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친구와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내 인생에 내가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나의 자아'라고 말했다. 친구는 내게 '그렇게 보여' 라고 말했다.


나는 좀 더 깊은 사람이 되고 싶고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거기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닌, 내 힘으로 스스로 그렇게 되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계속 사랑하면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즐겁고 건강하게 사는 게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는 바이지만, 끊임없이 계속 읽고 쓰기를 지속하고 싶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도. 생각이라는 것, 사유라든가 통찰이라 불리는 그 모든 것들을 놓지 않고 싶다. 책을 읽는 족족 지식이 되어 머리에 쌓인다면 나는 박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특별히 머리가 좋은 사람 같은 것은 아니기에, 읽는대로 족족 그것들을 내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래도 계속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글로 써내는 것은, 내가 나를 좀 더 단단하고 깊은 사람이 되게 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출근길의 독서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출퇴근의 독서는 일상이긴 하지만, 퇴근길의 독서는 포기할 때도 있는 한편(그럴 땐 영화를 본다), 출근길에는 결코, 결코 포기할 수가 없다. 경험상 출근할 때 지하철 안 집중력이 하루중 최고다. 그 때 읽는 것들은 정말로 내 몸이 쭉쭉 빨아들이는 것 같고 사고가 확장되는 게 막 느껴져. 그래서 너무 좋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그 순간을 다른 일로 낭비할 수 없어. 그 때만큼은 꼭 책을 읽으려고 한다.




















요즘 출근길에는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를 읽고 있는데, 와, 이 책은 진짜 너무 좋다. 내가 다 읽으면 리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또 리뷰를 잘 못써? 그렇지만 이 책은 내가 아침에 생각하며 읽기에 진짜 맞춤한 책이고, 저자의 통찰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이라 너무 좋다.


레이첼 모랜은 인생의 순간순간을 어릴 때부터 그냥 넘겼던 사람이 아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눈앞에 닥친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거기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것인지,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어떤 결과가 되는지를 분명히 파악하는 사람이었고,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거나 비판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거기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얻어내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나 좋은 책이 나왔겠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사유와 통찰이 가득해서 형광펜 들고 밑줄 긋기를 수시로 하고 있고, 포스트잇 플래그도 덕지덕지 붙여가며 이제 겨우 절반을 읽었다. 매번 이렇게나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한 문장들을 토로할 수 있다니, 이런 책을 써줌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응원도 격하게 보내고 싶다. 당신은 글을 더 써야 합니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매우 의미있고 대단하지만,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당신의 생각과 통찰을 드러내는 글을 써주셨으면 합니다.



매 꼭지가 다 인상적이지만, 특히나 나는 '타락의 상호작용'에서 뒷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성구매자와 성매매여성이 서로 함께 타락해가는 것.


성구매 경험이 있는 남자, 그리고 성구매를 계속 하는 남자들은 무수히 많다. 남자사람 친구들로부터 그런 경험을 듣기도 했고, 애인으로부터 들었던 적도 있다. 애인이나 아내가 있으면서도 성구매를 하고, 그것을 굳이 숨겨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건 우리 모두가 아는 일 아닌가. 일전에 회사 남자동료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내 여자친구는 자기 임신하면 내 성욕 어떻게 참냐고 성매매 하라고 했어' 라며 자랑했다. 오, 신이시여. 그는 여자친구가 매우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맙소사. 그런 과정에서 아마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성매매를 대체 왜 하냐는 물음에 '거기서는 아내나 여자친구가 해주지 않는 걸 해주거든.' 어떤가, 다들 들어보지 않았는가.



자, 바로 이 지점에서 타락의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그 남성은 생리혈에 성적으로 도취되었다. 그의 성향은 평생 성매매 여성을 방문하도록 이끌었는데, 당연히 사생활에서 만나는 여성들과는 이런 욕망을 공유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성매매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자신과 인생을 공유하는 여성에게 드러낼 수 있을 거라고 이성적으로 기대를 할 수 없는 변태 성향을 다른 계층의 여성에게 떠넘기려는 남성의 고집이다. 여성들은 존중과 경멸, 품위와 천박, 종경과 비난이라는 두 부류로 구별되게 나뉜다.

내 친구는 생리혈이 가장 많이 나올 때 그 구매자와 만나기로 하고 적어도 만나기 하루 전에 탐폰을 착용해서 피에 흠뻑 젖도록 했다. 그 구매자는 항상 단호하게 탐폰이 완전히 젖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만나면 그녀는 탐폰을 빼고 그 구매자는 어린 시절 경험을 다시 살게 된다.

나의 친구와 그 캐나다인 성구매자 사이 특이한 타락의 상호작용은 이렇다. 그 친구는 그 구매자가 만났던 모든 여성들과 감정적으로 거리를 갖게 만드는 그의 더럽고 역겨운 습관이 지속되어 그 구매자가 자신의 가치를 낮추도록 도모했으며, 그 구매자는 다른 어떤 여성에게도 제시하지 못할 역할을 감히 그녀에게 제시함으로써 그녀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성매매 내 타락의 상호작용은 바로 이와 같다. 영향을 주고, 반영하며 합병하면서 쌍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요구되면 제공되고, 찾으면 충족되고, 제시되면 받아들여진다. 타락은 스스로 갱신하고 재생하는 데 고수이고, 특정 박테리아가 습한 장소에서 가장 잘 번식하듯이 타락은 성매매를 가장 최적의 환경으로 여긴다. (p.146)




아, 너무 소름끼치게 완벽한 구절이 아닌가. 여기서 예로든 생리혈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변태성향이긴 하지만, 다른 요구라 해도 마찬가지다. 감히 아내나 여자친구에게는 요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스스로 알면서 성매매 여성에게는 요구하는 바로 그 지점, 그것으로 일단 여자들은 나뉘어진다. 이 변태를 요구할 수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로. 그리고 성매매시 그 요구가 허용됨으로써 그 남자의 그 변태성향, 사라져야 할 잘못된 욕망은 지속,유지될 수 있다. 그가 나쁜 행동을 없애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성매매 여성은 다른 여자들이 허락하지 않을만한 행위를 허락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낮추게 된다. 레이첼 모랜은 이것을 '타락의 상호작용'이라고 표현한다. 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 이런 일들을 듣고 보고 경험하면서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가. 그것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어떻게 만드는가, 를 레이첼 모랜은 깊이 들여다보는 거다. 게다가, 그걸 글로 정리해 써낼 수 있는 사람이라니. 나는 너무 어마어마한 글을 만난 것 같다. 이 어마어마한 글을 만나는 바람에 나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을 생각해보게 되고 들여다보지 못했던 지점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아, 리뷰 써야되는데 여기다 너무 할 말 다 해버렸네. 



이런 독서를 대체 어떻게 포기한단 말인가. 나는 더 읽고 싶다. 더 읽고 더 알고 더 생각하고 싶다.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 역시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확장되기를 원한다. 그렇게 내 안에 많은 것들을,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차곡차곡 쌓고 싶다. 사람이 단단해지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정말이지 독서가 으뜸이다. 독서가 진짜 최고되는 것이야.



여러분, 책을 읽자. 여러분 페이드 포 읽자. 페이드 포 진짜 너무 너무좋다. 너무 너무 좋아 진짜. 한 인간이 사유랄 수 있는 최대치, 통찰할 수 있는 최대치가 바로 이 책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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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1-30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 최고! 에 공감합니다. 책은 사랑이죠ㅎㅎㅎ. 명료하고 깔끔한 리뷰 읽고 많이 생각하고 도움받고 갑니다.

다락방 2019-12-02 09:00   좋아요 1 | URL
으흐흐 알라딘은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좋아요. 독서 좋다는 말에 호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예요.
월요일 아침입니다. 즐겁게 시작하세요!

붕붕툐툐 2019-11-3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근길 지하철 독서의 매력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읽고 싶지만 젤 안 읽히는 책을 그 시간에 읽어요~ 페이드포 읽고 싶은 책에 눌러 담았습니다:)

다락방 2019-12-02 09:01   좋아요 0 | URL
오오 븅븅툐툐님도 출근 시간에 제일 집중이 잘 되시나요? 후훗.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책을 읽으면서 왔어요. 그럴 때는 정말이지 출근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집니다. 우리 언제나 좋은 책 읽으면서 생각 많이 많이 하면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