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출근길에는 시사인 784호를 펼쳐들었다. 시사인을 받아들면 제일 먼저 <새로 나온 책>코너를 살피고 관심가는 책이 있으면 부랴부랴 장바구니에 넣는다. 오늘은 관심가는 책이 없더라. 그 후 영화 리뷰를 읽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로 넘어갔다. 책 리뷰 코너에서도 역시 장바구니로 옮겨지는 책들이 생겨나곤 하는데 오늘도 그랬다. 오늘 장정일은 친구 출판사에서 나온 책 세 권을 소개한다고 했다. 나는 그 중 제일 첫번째로 소개한 이 책에 끌렸다.
앤 윌슨 섀프의 《중독사회:우리는 모두 중독자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도입부에서 이 책을 우선 소개하면서 이 책은 2016년 5월에 출간되었는데, '사회가 중독자가 될 때(When Society Becomes an Addict)'라는 원제에 가까운 한국어판 제목은 마땅히 받아야 할 여성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왜 이 책은 마땅히 여성 독자의 관심을 받아야 하는 책인걸까?
이 책의 저자 앤 윌슨 섀프는 ''중독 시스템'이라는 용어를 '백인 남성 시스템(White Male System)'이라는 명료한 용어로 가다듬었' 다고 한다. 중독.. 을 백인 남성.. 과 연관 시켰다고? 요즘 즐겨 보았던 시트콤 <원 데이 앳 어 타임>에도 알콜중독에 힘들어하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8년간 술을 잘 끊었다가 자신이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버지로부터 어김없이 또 멸시당하자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남성. 우리의 주인공 '루피타'는 그의 다시 시작된 중독을 알게 되고 그를 상담사에게 보내고 마음을 써준다. 약물 중독이나 알콜 중독, 도박 중독 같은 걸로 중독을 떠올리게 되는데 도대체 '백인 남성 시스템'이 이 책에서 어떻게 흘러가기에 도달하는걸까? 또한 이 책에서는, '백인 남성 시스템의 공범이 '반동 여성 시스템(Reactive Female System)'이다. 많은 여성들은 백인 남성 시스템과 동반 관계를 맺은 채 백인 남성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성장해 나가도록 돌보는 역할을 맡는다. 지은이는 반동 여성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전공인 중독 치료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아니, 너무 궁금하지 않은가?
보통 중독자들이 계속 중독자로 머무르는 건 그 사람을 그렇게 되게끔 하는 보조인물이 있다는 얘기들을 한다. 술값을 대주는 사람, 약값을 대주는 사람. 그러니까 문제를 계속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
이 책에서는 그걸 '동반 중독'이라고 말하는데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가족이나 돌봄 담당자들이 그들의 이타심 때문에 심신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중독자보다 더 열악한 삶을 살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는 거다.
아니, 진짜 너무 궁금하지 않나. 너무 읽어보고 싶지 않나.
그래서 나는 또 부랴부랴 장바구니에 담기 위해 검색하는데, 아니 장정일 님.. 지금 뭐하시는거예요?
품절된 책 소개하기 있긔없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참나원 진짜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친구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소개한다며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면 그 소개로 인해 그 책 더 잘팔리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말인가? 여기에 리뷰를 쓰는 이유가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을 소개하고 읽게 하려고 하는거 아니야? 어째서, 왜 때문에, 품절인 책을 소개하죠? 아놔 어이없네. 게다가 구할 수 없습니다 라는 문구도 뜬단 말이야?
중고상품 제일 저렴한게 16,500원이고 이 책의 정가는 17,000 원이다. 교보문고나 예스24를 가면 중고로 30,000원에 책정되어 있다. 지금.. 장난해?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때문에 품절인 책을 소개하죠? 아 어이없네. 너무 읽고 싶잖아?
어쩐지 밑줄 박박 그어가며 읽고 싶은 책인데 살 수 없다니.. 너무 슬프다. 슬픔의 새드니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볼까 싶어 도서관에 검색했더니 있더라. 히히 그러면 오늘 가서 빌려볼까~ 룰루랄라~ 했다가 어라? 우리 도서관 목요일에 쉬지 않나? 하고 체크해봤더니 아뿔싸 .. 오늘 도서관 쉬는 날이네? 껄껄.
장정일 님, 지금 저한테 뭐하신거예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품절돼서 너네는 못읽는 책 나는 읽었지롱~
이거 하신거예요?
이번 시사인에는 10년만에 새 시집을 낸 진은영 시인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시집의 제목은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진은영은 '사랑'이란 "어긋난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래서 '사랑하기'가 낳는 불가해한 낙담, 나의 의도와 다른 결과가 발생할 때의 통증 앞에서 '미래는 장밋빛일 거야'라는 아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겠다'는 의지만이 정확한 사랑의 태도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시사인 784호, p.63 (진은영 인터뷰 중)
나 역시도 사랑을 구성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어떤 단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곁에 있기를 선택하는 것.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았을 경우 상대의 단점은 '그러므로' 떠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하고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좋은 연인이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타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둘 자신이 없다. 나는 '그러므로' 내팽개쳐버릴 것 같은 그런 사람이라서. 나이들수록 점점 더 그러는 것 같아서.
여전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하는 진은영 시인은 앞으로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진은영 시인이 말한 사랑은, 이 인터뷰에서도 언급되지만, 반드시 연인의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공감과 연대, 인류가 모두 포함된다.
무엇보다 시집의 제목이 좋은데,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라는 구절이 그 자체로 시같은데, 그러나 ..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한다는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오래된 거리가 반드시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니까. 오래된 거리는 여행지에서는 구시가지.. 뭐 이런거 아닌가. 아아, 나는 정말이지 시를 읽을 수 없는 몸이 된 것 같아. 오래된 거리.. 랑 사랑? 막 이렇게 되어서. 오래된 거리를 사람들은 사랑하나요? 저는 신시가지를 좋아합니다..
아무튼 내가 제목을 보고 떠올린 건 '에피톤프로젝트'의 노래 <이화동>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동네에 특별한 사연이 숨겨져 있고, 그래서 그 동네 자체로 노래를 만들거나 글을 쓸 수도 있다. 어쩌면 진은영 시인의 '오래된 거리'도 그런 개념이엇을 것이다. 나는 에피톤프로젝트의 이화동 노래가 너무 좋아서, 도대체 그 동네가 어떻길래 에피톤프로젝트는 이런 노래를 만든걸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그 좋은 노래의 배경이며 소재가 된 곳, 그곳은 어떤 곳일까. 그래서 하루는 날잡고 이화동엘 갔는데, 정말이지 아무런 특별한 게 없는거다. 음.. 역시 어떤 장소가 특별해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연이 더해진 것이겠구나 싶었다. 이화동은 노래로만 좋아할 수밖에 없겠군.
이게 서태지도 무슨 동네로 노래를 만든 걸로 기억하고, 이효리도 제주도에 거주하면서 서울이란 노래를 만들었는데, 서태지 노래는 안들어봤고 이효리 노래는 일부 조금 들어봤지만 좋지 않았다. 역시 사연은 모두 저마다의 것.
그렇다면, 만약 내가 노래를 만든다면, 그러면 나는 어느 동네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자하마 '신사동'이 떠올랐다. 신사동이 좋아서가 아니라 너무 싫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정확히는 신사동이 싫은게 아니라 가로수길이 싫었다. 평소 가로수길 갈 일도 없는데 엊그제 급하게 애플스토어 가야 해서 가로수길을 가게 됐다. 핸드폰을 맡기고 한 시간의 공백이 생겨 가로수길을 조금 걸었는데 어우 야.... 내 타입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지금 애플스토어 때문에 여기 왔지만, 애플스토어 아니면 올 일이 없을 곳이군, 했다. 까페도 술집도 식당도 다 내가 들어갈 마음이 생기질 않더라. 어떤 분위기가 어떻게 작용한건지 모르겠지만 가로수길 .. 내 타입 아니네요. 반면 수리가 끝난 아이폰을 찾아서 논현역으로 가기 위해 걸었던 신사동 큰 길은 좋았다. 아 나는 이런곳이 좋아 가로수길은 영 아니야... 라는 생각을 그날 정말 강하게 해서, 신사동 너무 각인되어 버렸고 '만약 내가 어떤 장소로 노래를 만든다면?'을 떠올리자 바로 신사동이 튀어나와 버리는 것이다. 아직 가사는 짓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가로수길보다 로테르담이 더 좋다. 가로수길보다 호안끼엠 호수가 더 좋다. 가로수길보다 맨하튼이 더 좋다. 아 임 쏘리, 가로수길.. 우린 아닌 것 같아.
이화동이나 듣자.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이화동.
이별을 하고 이별의 포옹을 하고 눈이 부시게 화창한 다음날 아침 버스 안에서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들었던 곡.
이화동이나 듣자.
우리 두 손 마주잡고 걷던 서울 하늘 동네
좁은 이화동 골목길 여긴 아직 그대로야
그늘 곁에 그림들은 다시 웃어 보여줬고
하늘 가까이 오르니 그대 모습이 떠올라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 해 오월 햇살
푸르게 빛나던 나뭇잎까지
혹시 잊어버렸었니?
우리 함께 했던 날들 어떻게 잊겠니?
아름답게 눈이 부시던
그 해 오월 햇살
그대의 눈빛과 머릿결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해
아직 난 너를 잊을 수가 없어
그래, 난 너를 지울 수가 없어...
음.. 이 페이퍼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화동으로 끝낼 생각은 없었는데 슬퍼져버리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