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4단계 이후로 외식을 한 적도 없고 외부에서 친구를 만난 적도 없다. 아마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그래서인지 어떤 날들은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우울하다가도 이렇게 혼자인 것에 더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에 코로나백신 완료자가 되면서 친구를 만나야지 생각해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해 약속을 몇 개 잡아두었는데, 그냥 다 집에 가고 싶어지는거다. 계속 집에 가다보니 집에 가는 게 익숙해져버려 다른 거 하기 싫은 그런 마음? 그래서 아아 나 어떻게 되려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추석 연휴에는 집에 친구들을 불러 밥을 같이 먹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하도 집에만 있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지 않다 보니 일상적인 대화는 물론 지적인 대화들도 그리운 터였다. 친구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고 내게 줄 선물을 가지고 왔는데, 아니, 한 친구가 세상에, '네가 가진 한나 아렌트 는 이진우 쌤꺼지? 이거 읽어봐 이게 더 좋을거야' 하면서 이 책을 주는 거다.
아니, 내가 한나 아렌트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게다가 내가 가진 개론서가 어떤 건지도 알고 그래서 더 좋은 다른 개론서를 줄 수 있다니. 진짜 대단하지 않은가!!
한나 아렌트 책장에 이렇게 세워두었다. 뽀대가 장난 아니야...
뒤늦게 만났으므로 뒤늦게 생일 선물 받은 것도 공개하자면, 이런 게 있다. 포스트잇 플래그 셋트셋트~
세상에. 일전에 친구가 생일선물로 이거 받는 거 보고 부러워서 한참을 바라보았었는데, 내가 받았다! 나는 이제 포스트잇 부자다. 으하하하.
책 읽을 때 포스트잇 플래그로 북마크하는 거 알고, 그걸 좋아하는 걸 알고 걱정말고 여유롭게 쓰라며 이런 거 선물해주는 거 진짜 너무 짱이지 않나. 대단하다 정말로.. 이런 선물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찰진 선물...
그리고 금요일에 친구를 만났고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애기했다.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 지 알수 없지만 관둔다면 그 후의 먹고 사는 일에 대해 고민해야 할텐데, 친구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직업에 대해 언급해주었다. 너 이거 하면 어때? 그걸 한다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하고. 내가 실제로 그 일을 하게 될거라고 딱히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일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일이었다. 그러니 내가 지금은 내가 그 일과 관련이 없다고 해도 시간이 흘러 내가 당장 먹고 사는 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생각했던 일들 외에 이거 하나를 또 떠올릴 수 있을 테다. 역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은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고 해도 한 사람만큼의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만나면 두 사람분의 생각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내가 두가지의 새로운 일에 대해 염두에 두고 있을 때 친구가 거기에 내가 알지 못했던 하나를 더 알려주니 세가지가 되었다.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사람은 진짜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야 된다.
토요일에 만난 친구도 무척 오랜만에 만난 친구였다. 세상에, 우리 올해 이게 고작 세번째 만남인가, 하면서 반가워했는데, 이 친구에게는 최근에 읽었던 책들과 그 책들로 인한 나의 마음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 지글러와 반다나 시바 얘기를 하면서 세상의 굶주림과 토지에 대해 얘기를 할 때 친구는 생협에서 장을 보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와, 나는 책을 읽으면서 삶의 방식을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너는 이미 행동으로 하고 있었구나, 하면서 감탄했다. 친구와 나는 한참 밀린 수다를 떨고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신나하다가 헤어졌는데, 헤어지기 직전 친구는 내게 한 번 포옹해보자며 나를 안아주었다. 나의 마음은 따뜻해졌어..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살아야 된다 진짜...
요즘엔 나의 미래에 대해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시간들이 길어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직장 생활에서 영혼이 털리고나면 또 그런 생각을 한다. 5년후, 10년후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딱히 외로울 것 같지도 않고 또 못살것 같지도 않다. 나는 건강하게 그리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잘 살아갈 것이다. 기존에 알고 지내왔던 친구들이 계속해 옆에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서 또 다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먹고 사는 일도 사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뭐가 됐든 뭔가를 할 사람이니까. 다만, 그게 뭔가일지에 대해서 요즘엔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회사는 그만두고 싶고 그렇다면 소득은 없어질텐데 다른 소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뭐가 좋을까. 거기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해보는 건데, 그래서 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깨고난 직후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에, 앞으로의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를 자꾸 그려보게 되는거다. 그러다 보면 어김없이 가슴이 훅- 하고 한 번 아파져온다. 지금 내 옆에 없는 사람 때문에. 먹고 사는 일로 희망에 차있다가 혹은 어딘가의 삶이 빛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조용한 삶일 것이다 생각했다가 또 친구들과 다정할 것이다 생각했다가도, 그런데 왜 너는 없는가, 라는 생각이 불쑥 치고 들어오면 가슴이 너무 아파서 또 내가 내 가슴을 가만 쓸어내려야 한다. 그러다가도 지금 없다고 그 때에도 없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고, 너 있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때로는 완전히 낯선 장소에서 완전히 낯선 사람들 틈에 있는 나를 그려보기도 한다. 가까운 미래 그리고 그 보다 좀 더 먼 미래에는 내 삶이 고요하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언제나 고요하기만을 바라지도 않는다. 계속 책이 있을 것이고 건강한 음식과 건강한 몸 그리고 건강한 정신이 계속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건강한 친구들과. 때로는 특정인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방에서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면 저기 거실에서 자기 할 일을 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뭐하냐고 내 방의 문을 살며시 열어보는 장면들을 상상하기도 한다. 어느 상상속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 여럿이 함께 내 집에 모여 깔깔대고 웃는 걸 그려보기도 한다. 나는 오년 후에 그리고 십년 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그리는 미래와 어느 부분이 같고 어느 부분이 다를까. 그때에 나는 얼만큼 웃을까.
10월에 읽을 책들을 나도 꺼내 찍어보았다.
제2의 성 시작하려고 앞쪽 옮긴이 서문 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아니 활자 왜이렇게 작은거람? 조만간 돋보기 맞춰야겠구나 싶었다. 게다가 옮긴이가 보부아르 만났다고 해서 완전 깜놀함. 네??????????????? 보부아르를 만나 대화를 나눴었다고요? 대단하다. 대박이다 진짜.. 그리고 '우르슬라 티드'의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라는 책이 언급되어 있길래, 이거 사야지! 하고 검색했는데 품절이었다.
정가 12,500원의 책인데 현재 품절이고 알라딘에는 개인판매자들이 중고를 등록해두었는데, 아니 '최상'의 책은 96,000 원인거에요. 이게 뭡니까 진짜.. 그래서 출판사 앨피에 문의를 넣기로 했는데 네이버에 앨피 출판사로 검색하면 딱히 전화번호가 안나오는거야. 그래? 그렇다고 내가 쉽게 포기할 것 같아? 나는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 출판사를 누르고 출판사로 나오는 책들중에 사회과학 책들만 정렬했다. 분명 한 두권은 내가 가진 게 있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이 앨피 출판사의 것이 아닌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책 뒤의 출판사 이메일 주소를 보고 이메일을 보내두었다. 품절된 책이지만 혹시 구할 수 있는 재고가 있는지, 혹은 개정판의 계획은 있는지에 대해 문의 넣어 두었다. 읽어보고 싶다. 시몬 드 보부아르 익숙한 타자. 제2의 성 옮긴이 '이정순'은 이 책이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한 보부아르의 유산을 정리 소개하고 있다' 고 언급하고 있다.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광범위한 보부아르의 유산.. 나도 읽어보고 싶다.
그러다보니 아까 시작한 옮긴이 서문이 아직도 9페이지다. 활자 너무 작고 책 너무 두껍고 그래서 가지고다니며 읽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이 책, 10월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왜 10월의 책은 이다지도 두껍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인건가?
퇴사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원한다면 그만 두면 되잖아. 그렇지만 그만 두면 먹고 사는 일은 어쩌란 말인가. 이 굴레에서 빠져나오질 못해 나는 내일도 출근할 예정입니다. 흑흑. 제2의 성 옮긴이의 성과 해제만 이라도 오늘 읽어야겠다. 이거 매일매일 읽지 않으면 진짜 10월 완독 어려울 듯. 자, 도전중인 여러분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