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요리 24
딸기쨈.
토욜에 엄마가 시장에서 딸기를 사오셨는데 사오시고 식탁 위에 두시고는 바로 외할머니 댁에 가셨다. 대부분의 장녀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사랑 듬뿍 받고 자라온 나로서는, 사실 누가 씻어주지 않으면 과일 잘 안먹어버려 ㅋㅋㅋㅋㅋㅋㅋ 엄마가 외할머니 댁에 도착해서는 '딸기 금세 무를테니 씻어 먹거라' 문자 보내셨지만, '네' 하고는 씻지 않았다. 내일 엄마가 씻어주면 먹어야지... 이러면서. 아마도 과일 욕심은 크게 없어서 그런건지. 예전에 누가 깎아주지 않으면 과일도 안먹는다 그랬더니 한 알라디너가 본인의 큰언니도 그런다며 아주 얄밉다고 했더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낮잠 자고 일어나보니 아빠가 딸기를 다 씻어두셔서 맛있게 몇 알 먹었는데(역시 일은 남에게 미뤄야한다), 엄마 말대로 금세 무를 것 같았다. 윽, 무른 딸기 정말 싫은데.
일요일 아침 일어나보니 오호라, 건져먹을 만한 딸기가 별로 없다. 죄다 조금씩 물렀고,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딸기 무른 느낌 너무 싫지 않나. 나는 이럴 때 딱 안먹기를 선택하는데(과일 안먹어도 아쉬움 1도 없는 사람), 내가 물렀다고 안먹으면 이것이 어떻게 될까? 아마 아깝다고 아빠,엄마가 다 드시지 않을까. 나는 조금이라도 상한 과일 안먹으면서 아깝다며 부모님이 드시게 할 순 없다. 이거슨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정말 먹기 싫어!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되느냐? 조금 물렀다는 이유로 과일을 버리지 않고 모두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자. 그렇다. 세상 스마트한 나는(일전에 거래처 직원으로부터 상당히 스마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 세상 최고의 지적인 사람인 나는, 이 딸기로 딸기쨈을 만들어보기로 한것이다! 천재 천재 세상 천재 진짜 넘나 천재인 것..
딸기쨈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던 나는 레서피를 검색해본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딸기와 설탕이면 되겠지 했는데, 찾아보는 레서피들마다 자꾸 레몬즙을 준비물이라고 써놓은거다. 여기도 레몬즙 저기도 레몬즙. 대체 딸기쨈에 왜 레몬즙이 들어갈까? 이것이 필수적인 걸까? 이것이 쨈을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걸까? 레몬즙이 없던 나는 이것을 생략해도 좋은건지, 이것이 쨈을 만들때 생략하면 쨈을 완성시키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일단 알아야 했다. 그래서 쨈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전화를 안받는다. 너무 이른 아침이긴 했다. 하는수없이 다시 열심히 검색해보는데, 아아, 누군가가 써뒀다. 새콤한 맛을 위해 레몬즙을 넣어줘요~ 라고. 오, 새콤한 맛 때문에 필요한거였어? 그렇다면 생략 가능하다. 그게 이유라니. 후훗. 나는 새콤 따위 필요없다, 달콤으로 승부한다! 그렇게 딸기쨈 만들기에 도전한다.
군데군데 물렀쥬? 식초물에 금세 딸기를 씻어유~
사실 저울이 있다면 내가 넣은 딸기가 얼만큼인지 그리고 설탕은 얼만큼인지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저울을 갖고 있지 않다. 도구를
늘리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 나의 이 생에서의 목표이거늘. 그런데 딸기쨈 레서피들을 살펴보니 오래 보관하려면 딸기와 설탕이
1:1 이어야 하고 금세 먹을거면 설탕양을 조절하라고 한다. 나는 딸기가 얼만큼이었는지, 그래서 설탕을 어떻게 넣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일단 딸기를 씻어 꼭지를 따고 냄비에 넣은 뒤에 설탕을 들이붓기 시작한다. 이크 너무 달지 않을까, 하고
멈췄다가, 내가 설탕 넣는데에는 지나치게 쫄보여서 항상 덜 달게 하고 그래서 맛없게 한다는 것이 생각나, 조금 더 넣는다. 그리고
끓여냈다.
마침 집에 삶은 계란 으깨기 위한 도구가 있어서 냄비 안의 딸기를 끓여가며 으깼고 이렇게 중불로 끓이면서 거품이 위에 올라오면 국자로 걷어냈다. 그리고 졸이기.
약불로 졸이면서는 이제 저어주는 일이 남아있다. 세상 힘들 줄 알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며 일요일 분의 성경을 한 손으로 읽어가며 딸기를 젓기 시작했는데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생각만큼 힘들지도 않았다. 아마 양이 적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정도면 됐을까, 조금 더 하면 좋으려나 의 갈등을 오만번 거친뒤에 불을 끄고 식혔다.
으하하하 완성시켜 담아냈고 다른 그릇에 일부 덜었다. 이모가 오기 땜시롱 이모에게도 맛보라고 주려고.
그리고 어제 오후에 엄마가 딸기쨈 드셔보고 싶다셔서 식빵을 사다드렸고 엄마는 식빵에 딸기쨈을 바르셨다.
엄마는 맛있다고 좋아하셨고 내가 먹어보니 좀 덜달았다. 엄마 설탕을 더 넣을걸 그랬지? 했더니 엄마는 지금이 딱 좋다고 하셨다. 와... 빵을 만들다가 이제는 딸기쨈을 만들어..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 내가 생각해도 나는 대단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것이 일요일 딸기쨈 스토리.
그나저나, 금욜 밤에 술 드시기로 하신 분들, 동쪽과 서쪽 보며 술드시기로 하신 분들, 드셨습니까? 약속은 지키셨어요?
그러니까 사연은 이렇다.
내가 고메중화짬뽕을 추천하고 나니 사람들이 그 짬뽕을 사기 시작한거다.
배틀 붙어서 7봉지, 8봉지, 9봉지... 나아갔고 어제 다른 친구도 사겠다고 알려온 바. 알라딘이여..고메중화짬뽕 팔도록 하세요. 내가 팔아드릴게. 그렇게 받은 땡스투로 나 집 좀 사자.. 아니면 빵과 쨈 파는 가게 좀 차리자. 알라딘이여, 듣고 있나?
아무튼 이분들과 금요일 밤에 술을 마시기로 하였는데 각자 술 마시면서 동쪽 보고 건배하기로 했는데 한 분이 서쪽 보고 하자는거다.
나는 금요일에 술을 마시다가 이 약속이 퍼뜩 생각나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 하고는 핸드폰의 나침반을 두고 동쪽으로 맞췄다. 그리고 건배했다.
서쪽으로도 맞췄고, 역시 건배하고 술을 마셨다.
여러분, 동쪽과 서쪽을 보고 건배하고 술 마셨습니까? 전 그랬습니다.
이거슨 약속을 지켰다는 페이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