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화이트와인을 마시면서 티비를 시청했다. 다시보기로 <세계테마기행>을 봤는데, 에콰도르 편이었다. 에콰도르에는 '침보라소산' 이라고 휴화산이 있는데 맨 꼭대기에는 빙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빙하를 캐서 파는 얼음장수가 있었다. 이제는 단 한 명만 남은 얼음장수라는데 그는 매번 이 높은데까지 올라와 얼음을 캐고 그 얼음을 시내로 가져가 팔고 있었다. 시내에서는 그 얼음을 사서 과일쥬스에 넣고 만들어 손님들에게 파는데, 이 얼음은 인공 얼음보다 더 오래가고 건강에도 좋다고 했다. 산에서 캐오는 얼음이다보니 이물질이 있었는데 그걸 물로 한 번 휙 헹구고 식용하는 거였다.
산에 올라가 얼음을 캐고 그것을 가지고 내려오는 일은 힘든 일이라 구매자가 있다고 해도 이제 판매자가 없다는데, 그 노동의 장면들을 보노라니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얼음을 얼마에 팔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생스런 일에 비해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벌지는 못할터였다. 게다가 빙하로 덮인 곳이다 보니 차를 끌고 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얼음을 캐서 어떻게 가지고 내려오느냐? 이왕 올라간 거 손에 들 만큼만 캘 수는 없을 터, 한 번에 30kg 짜리 덩어리로 캐던데, 그 얼음을 도대체 어떻게 가지고 산을 내려오느냐, 하면, 맙소사, 당나귀였다. 당나귀에 등에 그 얼음을 싣는 거였다. 녹지 않게 짚이었나, 뭔가로 싼 다음에 그걸 당나귀 등에 얹더라. 그런데 그 한덩어리가 아니라 한 덩어리를 더 싣는 거였다. 그러니 당나귀 한 마리가 빙하산에 올라와 싣고 가지고 내려가는 얼음 덩어리는 60kg 이었다. 당나귀는 거기까지 올라와서 인간 대신에 그 짐을 싣고 내려가는 거였다. 티비에서는 얼음장수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 당나귀야말로 고되지 않은가 싶었다. 싫다는 말도 못하고 인간 대신 짐을 싣고 내려가는 그 일은 당나귀가 태어나서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그러나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되었을 터였다. 나는 당나귀에 커다란 얼음 두 덩이를 싣고 빙하산을 내려가는 장면이 몹시 부조리하게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되게 부조리한 느낌이 들면서, 자연스레 아직 사지 않은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을 읽어봐야겠다.
나는 고기를 먹으면서 그러니까 여전히 육식을 하면서, 그것은 심지어 동물을 죽여야 가능한 일인데, 그것과는 또 다른 형태로 당나귀가 얼음을 싣고 가는 것이 부조리하게 보였다. 몹시 마음이 불편했다. 김영하는 책을 읽으면 미처 표헌하지 못하는 내 마음을 책에서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마음을 나는 아마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그러니까, 즉,
책 사겠다는 얘기다. 흠흠.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책 구매에 대한 변.. 같은 것인가.
알림을 해놨더니 박정자 쌤의 책이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후훗. 여러분 이 책 개정판 나왔어요!!
이 책 품절이어서 나도 중고로 사고 친구에게도 중고로 선물 햇었는데, 개정판이 나왔다. 만세!
이 책의 구판을 읽고 내가 쓴 글은 여기 ☞ [알라딘서재]연휴가 끝난게 진짜일 리 없어.. (aladin.co.kr)
그리고 구입을 망설이면서 장바구니에 넣은 책은 존 쿳시의 소설이다.
이 책 역시 일전에 나왔던 책이 새로 나온건데, 한참 존 쿳시 읽고 싶을 때 체크해뒀던 책이다.
하아- 존 쿳시에 대해서라면 내가 사두고 안읽은 책들도 있는데, 내가 이제 존 쿳시를 읽는다면 좋아할 수 있을까, 싫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좀 괴롭다. 나는 존 쿳시를 <추락>으로 만났는데, 이 책이 내게는 진짜 너무 좋았던거다. 그런데 당시 나의 친구도 그렇고, 그리고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다른 많은 페미니스트들도 이 작품에 대해 비난했던 터다.
아놔 저 띠지 보니까 ㅋㅋㅋ 또 빡치네. 내가 저거 읽을 당시에도 띠지에 대해 겁나 씹었는데 ㅋㅋ 아니 김혜수가 읽고 있는 책이 도대체 뭔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어쩌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걸 띠지로 쓰니까 몇년간 김혜수는 저것만 읽고 있잖아. 김혜수가 읽고 좋아한 책도 아니고 읽고 있는 책이래. 진짜 돌았어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문제가 된 장면은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이다. 딸이 집단 강간 당하는 걸 보는 남자주인공이 나오는 장면. 당시에 나는 그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만약 지금 다시 읽는다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게다가 이 책의 주인공인 남자는 교수이면서 여대생과 섹스를 했고, 그러나 교수라는 직업을 잃었을 때는 나이들고 뚱뚱한 하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 이런 장면들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정말 긍정적으로 충격이었었기 때문에 존 쿳시의 다른 책들도 내처 읽었더랬다.
그리고 좋아했단 말이다. 그런데 존 쿳시의 책을 읽은지는 한참 되었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읽어도 그를 좋아할 수 있을것인가... 히융.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로 한 번 확인해볼까? 물론, 집에 사두고 안읽은 존 쿳시도 있지만... 아직 안 산 존 쿳시도 있다. (어쩌라긔?)
아니, 문동에서 언제 저렇게 다 나왔대??
그리고, 이 책을 사고 싶고 읽고 싶다.
내게는 읽지 않은 헝거 게임 셋트가 있다. 내 취향이 아니라 읽을 생각 딱히 현재까지 들고 있진 않은데, 일전에 제부가 이 책 셋트가 생겼는데 본인은 안읽을 거라길래 그럼 내가 가져갈게요~ 하고 들고왔건만 나 역시 몇 년째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는 책. 그러다 몇달 전에 조카가 빌려갔었다. 딱히 되찾을 생각 안한 채로 있었는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라는 책의 존재를 알고 나니까, 뭐여.. 그것으로 철학을 해? 하고는 갑자기 너무 궁금해져서, 아니 그렇다면 이걸 읽기 위해 헝거 게임을 읽어야겠다! 하게 되었고, 지난 주에 안산에 갔을 때 조카 방 책장 앞에 서서 이 책을 찾은 뒤, '조카야, 이모 이거 다시 가져가도 되겠니?' 물었더니 그래도 된다고 해서 헝거 게임을 들고온 것이다! 그러니까 헝거 게임은 읽히지 못한 채로 제부-나-조카-나 이렇게 여행중이여. 헝거 게임, 기다려라, 내가 읽어줄게.
근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절판.. 중고로 사야되는데 흐미.. 상태 <상>인거, 괜찮은걸까? 쩝...
근데 나 해리 포터도 읽다가 재미 없어서 말았는데, 헝거 게임은 재미있을까? 근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부제가 '순수 저항 비판' 이야.. 너무 흥미롭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러니까 뭐, 어쨌든, 책 사겠다는 얘기다. 6월 중순까지 기다릴라고 했는데, 꾹 참을라고 했는데, 아니 글쎄, 친애하는 알라디너 ㅈㅈㄴ님이 저에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같이 읽자고 하시는거예요. ㅈㅈㄴ 님은 제가 살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셨지만, 아니, 다른 사람을 우리는 오래 기다리게 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게 이 세계의 의리잖아요? 너무 오래 기다리시지 않게 제가 빨리 사야겠다... 라고 본성이 강렬하고 진지한 도덕관념으로 꽉 차 있는 저는 결심합니다. 흠흠.
평일인 어제 술 마셔가지고 오늘 또 으윽, 역시 평일 음주는 안되는 것이야!! 다짐하며 피곤해하고 있는데, 이럴 때 상콤하게 책을 지르는 걸로.. 슝-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