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스 이리가라이의 《하나이지 않은 성》을 시작한지 며칠째인데 좀처럼 끝내지를 못하고 있다. 절반도 못읽었다. 분량은 적은데 어쩐지 제2의 성보다 어려운것 같아.. 쩝..
아무튼 초반을 읽는중인데 수시로 '매저키즘'이란 단어가 나온다.
엘렌 되슈의 연구들이 지니는 특수성 가운데 하나는 여성 생식 욕구의 구조화 안에서 매저키즘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p.75
처음 매저키즘이란 단어가 나올 때부터 문맥상 흐름으로 그것이 '마조히즘'인가보다 하긴 하였지만 자꾸 나오는 관계로 한 번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하여 검색창에 매저키즘을 넣어 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매저키즘이 마조히즘의 또다른 이름이 맞다면 왜 굳이 이 책에서는 익히 알려진 마조히즘 대신 매저키즘을 썼을까. 이 둘의 차이가 어떤걸까 궁금했던 거다. 일단, 매저키즘이 무엇인가?
매저키즘은 마조히즘이 맞았다. 영어 스펠링은 똑같은 완전 같은 단어였던 것이다. 다르게 읽힌 단어일 뿐.
그렇다면 마조히즘이 뭔지도 여기서 건드리고 가자.
마조히즘이 매저키즘이고 매저키즘이 마조히즘인데 왜 이 책에서는 매저키즘이라고 번역했을까. 그리고 매저키즘이 마조히즘과 같은 단어라면 대체 어째서 나는 그간 숱하게 마조히즘은 들어왔어도 매저키즘은 들어보지 못했을까. 왜일까. 나는 매저키즘과 마조히즘을 다시 검색했는데, 거기에는 '매저키즘'은 영어식으로 읽는 것인데 마조히즘으로 더 알려져있다고 했다. 왜일까.. 아무튼,
이 책을 시작하시려는 여러분, 저처럼 '매저키즘'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은 그것이 마조히즘과 같다는 걸 알고 시작하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친절한 나...
아들의 어머니가 된 여성은 '자기 혼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부심을 아들에게로 전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페니스가 없다는 사실은 인과 관계에서 여성의 능력을 전혀 손상시키지 않게 되어, "오로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만이 어머니에게 완벽한 만족감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관계는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분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이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 부부간의 행복은 불안정한 상태에 있게 되어 이 완벽한 인간애의 모델은 그때부터 남편 쪽으로 전이될 수 있을 것이다." 여자아이와 여성이 자기들의 '여성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이 험난한 여정은 그러므로 아들을 낳으면서, 아들을 보살피면서, 그리고 똑같이 남편을 보살피면서 종결된다. -p.56
와 위의 문장 읽는데 갑자기 시어머니들이 왜 며느리들에게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지 너무 확 온다. 당신들이 여성으로 살았으면서, 그 누구보다 여성 학생으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살아오면서 부당함에 많이 맞닥뜨렸을 것이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면서도, 며느리에게 똑같은 고생을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언제나 이해되지 않는다. '자기 혼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부심을 아들에게로 전이시키'는 것이라니, 너무 뭔지 알것 같지 않나.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는 것은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모두들 주변에서 익히 보거나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굳이 퇴근한 며느리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 시어머니를 알고 있다. 며느리가 퇴근해 저녁을 차려주기 전까지 어린 손주들의 밥을 챙기지 않는 시어머니. 병원에 갈 일이 있으면 굳이 며느리와 함께 가려는 시어머니도 알고 있다. 일을 하는 건 아들이나 며느리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며느리랑 가려고 해.. 살면서 권력을 가져본 적 없다가 내 아들에게 아내가 생기는 순간 그 위치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것. 아 너무 슬프지 않나. 아들의 어머니가 스스로의 의지나 힘이 아닌 아들에 의해서만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비단 한국뿐만의 일은 아니었구나. 전세계 공통이었어. 아들의 어머니란 무엇인가..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에서도 아들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기억났다. (내가 읽은건 구판인데 구판은 이북밖에 검색이 안되서 어쩔 수 없이 개정판 표지를 가져온다.)
문제는 어머니의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리인이다. 고부 갈등은 여성과 여성의 갈등이 아니다. 시어머니/며느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맺고 있는 힘의 관계를 설명할 뿐이다.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행복한 삶은 잘난 아들을 통해서(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아내의 노동을 통해서) 보장된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 없다. (p.70)
당신 스스로가 여자라는 걸 인식하고 그 정체성을 가져가기보다 '내 아들의 엄마'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어머니, 아들의 대리인이 되어 아들이 누리는 권력을 함께 누리려는 어머니. 하아-
'아들의 어머니가 된 여성은 '자기 혼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부심을 아들에게로 전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이 밀려온다..
금요일에는 연차를 내고 창원에 내려갔다. 중간에 대전에 내려 잠시 쉬었다. 친구 집에 방문하기 위해 성심당에서 빵을 샀고 잔치국수를 먹었다. 까페에 가서는 커피를 주문해놓고 책을 읽었다.
이 순간이 필요했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내려가기 전부터 기차 예약을 하면서 부러 대전역에 머무르는 시간을 길게 잡고 그 시간을 내내 기다렸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었고, 나는 반드시 낯선 곳에 정차해 앉아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낯선 곳에 정차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는 시간동안 혼자이고 싶었다. 그걸 꼭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
자, 이제 빨리 이 책을 읽자. 그리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책을 읽는거야. 빠샤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