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주중에 열심히 사는건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너무 바빠서 쓰고 싶은 많은 글들을 쓰지 못한채 주말로 미뤄두었고, 그래서 계획대로라면 주말에 리뷰 하나 페이퍼 두 개가 등록됐어야 하는데, 내내 알라딘 들어오지도 않다가 일요일이 끝나가는 지금 시점에서야 맥북을 연다. 주말 내내 책도 읽지 않았고 그저 먹고 자고 마시고의 연속이었다. 아, 걷고. 주말에 완전히 풀어져버리는 게 너무 싫은데 그런데 주말이 아니면 내가 또 언제 풀어지란 말인가 싶어서 그냥 내버려두다가도 그런데 주말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사기만 했다는 사실에(응?) 후회가 밀려온다. 오늘도 저녁 먹고 교보문고 가있는데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도대체 누나는 왜 집에서 가만 쉬지 않고 늘 어딘가를 가있는거냐고, 뭔가를 하는거냐고 한다. 흐음. 나는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는 쉬지 않는 사람인것 같고, 그러고보면 나는 쉬면서 마음이 편한 사람은 아니고.. 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풀어지지 못하는건가?
각설하고, 마음 먹은 페이퍼 중에 하나라도 써보자. 커피도 마셨으니.
로리는 오스카와 결혼했고 오스카는 직장에서 승진했다. 일주일에 사흘은 브뤼셀에 가 있어야 해서(나흘이었나) 주중 며칠만 영국에서 로리와 함께 지낼 뿐이다. 로리는 아직 신혼이라 떨어져있고 싶지 않지만 승진이라고 하니 축하는 해야겠고 뭐 그렇다.
로리의 조카가 한살이 되어 생일파티에 참석했다 오스카는 다시 브뤼셀에 가고 로리는 부모님의 집에서 오빠네 가족과 조카 그리고 부모님과 하루 더 있기로 한다. 그런데 그 날, 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원서 읽기를 친구들과 같이 하면서 일주일에 정해진 분량을 다 읽기 위해서는 내가 주중에 부지런해야 한다. 그러다 찾은 방법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읽는 것이다. 출근길에는 여성주의 같이읽기 책을 읽고(집중이 제일 잘되는 시간이다) 퇴근길에는 원서 읽기를 하고, 자기 전에는 잭 리처를 한꼭지씩 읽는게 요즘 내가 가장 맞춤하다 생각하며 정해둔 루틴인데 술이라도 하루 먹으면 이 모든게 다 망가져서 평일 술을 가급적 먹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러다 직장에서 또 일을 하다보면 퇴근 무렵 술 생각이 간절해지곤 한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퇴근길 지하철에서 로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읽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야 했다.
로리의 가족은 다섯식구였다. 엄마, 아빠, 오빠, 로리, 여동생. 그런데 로리의 여동생은 어릴 때 죽어 네 식구로 살고 있었고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세 식구가 되었다.
We fall back into silince in the immaculate, quite room. This is the house where we greu up, and this si the room where we always ate dinner together, alwyas in our same places round the table. Our family fo five barely survived becoming a family of four after Ginny died; always an empty chair. I look towards my dad's empty chair now, crying again. I can't fathom how we can go on as a family fo three. It's too few. -p.311
우리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조용한 방에서 다시금 침묵에 빠져든다. 여기는 우리가 자란 집이고, 우리가 늘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방이다. 각자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던 우리 다섯 식구는 지니가 죽고 네 식구가 된 것에 영영 익숙해지지 못했다. 항상 빈 의지가 있었다. 나는 텅 비어버린 아빠의 의자를 쳐다보다가 다시 울음이 터진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세 식구로 살아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 그건 너무 적다. -책속에서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찾아오는 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고 여기에 예외는 없다. 나는 내가 예외이길 바라지만 그러나 내가 무슨 수로 예외가 된단 말인가. 나의 부모님도 그리고 나의 형제들도 늙고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다섯 식구였지만 그 식구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줄어드는것일까?
토마스가 있다. 오빠의 아이, 이제 막 한 살이 된 아이 토마스. 나는 이것이 인류의 연속성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것. 그리고 자란다는 것. 로리의 가족은 로리의 엄마 아빠, 오빠, 여동생 그리고 로리 이렇게 다섯이었다. 그러나 이 다섯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씩 죽고 사라진다 해도 토마스가 있다. 토마스라는 새로운 존재가 숨을 쉬면서 자라날 것이고 그 아이는 어른이 될것이고 그렇게 또 가족 구성원을 늘려갈 것이다. 토마스에게도 토마스의 엄마와 아빠 그리고 토마스라는 세 명의 가족 구성원이 있고, 토마스의 엄마 아빠는 젊으니 어쩌면 동생이 앞으로 한명이나 두명쯤 더 태어날지도 모른다. 네 식구가, 다섯 식구가 될 수도 있다. 로리의 가족은 세식구로 줄어가지만 토마스의 가족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토마스의 가족이 먼 훗날 다시 또 그 수가 줄기 시작한다면, 토마스와 관련된 누군가의 가족이 또 새로이 구성원을 늘려가며 가족을 이룰 것이다. 인류의 연속성. 지금 당장은 내 눈앞에 나의 친밀한 가족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도, 저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와 연관된 누군가가 새로이 그 존재를 굳건히 하며 숨을 쉬고 있다. 인류의 연속성을 나는 바라본다. 이것은 내가 내 조카들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늙어가시고 점점 더 죽음에 가까워지고 나 역시 마찬가지. 나는 매일매일 나의 노화를 실감한다. 나는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겠지, 그렇다면 모든게 사라지겠지, 라고 생각하다가도, 나의 어린 조카들이 웃고 뛰어다니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걸 보노라면 인류는 사라지지 않는다, 연속된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아빠 엄마 그리고 심지어 나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해도, 나와 연관된 누군가가 새롭게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세컨드 베스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래 함께 살아온 엄마는 슬픔에 잠겨있다. 엄마는 엄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로리는 로리대로 슬픔에 잠긴다. 각자에게 공통된 슬픔과 또 개인적인 슬픔이 있다. 이 시간들을 서로 의지하면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장례식도 치러야 하고 엄마의 건강도 회복해야 한다. 로리는 생각한다. 나는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하지, 무얼 해야 하지. 그런 로리가 잭에게 전화를 건다. 심야 방송으로 오전에 잠을 자는 잭은 오전에 여자친구인 아만다와 자고 있다가 로리로 부터 전화가 오는걸 알게 된다. 무시하려고 했다. 여자친구의 벗은 몸이 옆에 있기도 했고 아직 자고 있기도 하니까. 여자친구를 안고 전화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로리는 그간 자주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이었는데, 그런데 메세지를 남겼네. 그렇다면 그건 뭔가 특별한 걸거야. 잭은 그 메세지를 듣기를 택한다. 안녕 잭, 나 로리야. 너가 지금쯤 자고 있을테지만, 너에게 말하고 싶었어. 어제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라는 음성메세지에 잭은 당장 로리에게 전화를 건다. 자신의 벗은 몸을 덮쳐오는 아만다를 밀쳐내고 로리에게 전화를 건다. 자기와 한 침대에 자고 있던 아만다가 거기 있지만 잭은 로리에게 당장 전화를 건다. 그리고 로리를 위로한다. 진심으로 위로한다.
She doesn't get beyond my name before she's sobbing too hard to get her words out, so I do the talking instead. 'Hey, het, hey.' I speak as softly as I can. 'I know, sweetie, I know.' I wish with all of my heart that I could hold her. 'It's okay, Laurie, it's all right, sweetheart.' I close my eyes, because her grief is so raw it hurts me to hear it. 'I wish I was where you are,' I whisper. 'I'm wrapping my arms tight round you. Can you feel me, Lu?' The sound of Laurie crying is the worst thing in the world. 'I'm stroking your hair and I'm holding you, and I'm telling you everything's going to be okay,' I say, quiet words as her sobs slow. 'I'm telling you that I've got you, and I'm here.'
'I wish you were,' she says after a while, ragged words.
'i could be. I'll get the next train.'
She sighs, her voice steadier at last. 'No, I'm okay, honestly I am. Daryl's here, and Mum, of course, and Oscar should be here tomorrow night.'
Oscar should be there right now, I think but don't say. 'I don't know what I'me supposed to do,' she says. 'I don't know what to de Jack.'
'Lu, there isn't anything you can do. Believe me, I know.'
'I know you do,' she says softly.
'You don't nedd to rush or do anything at all today.' I tell her, because I remember those dark, difficult days all too well. 'It's going to be confusing, just do whatever you feel is right-don't beat yourself up for crying too much for for not crying when you think you should for for not knowing how to help your mum. Just be, Laurie. It's all you cna do right now. Hani int there, oaky? Wait for Oscar to come to do the officail things, let him get in touch with the right people for you. Trust me, he'll be glad of a pracrtial way to help.'
'Okay.' She sound relieved, as if she just needs someone to walk through this with her. How I wish it could be me. -p.313-314
그녀는 내 이름을 부르고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흐느낌이 너무 심해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대신 말한다. "로리, 로리." 내가 최대한 부드럽게 부른다. "알아, 나도 알아." 정말이지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 "괜찮아 로리. 괜찮아." 나는 눈을 감는다. 그녀의 애통함이 너무나 날것이라서 듣는 내가 다 아플 정도다. "나도 네가 있는 곳에 있으면 좋겠다." 내가 속삭인다. "내가 지금 너를 두 팔로 꼭 끌어안고 있어, 느껴져, 루?" 로리의 울음소리가 세상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한다. "네 머리를 토닥이고 있어. 내가 너를 안고 있어. 나아질 거야. 내 말 듣고 있지." 내가 나직이 말한다. 그녀의 흐느낌이 잦아드다. "내 말 듣고 있지, 내가 너를 잡고 있어. 내가 여기 있어."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 잠시 후 그녀가 말한다. 흐느낌에 깨진 말들.
"그럴게. 다음 기차로 갈게."
그녀가 한숨을 내쉰다. 그녀의 목소리가 마침내 진정된다. "아냐, 나 괜찮아. 정말이야. 오빠도 있고, 엄마도 있어. 그리고 내일 밤이면 오스카도 도착해."
그럼 오스카가 지금 거기 없다는 거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말로 하지는 않는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잭."
"루,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내 말을 믿어, 내가 알아."
"믿어, 알아." 그녀가 나직이 말한다.
"서두를 것 없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 내가 말한다. 나도 그때의 어둡고 힘들었던 날들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뭐가 뭔지 혼란스러울 거야. 뭐든 네가 맞는다고 생각하는 걸 해. 너무 운다고, 또는 울어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또는 엄마를 어떻게 도울지 모르겠다고 자책하지마. 그냥 있어, 로리.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그저 버텨, 알았지? 공식적인 일은 오스카가 와서 처리하게 해. 사람들한테 연락하는 것도 오스카한테 맏겨. 날 믿어, 자기가 도움이 될 수 있어야 오스카도 좋을 거야."
"알았어." 안심한 목소리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그저 옆에 함께 있어줄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게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책속에서
오스카는 일 때문에 지금 당장 로리의 곁에 와줄 수 없다. 잭도 역시 스코틀랜드에 있지만 다음 기차로 로리에게 온다고 한다. 나중에 사라보다 먼저 잭에게 연락한 걸 사라가 알게 됐을 때, 잭은 아마도 자신이 먼저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었기에 자기에게 로리가 먼저 전화한걸거라고 말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일로 슬픈데 저기 나보다 먼저 겪은 친구가 있어서, 그래서 로리는 잭에게 연락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오스카가 지금 당장 로리 옆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로리는 잭에게 전화한 걸수도 있다. 오스카가 있었다면 로리가 잭에게 전화했을까? 알 수 없다. 결국 잭은 로리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어떻게든 알고 장례식에 오게 되었겠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소식을 듣고 위로하게 되는 일은 몇가지의 우연이 작용한 것일테고, 그 우연들은 사실은 가장 깊숙한 진심의 마음이 시킨 일들과 만나서 그들을 연결시켰을 것이다. 왜 하필 그 때 오스카는 없었을까. 그러나 오스카가 있었다고 해도 로리는 잭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가장 무력하고 가장 슬픔에 잠겨있을 때 하소연하게 되는 상대가, 왜 오스카도 아니고 사라도 아니고 잭인 걸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 인해 슬픈 건 친밀한 누군가에게 위로받으면 물론 좋을것이고, 나 역시 같은 일이 닥친다면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고 상대의 위로를 듣고 싶을 것이다. 로리에게 그 상대, 가장 먼저 전화하고 가장 진심을 나눌 상대가, 하필 이 상황에서는 잭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잭의 위로가 너무나 진심이어서 나는 고마웠다. 나에게도 나의 슬픈 일에 이렇게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참 감사한 일일거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의 잭의 모든 대사들이 진심으로 훅 닿았다. 나는 이 상황의 로리에게 잭이 있음에 감사했다.
사람일은 참 묘하게 진행되는 거라 왜 이 아픈 순간에 나를 사랑한다고 수십번 청혼했던 사람이 내 옆에 있지 않은건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람이 사는 일이라는 게 다 그렇다. 내 의지가 아무리 충만하다고 해도 24시간 365일 옆에 붙어있을 수도 없을 뿐더러, 옆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오스카와 로리의 사이가 단단하다면, 그들이 서로에게 정말로 베스트였다면, 이 순간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위로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것이다. 오늘 내가 위로를 잭에게 받았을지언정, 내일 오게 될 오스카 때문에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고, 오늘 내가 잭에게 위로받았을지언정, 오스카와 앞으로 단단하고 행복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갈까?
로리 아버지의 장례식에 오스카도, 잭도, 사라도 왔다. 그리고 오스카는 잭과 단둘이 앉아 잭에게 묻는다. 너 혹시 내 아내에게 마음 있니?
'I'll level with you, Jack. I've sometimes wondered if your feelings for Laurie are entirely platonic.'-p,319
"터놓고 말할게요, 잭. 로리에 대한 잭의 감정이 전적으로 플라토닉한 건지 가끔씩 궁금했어요." -책속에서
잭은 지금은 그런 질문을 할 때가 아니지 않냐고 하지만 오스카는 지극히 간단한 질문이다, 너가 내 아내에게 마음이 있는지 묻고 있는거다, 나로서는 충분히 인내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잭이 대답한다.
As it is, I dignify his simple enough question with a simple eonugh answer.
'Yes.' -p.320
날이 날인지라, 나는 넓은 아량으로 그의 지극히 간단한 질문을 지극히 간단한 대답으로 받아준다.
"있다." -책속에서
아아 이제 오스카와 로리와 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편 사라는 사라대로 루크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지금 하는 일이 잘 되고 있는데, 새로 사귄 남자가 자신과 함께 호주에 가서 살기를 제안한다. 잭은 사라에게 그가 네게 잘해주냐고 묻는다. (is he good to you?) 사라는 그가 자신의 백퍼센트의 남자라고 말한다. (I think he might be my one hundred per cent.) 잭은 사라에게 호주로 가는 건 너무나 큰 결정인데 네 인생 계획을 바꿀 만큼 루크가 너에게 가치있는 사람이냐고 묻는다. 사라는 그 사람하고 여기중에서 택해야 한다면 그 사람을 택할거라고 말한다.
'If I have to choose between him and here, I'd choose him.' -p.322
사랑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액션이 필요하고 리액션이 필요하다. 루크는 사라를 사랑하고 사라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호주로 가서 나랑 살자'고 액션을 취하고 사라는 그 남자가 자신의 백퍼센트 남자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인생 계획을 변경해가면서 '그를 선택하는' 리액션을 보여준다.
로리는 힘든 순간에 네가 필요하다고 잭에게 전화를 거는 '액션'을 취하고 잭은 그런 로리에게 '다음 기차로 너에게 갈게' 라며 리액션을 보여준다. 액션과 리액션이 있어야 그 관계가 이어진다. 액션을 취하는 것은 정말 큰 용기다. 상대가 내가 기대하는 리액션을 보여준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은 거라는 보장도 없고. 그런데 액션을 취한다는 것,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너에게 내가 손을 내미는 액션을 취한다는 것, 그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그런 용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그 손을 마주 잡아주는 리액션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거절이 두려워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리액션은 내게 올 수가 없다. 액션이 있어야만 리액션을 만날 수 있다. 루크가 사라와 함께할 수 있는 건 액션을 취했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라의 리액션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용기과 신중함이 필요했을텐데, 그런데 왜 그렇게 결정햇으면서, 때로는 그것이 세컨드 베스트인걸까. 오스카가 로리에게 세컨드 베스트라는 것이 오스카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누가 나를 세컨드 베스트로 생각한다면, 나 역시 언젠가는 알아챌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세컨드 베스트여도 괜찮아'는 길게 가지 못한다. 결국은 나를 베스트로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나. 왜 자신의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보지 못하고 세컨드 베스트를 옆에 둔 채로 살고 있나. 그건 너무나 이기적이다. 지금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해서 이기적이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저 세컨드 베스트로 만들어서 이기적이다.
오늘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텔레비전을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개그우먼 김민경이 구본승과 함께 바다 낚시 가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김민경은 어릴때부터 오래 구본승의 팬이었다고 했다. 마침 구본승의 친구였던 박준형이 그 둘을 만나게 해주었고, 영상 속에서 김민경은 구본승과 있는 시간이 너무 설레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수줍어하는 게 다 드러났다. 구본승은 구본승대로 김민경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었다. 어쩌면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걸지도 모르고, 설정일지도 모르고, 나 좋다는 사람이 싫을리 없으니 그랫을지도 모르고, 김민경이 좋아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원래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르지만, 김민경에게 잘해주는걸 보는게 좋았다. 김민경은 구본승하고 전화번호까지 교환하게 되어서 좋아했고, 구본승이 좋아한다는 것들을 잔뜩 사다 선물하기도 한다. 김민경은 구본승하고 있으면서 심장이 쿵쿵거린다고 자주 말했다. 그걸 보는데 와, 저기 내 안에 예전에 있었던 어떤 로맨틱한 감성이 건드려졌다. 움찔움찔 거려서, 이걸 더 보고 싶었다. 검색해보니 바다 낚시 뒤로는 그들이 만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아, 그 다음에 왜 또 안만나? 나는 오만년만에 건드려진 내 로맨스 감성을 폭발시킬라고 책장 앞에 섰다. 연애 소설을 읽자. 이걸 그대로 두지 말고 끄집어내자. 그렇지만 책장에는 연애소설이 없는 것 같았다. 메타버스.. 죽음.. 여성주의.... 아니, 왜 나 연애소설 없지? 하는수없이 저녁 먹고 소화도 시킬 겸 나는 부랴부랴 서점에 나갔다. 연애 소설 딱 한 권만 사가지고 들어와야지. 한 권 사서는 집에 와서 바로 읽는거야! 하고 서점에 나갔는데, 서점에 나가서도 그 많은 책들중에 이거다 싶은 연애 소설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 서점을 나오기 전 내가 사기로 결심한 책은 이것이었다.
그러다가 정신 차려, 연애소설 사러 왔어 하고는 결국 빈손으로 집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했더니, 너 책장에 연애 소설이 없을리 없다 잘 찾아봐라, 했고, 집에 돌아와 책장 앞에 서니 내가 샀는줄도 몰랐던 책이 수두룩한 가운데 연애 소설 몇 권도 눈에 띄었다.
내가 오늘 저녁 서점에서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책을 안산건 아니다. 자, 내가 지난번 책 구매 이후 어제까지 산 책들의 목록을 보자.
신이시여, 저를 어쩌면 좋습니까...
<페미니즘 철학 입문>은 지난주 순댓국에 소주 함께 먹은 친구가 제발 좀 읽어달라고 해서 샀다.
<하버드 스퀘어>는 하버드 열등감으로 샀다. ㅋㅋㅋㅋㅋ 나는 증맬루 '어느 학교 나왔어요?' 라고 누가 물으면 '하버드 법대요'이걸 너무 하고 싶다. 영화 [투 윅스 노티스]에서 길바닥에서 시위하는 산드라 블럭에게 휴 그랜트가 어느 학교 나왔냐고 물어보니 '하버드 법대요' 하는데, 그 장면에서 진짜 와 산드라 블럭한테 홀랑 반함. 나도, 나도 그럴래. 나도 하버드 법대 나왓어요! 이거 할래. 흑흑. 하버드... 나의 로망. 그래서 너무 괴롭다. 이준석의 하버드 때문에 내가 너무 괴로워 진짜 괴롭다 ㅠㅠ
어제 교보문고 광화문에 오만년만에 가서 사전 구경하다가 아니 괜히 외서코는 왜 가가지고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던 <the love hypothesis> 사려고 들었다 놨다 하다가, 아니 옆에 있는 <in five years>를 보게됐다. 아니 이건 뭐여? 하고 집었는데 표지에 '이것은 사랑이야기다, 그러나 당신이 기대한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라고 써있는게 아닌가. 응? 내가 뭘 기대했는데? 내가 뭘 기대했는데 뭐가 아니라는 거야? 넘나 궁금해져버림.. 그래서 사버렷다. 나란 인간. 그러니까 나는 집에 연애 소설 없는게 아니라 원서로 너무 많아.. 그런데 원서는 내가 후루룩 넘길 수가 없으니까 ...
아무튼 책장에서 연애소설 꺼내갖고 왔는데 하아 벌써 열시반이 넘어버렸고 나는 잘시간이여.. 월요일 오는거 넘나 싫은데 어쩜 좋아. 그리고 김민경하고 구본승이 나 넘나 건드려놨네. 설레임... 뭐여? 나도 그거 경험한 적이 있지. 아주아주 오래전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그래, 지금 설레이는 사람들 모두 즐겨라... 나중엔 피곤해서 안느끼게 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 나를 건드려놨어 제기랄 ㅠㅠ 나도 그거 아는데. 내가 너무 좋아하던 사람하고 갑자기 함께 있게 되어가지고 막 숨이 턱턱 막히고 긴장해가지고 막 쭈삣하고 말도 원래대로 잘 못하고 막 그러는거 나도 뭔지 알아. 그런거 건드리지 마라.. 피곤하다.....
아 일요일 밤인거 넘나 싫고 일요일 밤이면 자기 싫어 몸부림 친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