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카다레 작품은 이번이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잘 모르겠다. 읽으면 막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것 같은데 또 읽게 되고 그러네? 이 책 읽으면서 제목이 '떠나지 못하는 여자'인 것은 정말 떠나지 못하는 여자이기 때문이구나, 깨달았다. 책의 제목이라는 것은 때로 정말 그 내용을 품고 있다. 물론, 그것이 마땅하긴 하겠지만.
린다 B 는 이 책의 주요인물이 아니라, 주요인물들이 화제로 삼는 인물이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라는 것은, 유배당해 자기 집과 학교 밖에 다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린다 가 유명한 작가에게 연정을 품게 되면서 도시에 있는 그를 만나러 가고 싶어하고, 그러나 자신은 도시로 갈 수 없는 처지기에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친구가 그 작가의 사인회에 갔다가 린다의 이름으로 책에 사인을 받아 린다에게 전달한다. 그 일을 계기로 친구는 작가와 연인이 되는데..
책의 앞에는 알바니아 여인들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있다. 알바니아에서 유배를 당하면 5년마다 그 자격을 통보받게 되는데, 5년을 꼼짝없이 갇혀 지내다가 정부로부터 5년후에 받은 안내문에는 너의 유배가 연장되었다는 소식이 대부분이라 절망에, 절망에, 절망을 거듭하게 되는거다. 그런 린다가 유방암 검사를 받고자 한다. 친구가 검사를 받는데 따라가 자신도 검사를 받고 싶어하는 것. 너 혹시 어디가 아프니, 어떤 증상이 있는거니 놀라는 친구에게 린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다. 아무런 증상이 없지만, 있기를 바라는 것. 있는걸 알아내기 위해서는 일단 검사가 먼저여야 한다. 유방암 검사를 받고 부디 나에게 유방암이라는 진단이 떨어지기를. 유방 촬영은 린다의 '유일한 기회고 유일한 희망' (p.155) 이었는데, 유방암으로 판정이 나면 도시로 나와 치료를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거다. 한 달에 한 번 기차로 오가며 추적검사를 받아야 하고 여기에는 1박2일이 소요되는 것. 이 기간이 여섯달에서 여덟달 정도 행해지는데, 유배된 곳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그래서 이걸 갖고 싶은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방암이어야 하는거다.
그러나 검사 결과 린다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고, 그 결과를 통보하는 간호조무사는 린다가 그 소식에 기뻐하지 않자 당황한다. 린다는 절망한다. 본인이 암이 아니라는 사실에. 암이 없다는 것은 그녀에게 절망적이었다.
암이 아니라서 도시로 올 기회도 없고 유배된 삶은 또 지속될 것이며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앞으로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린다는 본인에게 죽음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기 위해서는 암에 걸리는게 그녀에게 필요했고 절실했다.
이해하겠니? 난 단 하루도 자유를 경험하지 못할 거야. 린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상상이 가니? 단 하루도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말이야 …… 어디에도 아무 희망을 걸지 못한다는 것……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몰라서 난 암에다 마지막 희망을 걸었어 ……암이 도와주길 기대했어……그런데 암마저도 날 거부했어…… (p.184-185)
이번 <시사인 780호>에서는 김이경 작가가 '카렌 암스트롱'의 《마음의 진보》를 읽고 쓴 서평이 실려있다. 마음의 진보는 카렌 암스트롱의 자서전인데 17세에 수녀원에 들어갔다 환속하고,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종교학자료 변신해 화제작을 쓰기도 했단다. 이 책은 카렌 암스트롱이 인생의 고비에서 변신을 거듭하면서 힘들었던 실패들을 드러낸다고 한다. 서평 중에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
그를 괴롭힌 것은 외설적인 실패만이 아니었다. 수녀 시절부터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곤 했는데, 기억상실을 동반한 졸도 증상이 갈수록 심해져 그는 심한 공포와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수녀들은 감정 조절을 못한다며 의지박약을 탓했고, 정신과 의사들은 "정체성 혼란, 성적 갈등"을 운운하며 "똑똑한 여학생일수록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증상을 만든다고 확언했다. 모든 게 병든 정신이 만들어낸 환각이란 진단은 증상만큼이나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밝혀진 병인은 환각이 아닌 뇌전증(간질)이었고, 그는 환호한다. 간질병이 기쁨이 될 만큼 그의 절망과 외로움은 깊었던 것이다. -<시사인 780호>, 김이경의 여여한 독서, p.66-67
카렌 암스트롱이 가진 절망은 감히 누구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커서 간질병이라는 진단에 오히려 환호한다. 그동안 수녀님들이 말했던 것, 정신과 의사들이 내게 말했던 것, 그것들이 틀린 거였어, 나는 단순히 간질병이었다고! 라고 생각하는 그 마음과 또 그 때까지의 고통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린다의 유배는 얼마나 절망적이었기에 차라리 암에 걸려 한 달에 한 번 도시를 갈 수 있게 되기를 꿈꿨던걸까. 암이 아니라는 것이 죽고 싶게 만들정도로 유배라는 고통은 그녀에게 컸던 것인데, 제삼자는 그 고통과 절망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간혹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나라면' 을 생각해보지만,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만약 나라면'을 생각할 뿐 실제로 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온전한 이해는 불가한 것 같다. 나라면? 이라는 생각은 이미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게 아닌가. 나는 내가 겪은 절망만을 알 뿐이고 내가 듣거나 본 절망들에 대해 짐작해볼 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내가 차마 알지도 못하는 절망들이 수두룩하다. 카렌 암스트롱의 절망도 린다의 절망도 이 책들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모르는 절망들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수만큼이나 절망의 수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진다. 어쩌면, 사람수보다 더 많은 절망이 있겠지. 나라는 인간이 살면서 단 한가지의 절망만 느끼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절망이 있다. 차라리 암에 걸리고 싶어, 간질이라니 너무 좋아! 라고 생각하게 되는 절망이 이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절망들이 곳곳에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소식이 누군가에게 유일한 희망이기도 한 삶이 존재한다.
세상은 뭘까?
인생은 뭘까?
역시 그래서! 책을 살 이유가 늘어나는 것 같다. 카렌 암스트롱 책 사야지.
지난주엔 이런 책들이 도착했다.
《슈뢰딩거 생명이란 무엇인가》는 얼마전에 읽었던 ...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그 책 보고 슈뢰딩거 궁금해져서 샀다. 원래 제목이 뭔지는 알아서 다들 해석하시길 바랍니다.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라서 샀다. (이거 공지 곧 올릴게요!)
《라이겐》은 얼마전에 읽었던 《자유죽음》에서 언급된 <구스틀 소령>이 실려있다고 해서 샀다. 알려주신 ㅈㅈㄴ 님 감사해요! 문학 천재 님..
다른건.. 뭐 다 그때그때 이유가 있어서 샀을 것이다. 잘 기억은 안난다.
토요일에는 원서를 같이 읽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는 어쩌다보니 모두 같은 나이고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똑같이 품고 있었고 그래서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어떻게 이렇게 저렇게 하고 있는데,
토요일에 만나서 함께 맛집이라 소문난 순대국집에 가 대기를 하다가 순대국을 먹고 낮술을 하고 그리고 2차로 가기로 했다. 우리가 2차로 가기로 한 레스토랑은 일전에도 가본 곳이었고(두번이었나) 그래서 '2차는 그 때 거기!' 라고 해서 모두들 어디를 말하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1차에서 나온 후에야 우리가 아무도 그 레스토랑의 상호도, 그 레스토랑이 있는 빌딩도 알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셋 다 빵빵 터져가지고, 왜 우리 아무도 몰라? 하면서 그렇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위치는 알아? 하면서 셋이 저쪽 라인 아니야? 이쪽 라인인 건 확실해, 라면서 대략 이 라인.. 뭐 이런 얘기만 하고 있는 거다. 아 너무 웃겼네. 그러다 한 명이 그 날 찍었던 사진을 검색해서 찾았어! 라고 했지만 그 사진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고, 일단 이쪽 같으니까 가보자, 하면서 우리 셋다 길치에 방향치인데 심지어 아무도 갔던 데가 어딘지 모르네 이러면서 깔깔 거렸다.
기어코 레스토랑을 찾아내 피자와 와인을 시켜두고 서로 준비해온 선물을 주면서 깔깔거리고, 그런데 친구가 준 선물 미스트에 써진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멀찌감치 밀어내며 눈을 찡그리면서 아, 노안 어떡해... 잠깐 절망하고, 그리고 온갖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제 그만 가자, 일어서서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보통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다른 친구들도 아마도 그렇다고 짐작하는데, 한껏 배부르고 좀 추웠던 우리는 까페로 들어가서 제각기 따뜻하고 포근한 커피들을 골랐다. 플랫 화이트, 바닐라 라떼, 캬라멜 마끼아또. 나는 이렇게 포근한 커피를 마지막 메뉴로 선택한 것도 이상하게 마음이 좋았다.
각자 영어 공부에 대해 알고 있는 팁을 얘기하고
멤버1: 문법책을 봐야 된대
멤버2: 무조건 단어래
멤버3: 팝송 듣는게 장땡이라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9금 얘기 속삭이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동갑내기들끼리 좋은 시간이었다. 각자 처한 상황도, 자라온 환경도 완전히 다르고, 성격도 다른데, 그런데 만나면 서로 존대하면서 재미있다. 너무 좋은 시간이다 진짜. 이것도 다 내 복이다. 후훗.
우리 사랑 뽀에벌! 하면서 헤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말동안에는 글을 쓰질 않으니 월요일 되면 글 쓰고 싶어서 폭발하는 것 같다. 물론 이번 주말인 어제에는 엄청난 글을 쓰긴 했지만... ☞ [알라딘서재]황홀경 저 너머 사랑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aladin.co.kr)
아무튼 오늘 두 개의 페이퍼를 쓰고
(하나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안내입니다!! ☞ [알라딘서재][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aladin.co.kr))
또 이렇게 다다다닥 쓰고... 내 안에 글이 너무 많다.
점심엔 고등어구이 먹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