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원서 함께 읽는 친구들과는 영어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주로 영어 잘하고 싶은데 왜 이렇게 잘 안될까, 에 대한 것이고 또 각자가 누군가 에게 듣거나 배운 방법에 대해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어 공부도 다이어트처럼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계속해서 실행하는 성실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가 일러주지 않아도 잘 아는 것이다. 공부도 운동도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다 알지만 ... 다 알아요 모두 다 알아요....
지난주에는 팝송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라기 보다는 나의 일방적인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오래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 있는데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알파벳에 소문자 라는게 있는 것도 몰랐고 대문자도 A,B,C,D 까지밖에 몰랐다. 중학교에 내가 들어갔을 때 한 반에 48명이었는데 대부분은 나랑 비슷한 아이들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고 나는 생각한다). 알파벳도 모르고 소문자도 모르는데 굿모닝이 Goon Morning 이라는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I 는 항상 대문자라고 해서 아 그렇구나 하고 단어 열번씩 써오라는 숙제에서 friend 를 frIend 로 열번씩 써갔다가 선생님한테 등짝을 한 대 맞기도 했었다. 이게 뭐냐고. 아니 선생님, i 는 대문자로 쓰라면서요...
게다가 영어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다. 그건 아마도 내가 영어를 못해서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뭔가를 못한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고 뭔가를 잘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항상 언급됐던 아이였던거다. 나름 초딩시절 티비에도 신문에도 나왔던 영특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어 깜깜이가 되어서 선생님이 하는 말이 뭔지를 알아듣지를 못하겠는거라... 와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내가 바보가 된 느낌. 그러니까 세상에 바보는 나 말고 다른 애들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 바보들과는 동떨어져있는 우수한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뭔가 시킬까봐 쪼는 아이가 되어있었던 거다. 세상에.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영어는 내게 신세계였다. 아니 지옥이었다. 소문자가 뭔지도 모르는데 발음기호는 또 무슨 말인지..번데기 발음이라고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가면서 설명하는데 '대표적 번데기 발음엔 뭐가 있을까?' 했더니 맨 앞자리 앉은 아이가(나는 여중,여고,여대 다녔다) 갑자기 큰 소리로 "땡큐" 하는게 아닌가. 선생님은 그렇지! 하였고 나는 그 아이를 완전 감탄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저 아이는 답을 하네??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영어 시간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한테 혼나본 적이 없는 아이었는데 영어시간이면 혼날 수도 있다는 것이 공포스러웠다. 나한테 뭔가 질문하면 어떡하지? 그런데 내가 대답을 못하면 어떡하지? 이건 진짜 그때의 나에게 어마어마한 공포였다. 한번도 그래본 적 없어서 그런 일이 내게 닥칠까봐 두려웠던거다. 대답을 못해서 혼나는 것. 무언가 물었는데 내가 모르는 것. 나는 혼나지 않기 위해 영어 소문자를 달달 외워야 했고 그렇게 쪽지시험에서 백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게 너무 좋고 행복해서(나의 성취였다!) 기뻐하려 했더니, 맨 앞자리 아이는 심드렁하게 나도 다맞았어, 하는거다. 그거 다 맞은 게 뭐가 대수냐는 듯이.
하루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 그러자 그 아이는 6학년 때부터 개인 과외를 받고 있다고 했다. 와. 너무 충격이었다. 과외라고? 과외를 하면 영어 수업시간에 쫄지 않아도 되는건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건가? 선생님이 물을 때 답할 수 있는건가?
나는 집에 돌아가 엄마한테 나도 영어 과외를 시켜달라 했다. 우리반 아이가 영어를 잘하는데 그 아이가 과외를 한다고, 나도 해달라고. 당시 영어 학원도 다녀본 적 없던 나에게 엄마는 과외는 무리라고 했다. 그건 해줄 수가 없다고. 결국 엄마가 내게 해줄 수 있었던 건 헌책방에 가 영어 참고서 중고를 사준 일이었다. 겉표지가 다 뜯어진 참고서. 나는 그걸 들고 집에 와서 책상에 펼쳤는데,
I am In-su 가 나는 인수다 라고 써있었다. 나는 이걸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아 이엠 인수가 왜 나는 인수인지를 모르겠는거다. 자습서를 아무리 봐도 이게 왜 나는 인수다 인지를 몰라서 자꾸 눈물이 났다. 봐도 모르겠어서 눈물이 났다. 국민학교 시절 모르는 건 엄마가 다 알려줄 수 있었는데 엄마도 배움이 짧아 나의 중학 영어를 가르쳐주는 건 무리가 있었다. 나는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자습서만으로는 혼자 깨우쳐지질 않아서 그냥 울었고 영어시간은 늘 두렵고.. 영어 때문에 지옥이었다. 하아-
그런데!
1학기를 마치기 전, 영어 선생님이 갑자기 선생님을 그만둔다고 하신거다. 남편이 의사인데 지방에 가게 되었다며 선생님도 따라 가게 되었다는거다. 그래서 우리 영어 선생님으로는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25세의 여자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이 분은 교사가 처음이어서인지 아이들에게 전혀 무섭게 대하지 않으셨고, 대답을 못해도 혼내지 않으셨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 나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혼나지 않으니 두렵지 않았고 어차피 해봤자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걸~ 하면서 영어 시간은 그냥 제끼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혹여라도 나를 호명해 뭔가 물으면 답을 하지 못했고 선생님은 그러면 그냥 앉으라고 하셨다. 이 일은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너무 스스로에게 쪽팔리다. 하아-
아무튼 그렇게 나는 영어를 버린 몸으로 살려고 했는데, 아아 선생님, 나에게 한줄기 구원의 빛이시여... 2학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름이었고, 선생님은 갑자기 라디오를 가져오셔서는 그 당시 광고 음악으로 쓰이던 장국영의 <To You> 를 들려주시는 거다. 그리고 칠판 한가득 그 가사를 써주셨다. 해석도 해주셨다. 그리고 노트에 받아 적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노래에 맞춰서 그걸 읽는 거다. 이게, 이게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영어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다는 게 완전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은 거다. 와. 이건 진짜 어메이징한 일이었고 내 인생을 확 뒤바꿔 버리는데, 이게 영어에 대한 시동을 걸어서 나로 하여금 닥치는대로 팝송을 듣게 한거다. 그렇지만 여전히 발음기호가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어버버 거리고 누가 읽을 때면 한글로 밑에 따라 적어야만 그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던 내게, 중1 겨울방학때는 외삼촌이 사전을 펴놓고 발음기호를 설명해주었다. 삼촌과 나는 꼬박 앉은자리에서 새벽 두시까지 사전을 보고 발음기호를 공부했고 그 밤을 지내고난 후의 나는 발음기호를 마스터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이제 발음기호 알고 팝송 좋아하고.. 나는 갑자기 천하무적이 되었는데, 그러다 인생 영화(라고 나는 부른다) <더티 댄싱>을 만나게 됩니다... 어린 마음에 이 영화 너무 충격이고 좋아서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본 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죄다 외워버린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사집에 빵구가 뽕뽕 나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또 복사하고 또 복사하고...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담임이 영어를 가르치는 남자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수업중 예문을 들면서 그 때까지는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던 단어 'stay' 를 적으셨고, '이 단어의 뜻을 아는 사람?' 하셨는데 내가 갑자기 큰 소리로 "머무르다" 한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더디탠싱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중 제목이 'stay' 인게 있었다)선생님은 '그렇지, 머무르다!' 하고 나를 한 번 보셨다. 이미 내 어휘력은 팝송으로 무장된 천하무적 태권브이 기운센 마징가제트 되시겠다. 듣기평가 천재 되었고 고등학교 3학년때는 그 때도 담임이 영어였고 남자였는데, 수능문제집 읽고 해석 시키더니 "너는 발음과 해석이 모두 완벽해, 너 영어선생님 해라!" 하셨던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진짜 황홀한 영어시간들이었지.. 나는 성문이나 맨투맨이나 영어 문법책은 전혀 보지 않았는데 영어 잘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 천재로 늙어갈 줄 알았건만 ㅋㅋㅋㅋㅋㅋㅋ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대학가서 망해버렸다. 대학 가니까 뭐 그렇게 살다 온 아이 연수 다녀온 아이 원어민 교수랑 영어로 대화를 하냐..나는 또다시 난 누구 여긴 어디... 이런 쪼렙이 되어서 쭈그러지고 쭈그러지고 쭈그러지고... 그래서 다시 영어 쪼렙이 되어 아아 영어란 무엇인가 성인 어학연수를 가야 한다... 이렇게 되어버렸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건데, 나는 내가 영어를 진짜 잘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나는 내 기준에서 잘한거였지 객관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었던 거다. 한 번은 전교1등 내 친구가 나에게 '너는 천재냐 팝송 가사 다 외우고,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해?' 이래서 한껏 잘난척 했는데 알고보니 영어 점수는 걔가 늘 항상 높았어 ㅋㅋㅋ 그러니까 걔는 다른 과목보다 영어가 점수가 안나오는데 다른 과목을 워낙 잘해서 그런거고 나는 다른 과목들 점수가 개판인데 영어가 그나마 다른 과목보다 나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기준 자체가 달랐던 것. 칠봉이 처음 만났을 때도 나를 어필하기 위해 나 고딩때 영어 잘했다 했더니 칠봉이는 외국어영억 만점받고 대학갔다고 해서 아, 어디가서 잘난척 하면 안되겠구나.. 했다. ㅋㅋㅋㅋ 잘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었고 그냥 나는 쪼렙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잘하는 애들은 잘난척을 안한다는 것을 나는 크게 배웠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빈수레가 요란한 법...
아, 근데 왜이렇게 여기까지 벌써 길게 썼지. 아직 내가 쓰려고 하는 건 시작도 안했는데.. 이거 시리즈로 써야 되나 제기랄.. 아무튼 원래 쓰려고 했던 얘기를 해보자. 그러니까,
팝송이 나에게 잘 맞았던 것은 내가 로맨스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팝송 안에는 그 짧은 3-4분의 시간동안 로맨스 한 편이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팝송 가사 안에 심지어 제목 안에 로맨스가 있다. 세상에 막 이런 거 제목 봐라. Everythin I do(I do it for you). 내가 하는 모든 건 다 너를 위한거야 부터 시작해서 Nothin'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 널 향한 사랑은 무엇도 바꿀 수 없어 막 이런다.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전화한거랜다. 져니의 opne arms 는 팔을 벌리고 너에게 가는 내용이다. 팝송 안에 서사가 있고 팝송 안에 문법 있다. 대표적으로 영어 문법 must have pp 가 나와있는 가사 It must have been love 을 보면 어떤가. 그것은 사랑이었지요. 아니 영어 예문을 이렇게 들면 세상 머리 쏙쏙 들어오지 않나. 이 노래는 더 기가 막힌게 뭐냐면, 그건 사랑이었는데 그 다음 가사가 but it's over now 란다. 지금은 다 끝나버렸네. 와 눈물 펑펑 쏟지 않나. 이렇게 서사가 있고 감정이 있고 그걸 표현해주는데 와 넘나 좋지 않나요.. 팝송 외우면 사랑을 고백할 수도 있고 눈물로 공감할 수도 있는 거다.
아, 내가 오늘 왜 팝송 얘기를 하려고 했냐면, 어제 단발머리 님의 페이퍼에서 새로운 팝송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no body, no crime 인데 시체가 없어서 범죄도 없다는 것. 나는 모르는 노래였고 그래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재생했다.
He did it
He did it
Este's a friend of mine
We meet up every Tuesday night for dinner and a glass of wine
Este's been losing sleep
Her husband's acting different and it smells like infidelity
She says, "That ain't my merlot on his mouth"
"That ain't my jewelry on our joint account"
No, there ain't no doubt
I think I'm gonna call him out
She says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No, no body, no crime
But I ain't letting up until the day I die
No, no
I think he did it
No, no
He did it
Este wasn't there
Tuesday night at Olive Garden, at her job, or anywhere
He reports his missing wife
And I noticed when I passed his house his truck has got some brand new tires
And his mistress moved in
Sleeps in Este's bed and everything
No, there ain't no doubt
Somebody's gotta catch him out
'Cause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he did it)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he did it)
I think he did it but I just can't prove it
No, no body, no crime
But I ain't letting up until the day I die
No, no
I think he did it
No, no
He did it
Good thing my daddy made me get a boating license when I was fifteen
And I've cleaned enough houses to know how to cover up a scene
Good thing Este's sister's gonna swear she was with me ("She was with me dude")
Good thing his mistress took out a big life insurance policy
They think she did it but they just can't prove it
They think she did it but they just can't prove it
She thinks I did it but she just can't prove it
No, no body, no crime
I wasn't letting up until the day he
No, no body, no crime
I wasn't letting up until the day he
No, no body, no crime
I wasn't letting up until the day he died
와 이 노래는 대단하다. 보자. 일단 그가 그랬다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에스티는 내 친구고 우리는 매주 화요일에 만나 저녁도 먹고 와인도 마신다, 그런데 에스티가 요즘 밤에 잠을 잘 못잔다고 한다. 에스티의 남편이 좀 달라져서, 그에게서 불륜의 냄새가 난다는 거다.
그런데 에스티가 이번 화요일에 우리가 만나던 올리브 가든에 나타나지 않았고 일하러 나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실종됐다고 하고. 그래서 나는 그를 유심히 보았는데 그의 집앞을 지나가다 보니 그의 트럭 타이어가 새걸로 바뀌었네? 그의 정부가 그들의 집에 들어와서는 에스티의 침대에서 잠을 자네? 흠.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남편이 에스티를 사라지게 한 것 같은데 증거가 없네.
라고 하는데, 아아, 그래서 이것은 남편의 아내 살해 이야기로구나 하면서 갑자기 스티븐 킹의 소설이 떠올랐다.
나는 스티븐 킹의 이 소설집을 좋아하는데 여기에는 온갖 페미사이드가 다 나오기 때문이다. 그중에 <행복한 결혼생활>은 결혼 생활을 27년간 해왔던 아내가 우연히 남편이 여성연쇄살인범인걸 알게 되는 내용이다. 이미 아이들까지 낳고 살고 있었는데, 아이들도 다 독립해서 나가 있는데, 그런데 차고에서 어떤 증거들을 보고 '아 이 남자가 연쇄살인범이구나!' 깨닫게 된 것. 그녀는 모든걸 제자리에 두고 감쪽같이 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사실을 남편이 안다. 알게된 이상 자신이 그 연쇄살인범이 맞다는 걸 아내에게 말하는데, 아아 그동안에는 그냥 내 남편이기만 했던 사람이 갑자기 여성연쇄 강간범에 살인범인걸 알게 된다면 그 때의 나는 어째야 하는가. 경찰에 신고를 한다면 내 아이의 아빠가 강간,살인범인걸 모두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알리게 되는데 그렇다고 신고하지 않고 같이 살자니 이 새끼가 나한테는 또 무슨짓을 할지 어떻게 안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의 선택은?
나는 읽으면서 같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썼는데, 내가 내린 답이 책 속 여자가 내린 답과 같았다. 그것 밖에 답이 없었다. 그래야 했다.
오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듣는데 갑자기 스티븐 킹의 이 단편집이 떠올랐다. 이 단편집에는 이 이야기 말고도 강간 당한 여자가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개인적으로 응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적 복수가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양할 수 있지만 굳이 그녀가 사적 복수를 선택한 까닭은 그녀가 경찰에 신고한다면 과거 그녀의 짧은 치마를 입었던 사진이나 남자 관계들이 도마에 올라 선정적으로 그녀를 당해도 싼 피해자로 만들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그가 그런게 틀림 없다고 말하는 노래가, 어쩐지 스티븐 킹의 이 책을 떠올리게 했는데, 아니 테일러 스위프트, 당신은... 뭐죠? 노래로 소설을 썼네. 갑자기 마지막에
"다행스러운 건 아빠가 나에게 보트 면허를 15살에 따게 했다는 거야, 다행스러운 건 나는 말끔히 청소하는 방법을 안다는 거야, 에스티의 언니가 나랑 같이 있었다고 말만 해주면 돼" 라면서 사람들은 에스티 남편의 정부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증거가 없을 것이고,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 반전이야? 세상에. 4분도 안되는 노래로 소설을 써버렸어. 미스테리 소설을 썼다.
여러분, 영어로 짧은 소설을 읽고 싶다면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 < no body no crime> 가사를 읽으세요. 게다가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 노래에 대한 가사 번역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자 이것은 미스테리 소설이었다면 이번엔 찌질한 로맨스 소설을 한 번 보자. 구구절절 찌질찌질 가슴 터지는 노래, 월요일 아침 다섯시 십구분 되시겠다. 먼데이 모닝 파이브 나인틴..
At eight o'clock we said goodbye
That's when I left her house for mine
She said that she'd be staying in
Well, she had to be at work by nine
So I get home and have a bath
And left an hour or two pass
Drifting in front of my TV
When a film comes on that she wants to see
It's Monday morning 5. 19
And I'm still wondering where she's been
'Cause every time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And now it's almost 6 a.m.
And I don't want to try again
'Cause if she's still not back
And then this must be the end
At first I guess she's gone to Cannes
Her silver pack of cigarettes
A pint of milk, food for the cat
But it's midnight now and she's still not back
It's Monday morning 5. 19
And I'm still wondering where she's been
'Cause every time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And now it's almost 6 a.m.
And I don't want to try again
'Cause if she's still not back
Well, heaven knows what then
Is this the end?
At half past two I picture her
In the back of someone else's car
He runs his fingers through her hair
Oh, you shouldn't left him touch you there
It's Monday morning 5. 19
And I'm still wondering where she's been
'Cause every time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And now it's almost 6 a.m.
And I don't want to try again
'Cause if she's still not back
Well, heaven knows what then
Is this the end
여기, 여자친구를 믿지 못하는 의심에 가득한 남성의 처절한 몸부림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그녀의 집을 나와 나의 집으로 간 시간은 저녁 여덟시였다. 그녀는 집에 있을 거라고 했고 아홉시까지 일할거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집에 가서 목욕을 하고 한두시간쯤 지났나, 티비에서는 그녀가 보고싶었던 영화를 하고 있어, 아니 그런데,
월요일 아침 5:19 인데 도대체 그녀는 어디있는거야? 내가 전화걸 때마다 너 없어? 지금 아침 여섯시가 다 된 시간인데 나는 이제 다시 전화를 못하겠어. 왜냐하면 그녀가 돌아와 있지 않다면 이건 분명 우리의 끝일테니까...
처음엔 그녀가 담배를 사러 나간걸까 했어, 아니면 우유라든가 고양이 밥이라든가. 그렇지만 자정이 다 되어서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지.
두시 반이 지났을 때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다른 남자의 차에서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를 감싸고...
아니 도대체 월요일 아침 5:19 인데 어디있는거야? 아침 여섯시가 다 되었는데 나는 전화를 걸 수가 없어 너가 안받으면 우리가 끝일테니까..
아아 너무 슬프지 않나욤 ㅠㅠ
그녀는 어디갔을까.
혼자서 망상하지 말고 차분히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다음날 물었으면 모든 것은 어쩌면 말끔하게 해결되었을지도 모른다. 두통이 심해서 약먹고 잤다든가,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다든가, 그녀에겐 그녀만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가 의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녀만의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전화 안받았다고 미쳐 날뛰고 있다니.. 어쩌면 그가 미쳐 날뛰는 건 그녀가 그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그에겐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아 애타는 그의 마음보다도 사실 이 노래에서는 '여섯시에도 전화를 안받으면 우리가 끝일까봐 전화를 못하겠다'고 하는 부분이 더 슬프다. 끝이어야 하는데, 끝이어야 맞는건데, 그런데 끝을 맞이하기 싫어서 부러 그 행동을 안하는 바로 그 마음.
아마 누구에게나 다 이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내게도 있었다.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알면 내가 아플게 뻔해서, 그래서 부러 묻지 않았던 일들이 내게도 있었다. 모른다면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안다면 넘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모르고 있는 상태를 선택하겠다, 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상대는 내가 그런 마음으로 질문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우리는 그것에 대한 대화를 했었다.
"네 대답 듣기 싫어서 묻지 않았어."
"내 대답 듣기 싫어서 묻지 않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아니 너무 아프지 않나요. 너 여섯시에도 전화 안받으면 우리는 끝이잖아, 그러니까 나는 전화를 안하는 걸 택할래....슬픔의 새드니스...
아 나 이 기분으로 일 못해...
못한다 못해.
화려한 슬픔이 나를 감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