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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고 미래는 예측불허라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나는 내가 이 책, 《육식의 성정치》를 읽으면서 육식을 즐기는 나에 대해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아가야 할 길은 채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내적 갈등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백쪽을 조금 넘겨 읽은 현재 지점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커다란 기쁨과 흥분이다. 동물을 죽이고 절단하고 소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데 어떻게 기쁨과 흥분이 올 수 있냐 나조차도 갸웃하는 지점이지만, 와, 나는 이 책 읽다가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용어를 보는 순간(물론 서문에서도 만났지만) 갑자기 온 몸에 흥분이 막 차오르는 거다. 이 흥분은 재작년에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를 읽으면서 느꼈던 바로 그 흥분과 같다. 저자의 통찰과 사유에 대한 흥분,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데에서 오는 흥분, 그것을 내가 읽고 함께 깨닫게 되는 데에서 오는 흥분. 온 몸이 짜릿해지는 거다. 바로 이 맛에 책을 읽는 것 같다.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부분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 알아채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알아채게 해주는 것, 바로 그 지점으로 책이 나를 이끄는 거다. 레이첼 모랜이 그랬듯이 '캐럴 제이 애덤스'는 통찰과 사유에 있어서 뛰어난 사람이구나, 나를 이끌어주고 있다! 이런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고, 부재 지시 대상 꼭지에서부터는 모든 페이지, 모든 구절에 밑줄을 긋게 되는 거다. 캐럴 제이 애덤스는 나를 앎으로 이끌고 있다!!




도살을 통해 동물은 부재 지시 대상이 된다. 동물의 이름과 신체는 고기로 존재하는 동물에게는 부재하는 무엇이다. 동물의 생명은 고기에 앞서고, 따라서 고기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 살아 있는 동물은 고기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도살을 통해 죽은 몸이 살아 있는 동물을 대체한다. 동물이 없다면 고기를 먹는 일도 없게 된다. 그러나 동물이 고기라는 음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동물은 고기를 먹는 행동에서 부재하는 무엇이다. -P.104



아 너무 짜릿하지 않은가. 이건 아주 사소한 일상의 면면들로도 알 수 있지 않나. 우리는 소고기가 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돼지고기가 돼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스테이크를 먹고 삼겹살을 먹으면서 살아있는 소나 돼지를 그리지 않는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이것이 '살아있는 동물이었다'는 걸 지운다. 우리가 고기를 먹을때, 살아 숨쉬던 동물은 부재한다.



고기와 고기의 의미가 지니는 본질, 곧 동물의 죽음 없이는 아무도 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므로 살아 숨쉬는 동물은 고기의 개념에서는 부재하는 지시 대상이다. -P.104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 오지 않나. 이렇게 단어를 사용해서 정리해주니까 정리가 뽝 되면서 그 개념이 내게로 오는 거다. 개념이 오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용어가 나로 하여금 이 과정을, 살아있는 동물-죽음-분리(해체)-소비로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다시 돌이켜보게 하는거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레이첼 모랜'으로부터 '타락의 상호작용'이란 용어를 접하게 되었고 그 뒤로 그 단어를 잊어본 적이 없다.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난다. 위의 책 제목에 링크를 걸었지만, 타락의 상호작용은 말그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는 남자' 가 그것을 아내나 여자친구에게는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에게 요구하고, 성매매 여성이 그 행위를 돈을 받고 해주기 때문에, 그 행동은 멈춰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것이다. 레이첼 모랜은 이것을 '생리혈을 먹는 남자'의 일화를 통해서 이야기해준다. 타락한(하는) 사람에게 '그만둬' 나, '그걸 해서는 안돼'라고 말하는 게 아닌, 허락해버리는 순간 지속되는 그 타락은 상호작용을 갖게 된다는 것. 그 단어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그 단어가 가진 뜻이 레이첼 모랜 덕분에 명확하게 와 닿았기에 그 단어를 결코 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러니까 페이드 포, 하면 자연적으로 타락의 상호작용, 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육식의 성정치, 라고 하면 나는 이제 부재 지시 대상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캐럴 제이 애덤스'는 채식주의자이자 시민 운동가인 '딕 그레고리'의 말을 인용한다.




동물과 인간은 똑같이 고통을 받으며 죽는다. 당신이 자기가 기른 돼지를 잡아 먹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죽여야 했으면, 십중팔구 당신은 돼지를 죽이지 못한다. 돼지 멱따는 소리 듣기, 솟구쳐 흘러내리는 붉은 피 지켜보기, 이 광경이 무서워 엄마 ㅜ디로 숨어버리는 아이 바라보기, 동물의 눈에서 죽음의 그림자 보기 등은 당신의 속을 뒤집어놓는다. 그래서 당신은 돼지를 대신 잡아줄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게토가 지저분하다고 비웃는 부유한 귀족들이 그 고통에 찬 비명을 들었으면, 배고픔에 서서히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봤으면, 사람들의 사나이다움과 위엄이 교살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면, 살인을 계속 저지를 수 없었다.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은 이런 공포를 겪을 기회가 없다. …… 만약 당신이 고기를 먹기 위한 동물 살해를 정당화할 수 있다면, 당신은 게토의 이런 실상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쪽도 정당화할 수 없다. (Gregory 1968, 69~70) -P.110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 여자는 사람들에게 대접할 음식을 크게 준비한다. 그간 자기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함이었는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음식의 재료들을 구하는 과정과 요리가 되는 과정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거북이를 한 마리 사와서는 그걸로 수프를 끓이기 위해 커다란 솥 옆에 그 거북이를 놓아두는 거다.




















초대된 손님들은 수프부터 차례대로 먹는다. 그들이 먹는 거북이 수프에 거북이는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던 거북이, 잡혀온 거북이는, 그들이 먹는 음식 앞에 부재한다. 물론 바로 위의 사진에서 새는 그 모양 그대로 있지만, 손님들이 음식으로 먹을 때, 살아있는 새가 아닌 '새 고기'가 되는 거다.


나 역시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양고기까지, 고기라면 좋아하며 먹는 사람이지만, 막상 재료로서 살아 있는 동물이 준비된 이 영화의 한 장면에서는 큰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초대되어 식탁에 앉은 사람이라면 부엌에서 요리하기 전에 살아 숨쉬는 동물들을 보진 않았을 거고, 내 앞에 차려진 고기에만 집중했을 거다. 그러나 부재가 아닌 존재하는 '동물'을 보는 순간 불편해졌다.




폭력/도살을 통해 살아 있는 동물을 소비 가능한 죽은 동물로 전환하는 과정은 육식이 지시하는 대상이 바뀌는 과정, 곧 살아 있는 동물에서 고기로 바뀌는 개념적 변화의 과정을 표상한다. -p.114



우리는 동물의 이름을 먹을 수 있는 부위별 이름으로 바꿀 뿐 아니라 동물의 원래 형태를 숨기기 위해 소스를 바르고, 간을 맞추고, 음식 등을 통해 별 생각 없이 지시 대상을 선택한다.

그다음에 소비가 진행된다. 동물의 실제 소비, 죽음, '고기'라는 용어의 은유적 소비, 그래서 고기는 죽은 동물을 지시하기보다는 음식물만을 지시하게 된다. -p.115



내가, 우리가, 인간이 고기를 먹을 때, 고기를 먹는 행위에는 동물을 죽이고 그것을 절단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거라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가 고기를 먹으면서(즐기면서)그것을 애써 떠올리려 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 과정을 결코 머리에서 지울 수 없기에 가능해지는 게 아닐까.



은유와 지시 대상 사이의 누락된 관계에 평행한 형태로, 고기를 먹는 행위에는 고지의 절단 과정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자리한다. 먼저 우리의 시선을 대상화된 존재에서 소비 가능한 음식으로 옮겨놓자. 고기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고기의 도살, 절단, 분해 등은 누락돼 있다. 사실 가부장제 문화는 실제로 자행되는 도살에 침묵한다. 지리적으로 도살장은 격리돼 있다. -p.117-118



격리돼 있는 도축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정사 2013>(원제:MONA) 이다.




라트비아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집을 상속받은 남자가 이곳에 오면서부터 영화는 진행된다. 이 마을에 일할 곳이라고는 도축장밖에 없었다. 이에 여자는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어한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들 역시 이 도축장에서 일하는 것을 싫어한다. 이 도시에서 온 남자는 이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면서, 도축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음생에 도축당하는 동물로 태어난다는 말을 한다. 자신은 직접 동물을 잡아 죽이는 일을 하지 않을 위치에 있으면서, 그런 일을 누군가 대신 해주기 때문에 고기를 받아 쳐먹으면서, 그러면서 그 사람들은 도축당하는 동물로 태어날 거라고 말하는 거다.


'지리적으로 도살장은 격리돼 있다'는 캐럴 제이 애덤스의 말은, 이 영화가 바로 증명한다. 일자리라고는 도축장 밖에 없는 작은 마을, 자기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 그러나 '소비될 수 있는' 고기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살아있는 동물을 보면서 그것을 고기로 바꾸는 일을 어떻게 마음에 들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에게 고기가 되기 전 동물은 존재하는데.


그러나 영화속 부유한 도시남자는 고기를 볼 때 동물을 보지 않는다. 도살작은 격리돼 있고 고기앞에 동물은 부재한다.


도시 남자의 저 태도, 도축장만 있는 마을에서 도축인들을 무시하면서, 그 마을의 처녀를 '갖고 싶어하는' 저 남자를 볼 때는, 권력을 가진 백인 남자를 어쩔 수 없이 떠올렸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은 여자를 부엌이나 규방 속에 가두어 두면서도 그녀의 시야가 좁은 것에 놀란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날개를 잘라놓고 그녀가 날지 못한다고 한탄한다. 만일 여자에게 미래를 열어 준다면 그녀는 결코 현재 속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2의 성, 2권], 시몬 드 보부아르, p.776







작은 마을에 일할 곳이라고는 도축장 하나만 주고서는 도축장에서 일하면 다음 생에 도축되는 동물로 태어날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뭐...




일반적으로 부재 지시 대상은 부재하기 때문에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p.112



캐럴 제이 애덤스는 동물에 가해지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언급한다. 부재하는 지시 대상이라 여성은 여성의 경험으로부터 떨어져버리는 거다.



동물의 죽은 몸이 고기에 관련된 우리의 언어에 부재하듯이, 남성의 문화적 폭력에 관한 묘사에서 여성은 부재하는 지시 대상이다. 특히 성폭행이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여성이 겪은 일을 지시하지만, 또한 폭력적인 유린의 다른 사례들, 1970년대 초반의 생태학 저술에 자주 나온 지구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이라는 표현처럼 다른 대상에도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여성의 경험은 다른 억압을 묘사하는 매개 수단으로 쓰인다. 여성, 곧 여성의 몸에 가장 빈번하게 가해지는 현실의 성폭행은, 이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다른 대상에 은유적으로 쓰일 때는 부재 지시 대상이 된다. 이런 용어는 '여성' 자신이 아니라 여성이 겪은'경험'만을 환기시킨다. -p.106



자연을 여성으로 대상화 시켜서 거기에 가해지는 것을 폭력으로 묘사하는 것은 문학 작품에서도 흔한 일이다.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작품이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인데, 트랙터의 부속을 발기한 음경같다고 하거나 기어의 움직임에 오르가슴을 느끼며 기계적으로 강간했다는 장면은, 결국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었다(p.75)'라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문장에서 너무 화가 나서 열번쯤은 읽었다고 내가 지난번 페이퍼에 써두었던데, 나는 그 당시 내 감정을 어떻게 정의 내릴지 알 수 없었지만, 트랙터가 땅을 강간하는 장면에서 실제 강간피해자로 살아가는 여성들은 부재하는 지시 대상이었기 때문이라고,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 작품 속에서 강간은 은유로 쓰였고, 캐럴 제이 애덤스의 말대로, 여성이 아닌 '여성의 경험'만을 환기시켰다. 물론 저 문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열정과 흥분이 없는 강간'이라는 바로 그 자체에 있지만 말이다. '강간'에 어떻게 열정과 흥분이 있단 말인가. '열정'과 '흥분'이 '강간과 나란히 쓰일 수 있는, 강간을 수식할 수 있는 단어란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다, 진짜.




용어 혹은 개념을 바로 잡음으로써 다른 것들을 끌어 오고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앎이 주는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동물을 '대신' 살해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노예를 억압하고, 그렇게 노예를 통해서 털달린 짐승들을 죽이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부재 지시 대상은 모피가 되며 또 흑인이 된다. 저자가 언급한대로 너무나 흥미롭지 않은가.



부재 지시 대상의 구조는 동물을 대신 살해하는 소외된 노동 형태를 수행할 대리인들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온전한 동물은 육식뿐 아니라 모피 거래에서 부재 지시 대상이다. 여기에서 모피 거래가 함의하는 동물 억압과 노예인 흑인을 대상으로 한 억압에 상관성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미국의 흑인 역사가들은 노예 제도 아래에서 흑인이 원주민보다 더 강압적인 지배를 받은 역사적 원인의 하나로 모피를 얻기 위한 동물 학살을 거론한다. -p.109



내가 이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느낄 거라 예상했던 건 불편함이었는데, 나는 불편함보다 흥분과 재미있음을 느끼고 있다. '재미있다'는 표현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랄 순 없겠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것을 다른 어떤 단어로 대체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게 너무 재미있고 신난다. 회사에 있기 때문에 더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게 야속할 지경이다. 100쪽까지가 이렇게 흥미로웠는데 그 뒤에는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생각만 해도 너무나 짜릿하다. 아, 역시 독서란 진짜 인생 개꿀템이야... 빅재미 보장하는 취미활동이다. 여러분, 책을 읽으세요. 책이 앎을 주고 흥분을 주고 재미를 준다, 여러분.. 책 만세다 진짜루... ㅠㅠ



책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페이드 포를 읽으면서도 느끼는 거지만, 진짜 똑똑한 사람이 써야 된다. 똑똑한 사람이 써야 돼. 똑똑하고 꼰대가 아닌 사람, 열린 사고를 가진 사람이 써야 된다... 그게 지금 내가 책쓰기를 멈춘 이유다.....(눈물 좀 닦고) 똑똑하고 꼰대가 아니고 열린 사고를 가진 분들이여, 책을 쓰세요. 성찰한 바를, 통찰한 것을, 깨달은 것을, 사유한 바를 풀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독자가 기뻐합니다.



이만 총총.









근대 이전에는 유아, 젊은이, 가난한 사람, 흑인, 아일랜드인, 미친 사람, 여성이 모두 짐승으로 여겨졌다. "짐승으로 한번 인식된 인간이 짐승 취급을 받는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인간 지배의 윤리는 인간의 관심 영역에서 동물을 제거했다. 결국 이런 인식은 동물하고 비슷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을 학대하는 행위를 정당화했다" (Thomas 1983,44). - P108

보통 폭행범,강간범, 연쇄 살인마, 아동 성학대자는 동물을 희생시킨다(aDAMS 1994, 144~161). 이런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다양하다. 배우자 강간범은 여성을 위협, 포박, 폭행하기 위해 반려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연쇄 살인마는 종종 동물에게 시험 삼아 폭력을 쓴다. 1990년대 여러 공동체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서 같은 반 친구를 살해한 남학생들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죽인 경험이 있다고 밝혀졌다. - P111

"잠자리에서 달콤한 말로 메티스를 달래던 제우스는 갑자기 입을 벌려 메티스를 삼켜버렸다. 메티스의 취후였다"(Graves 1955,46; 원래 이 이야기는 해시오도스Hesiod의 《신통기》에 기록돼 있다). 남성 중심 문화의 본질적 구성 요소는 이런 제우스의 행동, 곧 성적 욕구의 대상을 소비 가능한 존재로 보는 시각에 기초한다. 그러나 우리는 제우스가 메티스를 소비하는 신화에서 신체 분할에 관해 전해들은 이야기가 전혀 없다. 제우스는 어떻게 정확히 메티스의 임신한 몸, 팔, 어깨, 가슴, 자궁, 넓적다리를 그대로 한입에 삼킬 수 있었을까? 신화는 부재 지시 대상이 어떻게 부재하는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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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1-12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멋져요!! 개꿀템 인정(ㅋ0ㅋ)👍

다락방 2021-01-12 13:28   좋아요 2 | URL
책 읽는 거 너무 좋아요, 미미님. 게다가 좋은 책을 읽으면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좋고요! >.<

파이버 2021-01-12 1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또 다락방님께서 정리해주신 내용을 읽으니 더 재미있네요! 다른 책에서 인용해주신 구절들도 너무 좋아서… 이런 글 써주시면 제가 기뻐합니다ㅎㅎㅎ

다락방 2021-01-12 13:30   좋아요 2 | URL
저도 이런 글을 쓰게 하는 책읽기가 무척 신나요. 읽으면서 막 이것도 생각나고 저것도 생각나고 갑자기 그때 그것이 이해되고 하는 이런 경험이요. 이런건 글 쓸 때도 너무 신나요!
파이버님, 우리 신나게 읽고 씁시다. 움화화핫!

단발머리 2021-01-12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 부호에서조차 다락방님의 흥분과 열정이 그대로 전해지네요 ㅎㅎㅎ 저도 <페이드 포> 읽었는데 이렇게 연결될지는 생각도 못 했어요. 다락방님 글 읽으니까 아하~~ 하고 쪼금 이해될려고 해요. 게다가 <정사>, <분노의 포도>까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기립박수를 치고 말았습니다!!!
음메음메 소 또는 얼룩이를 살치살로 부르는게 부재 지시 대상이죠. 여성도 같은 과정을 겪어왔고요. 저도 저 개념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더라구요. 전 지금 2장인데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혹.... 북플로 위의 글을 읽으시는 분이 있다면 서재에 들어와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다락방님이 네모난 상자로 잘 정리해 두셔서 훨씬 더 이해가 잘되네요. 그럼 저는 이만^^

다락방 2021-01-12 13:32   좋아요 2 | URL
저는 막 작가가 똑똑한 게 느껴지니까 너무 좋은거에요. 단순히 똑똑한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뭐랄까 계속 살핀다는 느낌, 하나의 사건을 보고 그 안을, 이면을 다 고루 보려는 게 느껴지는 게 진짜 너무 좋은거에요. 그것이 글로 표현되어서 독자에게 전해지는 게 너무 좋고, 그것을 줄 수 있는게 독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서 진짜 너무 좋고요, 독서로 만나는 친구도 너무 좋고요. 아무튼 저는 오늘 책을, 독서를, 똑똑한 작가들을, 함께 책읽는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에 대한 사랑이 넘칩니다. 샤라라랑~

단발머리님과 같이 읽을 수 있어서 또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다른 분들과 함께 읽는 것도 너무 좋아요. 같이 읽는 분들이 어떻게 읽는지 보는 것도 너무 신나요. 아 세상은 왜이렇게 신나는 게 많은지!!

아, 앞으로 글 쓸 때 위에 덧붙여야겠어요. 제 글을 PC 에서 보시기에 가장 좋습니다.. 라고 말이지요. 단발머리님의 댓글 덕에 이런 꿀팁을 얻습니다. 감사해요! 고마운 분.. ♡

라로 2021-01-1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따 PC에서 읽을게요. 지금은 침대에 누워서 북플로. 😅

다락방 2021-01-12 13:46   좋아요 0 | URL
북플에서는 인용문과 인용문 아닌 것이 구분이 잘 되지 않아서 읽기가 불편하더라고요 ㅠㅠ 특히나 제 글처럼 긴 글의 경우에는 더더욱... ㅠㅠ

syo 2021-01-12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만큼 읽지 않았지만, 제가 서문만 읽고 전에 단톡방에다 누가 명확하게 이해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드린 ˝부재 지시 대상˝의 용법에 대한 궁금증이 여기서도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인용해주신 112페이지의 문장 같은 거요.
˝일반적으로 부재 지시 대상은 부재하기 때문에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이 문장이 선뜻 이해가 되세요?

육식에서 부재 지시 대상은 동물이잖아요. 살아있는 동물이요.
그러면 저 문장은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드는 주체가 살아 있는 동물이라는 식으로 읽히잖아요?

실제로는 부재 지시 대상을 가리는 무언가가, 혹은 진짜 지시 대상을 부재시키는 어떤 언술이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경험할 수 없게 만드는 건데, 부재 지시 대상 입장에서는 억울하잖아요. 굳이 이분법적으로 따져 보자면 자기는 일종의 피해자인데, 부재는 한 거라기보다는 ‘당한‘ 건데, 부재하기 때문에 억압당한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는 식으로 서술해버리면.....

부재 지시 대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틀렸다거나 이 경우에 맞지 않다는 게 아니라, 맞는 개념 같은데 그걸 이 책에서 사용하는 방식이 일관되어 보이지 않는 거 같아서요.

제가 뭔가를 잘못 읽은 걸까요?🤔

다락방 2021-01-12 14:30   좋아요 1 | URL
112쪽의 문장 같은 경우에는 동물에 대한 도살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같이 나오잖아요. 저는 말씀하신 문장에서 페미니스트인 여성들조차 여성을 도축당하는 고기에 비유하기 때문에 스스로도 부재 지시 재상이 되면서 다른 부재 지시 대상을 은유로써 가져오고 바로 그 과정에서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는 문장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억압당하는 존재1(여성)이 억압당하는 존재2(동물)를 가져와 은유함으로써 그 개별 존재에 대한 억압을 유지시킨다고 해야할까요. 나 억압, 너 억압 우리 모두 억압으로 연결시키는게 아닌, 나 억압 은 쟤 같잖아, 하면서 ‘쟤‘의 억압을 당연시(자연스럽게) 여기게 되는 거요. 저자는 그 부분-여성이 자신을(혹은 다른 여성을) 고기에 비유하는-에서 페미니스트들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가져간다고 보이고요.

사실 여기까지는 쇼님도 이해한 부분 같은데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는 주체적인 서술형.. 이 문제인걸로 보인다는 거죠?
제가 그래서! 원서를 찾아보았습니다.

Generally, however, the absent referent, because of its absence, prevents our experiencing connections between oppressed groups.

저는 일관되지 않은 서술이라기 보다는 112쪽의 문장은 ‘부재시키고‘, ‘대상화 하는‘ 등의 잘못을 강조하기 위한장으로 이해돼요.

syo 2021-01-12 14:48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이 말씀하시는 거 자체는 옳고, 저도 동의를 하는데요.
그렇지만 설명하신 대목이 저 문장에 대한 제 의문의 대답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부재 지시 대상은 부재하기 때문에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니까 다락방님이 설명하신 구도에서 저 문장을 이해하려면, 주어인 ‘부재 지시 대상‘은 다른 부재 지시 대상을 가져오는 여성을 말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 발화에서 여성은 부재하지 않고 존재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부재지시대상은(여성=존재1) 부재하기 때문에(동물=존재2)˝가 되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이 설명하신 그 억압당하는 존재1이 억압당하는 존재2를 가져와 은유함으로써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는 생각 자체는 저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문장은 논리적으로 그걸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 문장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식으로 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문장들이 자꾸 등장한다는 거구요.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해할 수 있고 쉽게 동의할 수도 있는데도요.

다락방 2021-01-12 15:20   좋아요 1 | URL
저는 저 문장 자체는

‘부재 지시 대상(여성)은 부재하기 때문에(여성) 억압당하는 집단들 사이(여성, 동물)의 연관성을 직접 경험할 수 없게 만든다‘

로 이해했다고요. 그래서 저 문장의 실질적 주어는 ‘부재‘라고 생각한거고, 그래서 여성(부재지시대상1)이 동물(부재지시대상2)처럼 직접 경험한 게 아닌데도 동물에 자신을 비유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라로 2021-01-12 16:38   좋아요 1 | URL
다락방 님의 글 잘 읽었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하면 ‘부재지시 대상‘이라는 단어는 ‘눈가리고 아웅‘,,처럼 들리네요. 제가 페미니즘이나 인문학에 대해 넘 무지해서 그런 것 같아요. ^^;;

다락방 2021-01-12 17:02   좋아요 1 | URL
그건 아마 본문이 아닌 인용문에서 만나고 제 글만 읽으셔서 그런것 같습니다..

난티나무 2021-01-12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웩 존 스타인벡 읽은 건 없지만 집에는 있어서 언젠간 읽겠지 했는데요. 웩.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와! 어! 그래? 완전 똑똑! 멋진데! 어라 이랬다고? 몰랐는데 어이 없네! 헐! 대박! 이러면서 읽고 있어요.ㅎㅎㅎ

다락방 2021-01-12 20:42   좋아요 2 | URL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재미있긴 한데요 저렇게 걸리적거리는 부분이 튀어나와요. 게다가 결말은 더 어이없답니다. 저 너무 어이없어서 엄마한테 줄거리 얘기하면서 엄마라면 그럴것 같아? 하고 막 욕했었어요. 제가 분노의 포도 깠던 페이퍼도 알라딘에 고스란히 남아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오 빡치는 결말의 분노의 포도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난티나무 님도 이 책 흥분하며 읽고 계신다니 너무 좋네요! 저도 계속 으앗 그래그래 맞아 아 멋져 똑똑해 ㅠㅠ 이러면서 막 줄 그으면서 읽고 있어요. 그런 과정이 너무 신나요! 아아 몰랐는데 맞네 그러네 오오 그렇다 하면서 어느 지점에서는 반성도 하고 말이지요. 저는 이런 책 너무 좋아요! 둘러보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거듭해서 이건 이런것이다 하는 사유의 장을 펼쳐 놓은 거요. 진짜 너무 좋아요! 아마도 그런 지점이 다른 독자들에게도 인상깊어서 10주년 기념 서문에 20주년 기념 서문 25주년 기념 감사의 말까지 고스란히 책에 실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남은 부분이 기대됩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눈도 많이 와서 퇴근길에 스트레스도 받고 너무 지쳐서 ㅠㅠ 쫄볶이에 만두 튀겨서 소주 마시고 있거든요. 옆에 소주잔 꺼내놓고 스맛폰으로 난티나무님 댓글 보고 너무 좋아서 맥북 가져와 펼쳐서 댓글 쓰고 있어요. 오늘은 책 안읽고 미션 임파서블 볼거에요. 이미 본거지만 또 볼거에요. 탐 크루즈 막 액션하는거 보면서 스트레스 풀자 싶었는데, <로그네이션> 퇴근하면서 봤는데 여자 등장인물 액션이 완전 멋지더라고요. 으하하하하. 오늘은 영화 보다 스르르 잠들 거에요.

난티나무님 같이 읽어서 너무 좋아요 엉엉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