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자 클라크와 윌은 이제 정이 들어버렸다. 옴팡 들어버렸다. 아니, 단순히 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은 사랑에 빠져버렸다. 성인 여자와 성인 남자가 매일 일정시간 이상 함께 있다고 무조건 사랑이 싹트는 것은 아니겠지만, 윌이 보기에 클라크는 너무 스마트하고 재미있는 여자였고 클라크가 보기에 윌은 따뜻하고 매너 있는 남자였다. 아, 물론 핸섬하기도 했고. 게다가 윌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사람이라 자연스레 문화적인 경험도 루이자보다 훨씬 많았다. 루이자에게 매번 새로운 세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지난번 페이퍼에 나는 이걸 '합'이라 표현했는데, '네가 경험하지 못한걸 도전해봐!'라는 것은 듣는 사람에게 오지랖이며 잔소리가 될 수 있다. 자신은 해보았다는 우월함이 그 안에 있기도 하다. 나는 그런 말을 누군가로부터 들으면 싫고 그래서 가급적 하려 하지 않지만, 그러나 꼰대같이 튀어나와버릴 때가 있다. 만약 내가 꼰대같은 잔소리를 했는데 상대가 그걸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조언이었고 그로 인해 인생이 더 풍요로워졌다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 상대와 나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혹은 도움을 주는 합이 잘 맞는 관계일 수도 있겠다. 다시, 윌과 루이자가 사랑에 빠진 얘기로 돌아가보자.
윌은 전여친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돌연 마음을 바꾼다. 전여친이 윌의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고 다소 신경질나는 일이었고 그러나 그 둘이 윌의 상황을 놓고 자주 만나 같은 고민을 나누다보니 연인이 되었고... 뭐 이런 일은 일어나고 그러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데 윌이 가지 않기로 했던 이 결혼식에 갑자기 가겠다고 하는 거다. 루이자, 우리 같이 갑시다! 그래서 그 둘은 결혼식에 맞게 예쁘게 차려입고 결혼식장에 간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그 날 돌아오는 일정을 계획하긴 했으나, 루이자가 술을 마시게 된다. 술인줄 모르고, 과일 음료인줄 알고 마셨는데 그게 술이었고 음주 운전을 할 수는 없으니 그들은 이렇게 된 거 근처 호텔을 잡고 그냥 술을 더 마시고 즐기기로 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음악이 나오고 모두 춤을 추는데 루이자는 윌에게 우리도 춤을 추자고 한다. 조심스레 윌의 무릎에 앉고 윌은 그런 루이자를 태우고 휠체어를 돌려가며 음악에 맞춰 움직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뭐 상관없다. 그들에겐 서로만 있을 뿐이다. 루이자는 루이자대로 자신이 윌을 좋아하는 마음을 동생에게만 살짝 말햇던 터다. 윌이 루이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윌은 말한 적 없지만 윌의 가족도 이미 눈치챘고. 그리고 이렇게 춤을 추는 가운데, 윌이 말한다.
'Do you know something?'
I could have looked at his face all night. The way his eyes wrinkled at the corners. That place where his neck met his shoulder. 'What?'
'Soemtimes, Clark, you are pretty much the only thing that makes me want to get up in the morning.' -p.350
"혹시 이런 거 알아요?"
밤새도록 그렇게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았다. 특유의 눈가에 잔주름이 지는 웃음. 목이 어깨로 이어지는 그 지점.
"뭔데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 밖에 없다는 거." -책속에서
윌은 자기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지금의 삶은 자기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대로 삶을 더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는 안락사를 원하고 식구들에게도 이미 그렇게 말해둔 터다. 다만 지금 그가 살아있는 것은 식구들이 시간을 좀 달라고 말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6개월의 시간을 식구들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식구들은 그 6개월동안 그의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고, 그런 그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 싶어서 사람을 고용했고, 그게 루이자 클라크였던 거다. 처음엔 루이자의 등장에 관심도 별로 없고 퉁명스러웠던 윌이, 이제는 내가 사실 다음날 눈을 뜨고 싶은 이유는 너 밖에 없어, 라고 말하는 거다. 크 -
이건 정말로 낭만적인 이야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내가 눈뜨고 싶은 이유는 너 뿐이야'라고 내 눈을 보고 말해줄 때 얼마나 좋겠는가.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는 윌과 그 말을 들은 루이자 사이에 오고가는 감정과 교류는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저 대화가 오고가는 그 짜릿함과 가슴 폭발할것 같은 설렘은, 사람들이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저 대사가 낭만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말이다. 매우 로맨틱하다고도 생각난다. 정말이다. 윌이 루이자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루이자가 윌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처음부터 그들의 감정 흐름을 따라오고 읽어가노라면, 저 대사는 저들에게 서로 좋은 대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나는 저런말 안듣고 싶다. 저 말이 나쁜 말이라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침에 깨어나는 유일한 이유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오로지 나 때문에만' 아침에 눈뜨고 싶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내 생각을 한다면 그건 베리 굿이다. 그래, 그건 그럴 수 있다. 정미경 소설가도 자신의 소설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눈 떠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그건 좋지만, 그러나 유일한 이유가 되고 싶진 않다. 나 또한 다른 누군가를 내 삶의 유일한 이유로 삼고 싶지 않다. 유일한 건 안된다. 의존도가 너무 크다. 그리고 그 유일함이 사라졌을 때 무너지고만다. 안된다. 하나, 유일한 거 말고 다른 것들이 더 있어야 한다. 단 하나 말고 둘, 셋 이 가급적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붙들고 있는 이 단단한 줄 하나가 끊어졌다고 해서 내가 추락하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줄을 더 붙들고 있다면 하나의 단단한 줄이 끊어졌어도 다른 줄들이 나를 지탱해준다. 기어코 다른 줄들을 붙잡고 다시 올라올 수 있는 거다. 하나면 안된다, 하나면 안돼, 여러개가 필요하다. 닉 혼비는 자신의 소설 《어바웃 어 보이》에서 소년의 입을 빌어 말을 했다. 둘은 너무 적어서요. 그러니까 소년과 엄마 단 둘 뿐이었던 삶에서 엄마가 자살을 시도한다. 소년은 엄마가 죽는다면 세상에 자신이 혼자 남게될거란걸 깨닫고 둘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서는 둘이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이 더 필요하다. 윌이 루이자에게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는 오로지 너 때문이야, 라고 말하는 그 마음은 너무나 생생하지만, 그러나 그렇다.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루이자가 부족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루이자 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을 지탱하고 지속하고 유지하는 것은. 얘들아, 여분의 사람이 반드시 필요해. 단 한 명만 바라보는 삶 노노해. 다른 사람도 필요하고 다른 것들도 필요해. 일, 돈, 취미생활 기타등등. 다른 많은 것들로 가지를 뻗치자!!
자, 나는 눈빛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호텔밤에서 하루를 보낸다. 당연히 윌의 가족들은 걱정하고 난리가 났다. 다음날 무사히 돌아와 안도했지만, 도대체 왜 연락이 안됐느냐, 너네 외박한다고 말하지 않았잖아, 윌의 부모님은 걱정하고 루이자의 남자친구는 짜증나고, 네이선은 윌의 하룻밤동안의 몸 상태가 걱정된다. 그런데 얼라리여? 이 둘, 루이자와 윌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자,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푹 쉬도록 하라며 윌은 루이자를 집에 보낸다. 그리고 루이자의 모습을 좇는다.
And then Will turned to her and told her to take it easy for the rest of the day. Go home, get changed, maybe catch forty winks.
'I can't be walking around the castle with someone who has so clearly just done the walk of shame.' he said.
'Walk of shame?' I couldn't keep the surprise from my voice.
'Not what walk of shame,' Louisa said, flicking me with her scarf, and grabbed her coat to leave.
'Take the car,' he called out. 'It'll be easier for you to get back.'
I watched Will's eyes follow her all the way to the back door.
I would have offered you seven to four just on the basis of that look alone. -p.353
그러자 윌이 그녀를 보고 하루 동안 좀 편하게 쉬라고 말했다. 집으로 가요, 옷 갈아입고, 한잠 말고 마흔 잠쯤 푹 자고.
"누가 봐도 불타는 밤을 보내고 온 티가 역력한 사람을 끌고 성이나 산책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가 말했다.
"불타는 밤?"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서 놀란 티가 배어나고 말았다.
"그런 불타는 밤 아니에요." 루이자가 스카프로 나를 살짝 때리더니 코트를 들고 나갈 채비를 했다.
"차 가지고 가요." 그가 외쳤다. "올 때 편하게 오게."
나는 윌의 눈길이 뒷문까지 계속 그녀를 좇는 걸 지켜보았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았다. -책속에서
왜, '누가 봐도 불타는 밤을 보내고 온 티가 역력한 사람을 끌고 성이나 산책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가 'I can't be walking around the castle with someone who has so clearly just done the walk of shame.' 일까. 그러니까 앞에는 알겠는데 어느 지점에서 '불타는 밤'이 튀어나오는 걸까. walk of shame? 이건가? 이게 불타는 밤이야? 불도 밤도 없는 문장인데? 그래서 나는 'walk of shame'을 검색해본다. 오호라. walk of shame 은 그 자체로 '전 날 누군가와 밤을 샌 흔적이 남은 차림새로 다니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오...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제 이걸 알았으니 앞으로 나의 영어 원서 읽기에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임하게 되었다. 으하하하하.
그리고 저거, 만리장성. 나는 번역본으로 읽었고 처음부터 읽었으니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지만, 그런데 만리장성? 원서에는 만리장성이란 표현이 없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영어 문장을 보니 'I would have offered you seven to four just on the basis of that look alone' 인데, 이게 어떻게 만리장성이 되는가. 나는 이 문장 자체도 잘 이해가 안됐다. 나는 제안했을것이다 칠에서 사.... 이게 뭔말이여. 나는 이 문장 자체를 번역기에 넣고 돌려보았다. 그러자 이런 문장으로 해석되었다.
'그 모습만 보고 7대 4로 제안했을 거예요.'
오, 그러니까 7대 4로 제안한다는 것 자체에서 승률이 높다는 것이고, 그것을 번역본에서는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았다고 번역했구먼. 오호라.. 그래 의미가 그게 그거긴 하지. 자, 그렇다면, 눈빛.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겠다고 말하는 눈빛, 그 눈빛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떤 눈빛이 타인으로 하여금 '저 눈빛을 보니 단단히 사랑에 빠졌군' 같은걸 느끼게 하는걸까? 그런 눈빛을 나는 본 적이 있나?????????????????????????????????????????????????
나는 이 눈빛에 대해 진짜 계속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눈빛을 쏘아주던 사람...에 대해서.... 딱히 기억나지 않다가, 얼마전에 회사 직원에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씨 나 너무 좋아하네. 다 티 나."
"앗, 제가 원래 좋아하면 티가 너무 나요."
글쎄 그 직원이 눈으로 나를 엄청 좇는다고 해야 하나, 눈에 애정을 막 담고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지는 거다. 절대 틀릴 리 없을 것 같은 어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향하는 거다. 일전에도 다른 직원이 나랑 밥 먹다가 나를 그렇게 보는게 느껴졌는데, 그 직원이 그 때 그렇게 한참 보다가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과장님이 왜케 예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때 과장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거 말고 연애에서 상대의 뜨거운 눈길을 받았던가, 를 떠올려보려고 했는데 그냥 다 변태눈깔만 생각나네. 하아-
왜 로맨스 소설 보면 그런 표현이 자주 나오지않나. '그 사람이 널 보는 눈빛을 봤어' 이런거. 넷플에서 본 브리저튼 시리즈에서도 '아니, 저 눈빛을 왜 내가 이제 봤지?' 뭐 이런 것도 나오고. 그러니까 타인이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사람을 향한 뜨거운 눈! 빛! 이건 현실에서도 간혹 듣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야 그 사람이 너 좋아해, 그 눈빛을 내가 봤어' 이런거. 나는 사실.. 잘 모르겠네? 그런가? 아, 그런 적은 있다. 일전에 회사 동료가 나랑 애인이 함께 걷고 있는 걸 봤는데 내가 애인을 너무 뜨겁게 보고 있어서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그냥 갔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한때 연애했던 남자가 나한테 '너 처음만날 날 네 눈빛에서 키스를 원한다는 걸 읽었어' 라고 했었는데, 키스를 원하는 눈빛.... 같은거........음 모르겠다. 아침부터 19금 하지말자. 여하튼, 저거, 가는 뒷모습을 눈으로 좇고 누가 봐도 아이고야, 7대4에 걸겠다... 막 이렇게 되는 눈빛 같은거.............. 그런게 있는거늬??????????????? 나한테도 있었던거늬???????????????????????? 아이 돈 노.........
금요일엔 퇴근하고 집에 가서 파김치를 담갔다. (네?)
내가 파김치를 담갔다는 소식에 여동생은 '와 언니 진짜 체력좋다'고 했고 친구 하나는 '왜 파김치가 되어 집에 가서는 파김치를 담갔지?' 라고 했다. 아... 퇴근후 파김치 담근거로 나.. 체력 좋은게 되는건가?? ㅋㅋ
그러니까 파김치를 왜 담갔느냐면, 아니 티비에서 전현무가 파김치 담가서 이국주 집에 방문한 걸 보게 된거다. 이영자 레시피 그대로 따라서 만들었고 너무 맛있다고. 그걸 보는데 사실 내가 파김치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뭐라고? 전현무가 파김치를? 그러면 나도 할 수 있겠네! 전현무가 하는데 내가 왜 못해? 이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급 이영자 레시피를 검색했는데 꽃게액젓이 필요하더라. 오, 사려고 봤더니 여기저기 죄다 품절이야. 다들 나같은 마음으로 파김치를 담그느라 꽃게액젓 품절현상... 하는수없이 나는 집에 있는 멸치액젓으로 파김치를 담가보았다.


주말엔 여동생 식구들이 왔다. 저녁에 뭐 먹을래, 뭐 사줄까, 했더니 타미가 '이모, 나 토마토 스프!' 해서 토마토스프를 만들고 치아바타를 구웠다. 와, 엄청 잘 먹는데 그거 보고 너무 뿌듯했다. 무엇보다 이모에게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게 너무 좋은거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고나 할까... 음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타미가 치아바타에 토마토 소스 올려 먹는 모습을 보는 내 눈빛, 그게 바로 찐사랑 눈빛이었을 것이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