를 해보자면, 그건 우리의 이야기꾼 '스티븐 킹'이 너무나 잘 그려낸 바 있다.
《별도 없는 한밤에》에 실린 단편 <행복한 결혼 생활>에서는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해온 아내가, 남편이 그동안 여자들을 죽여온 연쇄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된 것도 경악스럽고 그래서 두렵다. 아내가 알게됐다는 사실을 아는 남편은 그걸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아내는 더이상 남편과 사는 것이 두렵고, 그렇다고 신고를 하자니 다 큰 아이들의 삶에 그것이 큰 해를 입힐까 두렵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모르는 채로 이대로 살아야 하는가?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연쇄살인범 남편을 참아야 하는가? 부부생활을 유지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한 건, 그녀가 살기 위해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는 거다. 연쇄살인범 남편의 죽음. 그리고 소설속에서 아내가 생각해낸 방법 역시 내가 생각해낸 방법과 같았다.
'데이비드 버스'의 《이웃집 살인마》에서도 (내가) 살기 위해 (상대의) 죽음을 바라게 되는 경우가 나온다. 이 경우에는 그래서 상대를 죽여버린 경우.
남성들이 자신을 버린 배우자를 살해한 반면, 여성들은 살인이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될 만큼 심하게 자신을 격리하고 학대하며 위협한 배우자를 살해했다. -《이웃집 살인마》, 데이비드 버스, p.174
남성들은 자신의 열등감이나 기분나쁨을 해소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만 여성들은 살기 위해, 탈출하기 위해 살인을 선택한다. 극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선택하게 되는거다. 이것 밖에 방법이 없어! 결국 데이비드 버스도 이렇게 덧붙인다.
간략히 말해,여성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살인의 주된 동기는 자기 보호와 위험한 결혼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필사적인 욕망이다. -《이웃집 살인마》, 데이비드 버스, p.171
《이웃집 살인마》는 소설이 아.니.다. 실제로 벌어진 일에 대한 기록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지어낸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지어낸 이야기는 실제 존재하는 삶에서 비롯된다. 이웃집 살인마와 스티븐 킹의 소설에서는 '나의' 문제 해결을 위해 혹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조지 엘리엇이 다 죽여준다. 전지적 작가로서. 이 여자에게 해방이 필요할지니, 그렇다면 나는 너를 해방시켜 주마. 물론 그 고통과 구속을 준 것도 조지 엘리엇이지만, 남몰래 해방을 바라고 있던 여성들에게 비로소 해방을 주는 것도 조지 엘리엇인거다. 유 노 왓 아 민?? 그 죽음이 상대를 향하거나 혹은 우리의 여자주인공을 향한다 해도, 조지 엘리엇은 고통에서의 해방을 죽음으로 해결해주는 거다.
재닛은 그의 죽음을 원했고, 타당하게도 그의 죽음으로 재닛은 달리 피할 도리가 없었던 감금 상태에서 예기치 않게 해방되기 때문이다. (p.842)
실제로 그들은 그들이 견뎌내야 할 삶을 살기에는 너무 착하기 때문에, 이 셋은 모두 죽음에 의해서만 구원되고 그로 인해 파괴의 힘과 기이하게 연결된다. 세 여자 주인공은 그들 자신을 '죽여' 숙녀다운 온순함과 자기희생의 상태로 들어가는 만큼 알렉산더 웰시가 말하는 '죽음의 천사'의 본보기다. 심지어 그들이 죽음에 굴복하는 것조차 삶의 거부로 볼 수 있다. 이 파괴의 천사들은 죽어가는 자를 보살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죽음을 가져오고, 그들의 환자/희생자를 끝장냄으로써 그들을 '구원한다.' 또는 그들이 충분히 분개할 만한 사람들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더라도 작가가 죽여버린다. 사실 여자 주인공들의 천사 같은 순수성은 작가의 멜로드라마적 반응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리하여 밀리 바턴의 죽음은 비록 그녀를 소홀하게 다룬 남편을 벌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녀 자신을 성모 마리아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단조롭고 고된 가정적 삶에서 벗어날 유일한 출구를 제공한다. 네메시스의 보이지 않는 왼팔은 정원에 있는 와이브로 대위에게 죽음을 내리치며, 그로 인해 카테리나 자신이 그를 죽이는 일을 막아준다. 또한 재닛의 남편을 '차디찬 물'로 끌고 감으로써 비참한 결혼 생활에서 그녀를 해방시킨다. 여자 주인공들이 자신의 분노를 누르고 체념의 필요성에 순종하는 동안, 작가는 네메시스가 되어 여자 주인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p.842~843)
부모의 총애를 우선적으로 받았고, 매기의 지적인 야심을 비웃고, 매기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자유와 나아가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편협한 도덕적인 기준으로 매기를 가혹하게 경멸함으로써 억압했던 오빠인데, 그 여동생은 거세지는 물길에 뛰어들어 오빠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결국 죽음의 '포옹'으로 오빠는 어두운 심연으로 끌려들어가 마침내 벌을 받는다. (p.848)
이 죽음과 해방의 부분이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뒷부분에 바느질로 들어가면 책을 읽어야 뭔가 더 잘 올 것 같아서 집중력 흐려지고 말았지만..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다 읽고난 후라도, 미들마치는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야지. 책값이..
아니, 그리고, 조지 엘리엇 번역된 작품 왜이렇게 많은가요?
아니, 그리고, 성직 생활의 장면들은 왜 번역되지 않았나요? 나는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한데!!
그런데 조지 엘리엇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언급되는데, 와 이거 진짜 세상 재미있을 것 같은 거다. 그래서 이거 사서 읽어야지! 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검색하려다가, 설마.. 나 가지고 있는건 아니겠지? 하고 <산책> 앱에 톰.. 을 넣어봤더니, 샤라라랑~ 준비성 있는 내가 미리 다~ 준비한 부분..

으하하하.. 두권이나 되지만 내 책장에 이미 있다니. 나여, 잘했다. 그런데.. 앗? 나 왜 《톰 소여의 모험》두 권이야? 문동이랑 민음사랑 왜 다 있어?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저 중 어떤 것도 안읽었고 나는 집에 있는줄도 몰랐는데 두 권이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서술하시오..
당황스럽네요.
아무튼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읽어야지. 겁나 재미있을 것 같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고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대한 욕망에 불이 지펴졌다!!
만세!!
고통스러운 재닛은 어머니에게 왜 자신이 결혼하도록 놔두었느냐고 질문할 수 있을 뿐이다. 재닛은 ‘어머니, 왜 제게 말해주지 않았나요? 어머니는 남자들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잖아요. 나에게는 도움의 손길도 희망도 없답니다‘ 하고 말한다. [14장-성직 생활의 장면들] - P838
‘결혼 생활을 박차고 나갔을 때 그녀 앞에 펼쳐질 공허‘와 직면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남편을 떠날 수 없는 재닛은 그녀를 죽일 수도 있고 벽장에 가둘 수도 있(다고 하인들이 생각하)는 남자와 같이 산다. [14장-성직 생활의 장면들] - P838
‘애정 없는 폭군이며 잔인한 남자는 자신의 잔인성을 유발하기 위해 어떤 동기도 필요하지 않다. 남편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자신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여자가 영원히 자기 앞에 있는 것이며‘[13장], 결혼은 정확하게 바로 이런 여자를 제공해준다. [성직 생활의 장면들] - P839
매기는 자신의 세계에서 남자를 통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음을 이해했다.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 P847
부모의 총애를 우선적으로 받았고, 매기의 지적인 야심을 비웃고, 매기가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자유와 나아가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편협한 도덕적인 기준으로 매기를 가혹하게 경멸함으로써 억압했던 오빠인데, 그 여동생은 거세지는 물길에 뛰어들어 오빠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결국 죽음의 ‘포옹‘으로 오빠는 어두운 심연으로 끌려들어가 마침내 벌을 받는다. 화자는 제사와 소설의 마지막 문장에서 다음을 확신시킨다. 생애 전반을 통해 톰과 매기는 분리되어 있었지만, ‘죽음 속에서 그들은 분리되지 않았다.‘ 요컨대 엘리엇은 근친상간적인 죽음의 사랑이라는 치명적인 결합 안에서만 그들의 불화를 해소할 수 있었다.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 P848
톰을 죽이는 물과 친화성이 있는 매기는 강을 신뢰하는 로몰라와 닮았다. 강은 그녀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남편에게는 죽음을 주었으니 말이다. - P854
도러시아는 일단 ‘결혼의 문턱‘을 지나자 ‘바다는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자신이 ‘막힌 웅덩이를 탐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를 따라가면 넓은 바다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는다. [미들마치] - P864
미스터 몰의 지하 결혼식장에 갇힌 엄지 공주처럼 도러시아는 아내가 되자 생매장을 경험한다. [미들마치] - P864
도러시아는 결혼 생활에서 ‘남편의 마음에 드는 편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고의 자기 영혼을 감옥에 가두고 몰래 방문하는 것 같다‘고 느낄 뿐 아니라, 실비아 플라스가 상세히 기록한 ‘얇은 종이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 [미들마치 42장] - P866
여성들은 강간이 아니라 여성의 공모에 의해 죽음과 같은 결혼에 이른다고 설명한다. 엘리엇은 여성의 내면화를 둘러싼 문제를 분석하면서 그릇된 남성 신에 대한 도러시아의 숭배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녀가 곤경에 처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 P866
루시가 폴의 사랑을 잃을까 필사적인 것처럼, 도러시아도 윌의 사랑을 잃을까 필사적이 된다. - P906
엘리엇은 일이 주는 명확함이 없는 여자들에게는 안정된 자아나 단일한 중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극적 은유를 차용한다. 엘리엇의 여성 인물 중 최상의 인물, 즉 분장이라는 유혹을 두려워하는 (안티고네, 페르세포네, 아리아드네 같은)인물들이 위험한 속박의 유혹에 치명적으로 이끌리는 이유는 바로 이 끔찍한 공허에서 생겨난 존재론적인 불안 때문이다. - P908
스토(톰 아저씨의 오두막)는 여자들이 자살하거나 남을 살애하지 않고도 조상의 저택에 갇히지 않을 방법을 탐색하기 때문이다. - P911
캐시는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느라 쪼그라들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죽어버린 자아의 유렴이염 리그리의 학대로 살해당한 자아다. 동시에 하얀 옷을 입은 이 흑인 여자는 스토가 묘사한 저항할 수 없는 가부장적 노예 경제에 의해 노예화된 모든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유대를 보여준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 - P913
흰옷을 입은 이 여자, 흔적 없는 아내를 통해 스토도 조지 엘리엇의 파괴의 천사가 자아 분노와 체념의 엉킨 실을 조명한다는 것을 알았다. - P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