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년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해오면서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것들도 여러권 읽었다. 마지막에 읽었던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그중에서도 절정이었는데, 그 책을 다 읽은 걸 스스로 대견해했다. 이 책까지 읽었으니 세상에 읽지 못할 책이 어딨을까, 다른 책들은 이제 모두 쉽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달의 책인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읽기를 좀 미루고 있었다. 어차피 1월에 다 읽으면 되는거고, 고작, 겨우, 400페이지의 책인데 뭘. 2-3일이면 끝내지 않겠어? 하하하하. 그렇게 나는 뒤로 미루면서 다른 책들을 읽어가는 와중에, 다른 멤버들은 이 책을 시작하더라. 으응, 시작하세요, 난 좀 늦게 가지만 어쨌든 완독할테니까,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마음으로 여유 빵빵이었는데, 어제 멤버 1이 자신은 서문만 읽었다고 하고, 며칠전 멤버2는 '제2의 성보다 어렵다'고 하길래, 뭐, 일 얘기고, 나는 일하는 사람인데 뭐, 아하하하하하하하, 그러면 살짝 발을 담갔다가 후루룩 그 김에 다 읽어버릴까? 하고는 어제 이 책을 펼쳤다.
그러니까 내 머릿속에서는,
아, 어렵다 그래서 쫄아서 시작했는데, 책장 빨리 넘어가던데요? 다 읽었어요.
이거 할라 그랬거든?
그런데 나는 이 책의 서문조차도 다 읽지 못했다. 제2의 성보다 어렵다는 멤버의 말을 떠올리며, 와, 그 말이 사실이었어...적극동의하였으며, 그래도 서문은 다 읽었다는 다른 멤버의 말에 서문은 다 읽고 자자 하였지만, 넘겨도 넘겨도 힘들게 넘겨도 서문이 끝나지 않는 것이었다.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게 나는 서문 읽는 것 조차도 포기합니다.
서문이여...
노동은 경제적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뿐 아니라 사회적 ·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킨다. 다시 말해 임금관계는 소득과 자본을 창출할 뿐 아니라, 규율에 따르는 개인, 통치 가능한 주체, 가치 있는 시민, 책임감 있는 가족 구성원을 낳는다. 실제로 노동이 개인의 삶과 사회의 상象에서 차지하는 구심적 역할을 감안하면, 노동은 다양한 주체성에 대한 탐구에서 중요한 지점을 점할 수밖에 없다. (p.22)
나는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 했던 것부터 지금까지 20년 이상을 일해오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을 하는건데, 물론 그 사이에 이십대 중반에 2개월쯤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잠깐 백수로 지냈던 시간.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까지 2개월의 텀이 있었던건데, 그 2개월을 나는 '그간 열심히 일했으니 충분히 놀고, 충분히 쉬고 그 다음에 직장을 구하자' 하였지만, 그런 마음은 며칠 가지 않았다. 오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라 치면 '너 왜 집에 있니'란 물음에 답하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그전에 분명 일했고 또 앞으로 일할 것이 분명함에도 나는 그 2개월간 나를 무가치하고 쓸모없게 느꼈다.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자, 라고 생각하였지만 사실 뭘 해야할지도 잘 몰랐고 또 열심히 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에 내가 한 일이라고는 운전면허 1종을 따둔 것이었는데, 이러면서도 스스로가 한심해 견딜 수가 없었다. 놀면서 하는 게 이렇게 없어서야, 원. 막상 내 친구는 나한테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고 지청구를 늘어 놓았지만.
어쨌든 충분히 놀고 싶었지만 노는 것도 뜻대로 안되어 다시 취직을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르렀다.
모든 직장인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매일매일 수차례 그만두고 싶다. 점잖게 '그만두고 싶다'로 그치는 게 아니라, '씨발 그만두고 말지'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직장이란, 물론 그렇지 않은 직장도 있겠지만, 계급이 가장 확실히 보여지는 곳이고 상사의 명령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특히나 나처럼 제조업이라면, 임원들이 전부 나이 많은 남자들이라면 더하다. 이 안에서 살아남으면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은, 여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들 역시나 일터에서 많은 고충을 겪어야겠지만, 여자는 거기에 몇가지를 더한다고 해도 좋다. 우리 회사에 임원중에 여자가 없는 것만 봐도 증명되는 게 아닌가.
나 역시도 매일 그만두고 싶어하고 어떤 날은 심하게 그만두고 싶어서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임원은 내 앞에서 내가 제출한 사직서를 찢어버렸고 그래서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관두고자 하면서도 사실 많은 부분 내가 직장인, 회사원이기 때문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안정적으로 여겨진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거, 일을 분담하는 거,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때문에 겪을 수 있고 알게된 것들이다. 복도에서 다른 팀의 직원들을 만났을 때 반가이 인사를 하노라면, '내가 회사에 다니지 않았으면 다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겠지'라는 생각에 슬몃 웃음도 난다. 정말 그러고 싶진 않지만,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곳에서의 에너지 모두 내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에 이토록 많은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고, 일에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나는 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테니 이 책이 어려울 리가 없잖아? 쉬워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나 나는 서문의 책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그래도 서문만이라도 읽고 자자 하다가 읽어도 읽어도 서문이 안끝나, 대체 서문이 어디까지야, 하고 뒤로 넘겨보니 60페이지를 넘어가더라. 하아. 그래, 서문만..서문만.. 하였지만 너무 안되어서.. 아 포기다, 하고 서문도 다 읽지 못했다. 어떻게 제2의 성보다 어려울 수 있지, 어떻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요?
그렇게 서문의 반을 채 읽지도 못한 채 지쳤다가, '한나 아렌트'를 만난다. 무려 '서문'에서 한나 아렌트가 나와. 네?
여기서 나는 일과 노동의 관계에 주목하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을 고려하여 나는 두 용어를 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처럼 사용할 것이다. 이로서 자주 그러나 변덕스럽게 제기되곤 하는 둘 사이의 차이를 거칠게 다루고자 한다. 이 문제에 관한 중요한 학자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58) 아렌트는 생물학적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활동으로서의 노동labor 과 대상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으로서의 일work을 구분함으로써 세 번째 범주의 활동, 즉 행위action의 특이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행위는 공적 영역에서의 정치적 활동을 뜻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더 확장적이며 가치 있는 활동으로 그려지는 것은 노동-보다 정확히는 살아 있는 노동living labor-이다. 여기서 살아 있는 노동은 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활용하는 인간의 집단적이고 창조적인 역량으로 개념화되면서, 비판적 관점과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동시에 이끌어 낸다. (p.31)
위의 31페이지 인용문....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나 아렌트를 언급했다는 것만 알겠다. 나는 이 책의 서문을 삼십몇페이지에서 읽다가 던져버린다. 그리고 아아, 모르겠다, 한나 아렌트를 읽고 다시 시도하자, 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내가 오늘 들고온 책은 무엇?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모르겠다.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건지, 잘 가고 있는건지. 1월 도서 너무 어려워서 미쳐버릴 것 같구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이 한나 아렌트를 끝낸 다음에 다시 1월의 도서로 돌아갈게요. 아니 1월 도서는 무슨 제목부터 이렇게 길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주말에 중년의 남자연예인들의 문자대화가 이슈가 되었다. 그런 내용들을 주고받는다는 게 더이상 충격이진 않았다. 어차피 대학생들의 단톡방이 청년이 되면 정준영 승리의 단톡방이 되고, 그들이 고스란히 자라 그런 중년이 되는 것이니까. 그들은 그러니까 자신들이 살던 그대로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어른이란 말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대학생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면서 그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대로, 바로 거기에서 멈춰있다.
중년의 인기있는 남자 배우들이라면 분명 경제적 여유도 있을 터였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은 시간적 여유도 동시에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돈이 충분히 있는 상황. 그렇다면 인생을 좀 더 다른 식으로 살아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중년의 여유를 가진 남성들의 대화가 고작 '성매매'와 '골프' 밖에 없냐는 거다. 그 가득찬 대화창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고작 골프와 성매매가 전부라니. 너무 한심하지 않은가. 자신들이 가진 시간과 돈으로 생각할 수있는 게 그것 뿐이란 말인가, 정녕. 너무 한심하다, 너무. 여성을 성적대상화 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야. 여성을 사고 팔고 '떡치는 게' 시간과 돈을 잔뜩 가진 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라니. 여성을 그저 성적 도구로 보는 것도 끔찍하지만, 그 나이에 그것밖에 못하는 것도 너무 한심하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기 발전을 더 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에 놓여있으면서도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럴거면 공부하고 싶어하고 열심히 살고 싶어하고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싶어하고 시야를 넓히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그 돈을 다 기부해라 진짜.. 머릿속에 골프랑 성매매밖에 없는 삶... 그런 삶은 도대체 스스로에게 어떤 만족을 가져올까. 게다가 가장 친한 친구와 나누는 대화가 그것 뿐이라니. 아니 그게 정말 스스로 괜찮아요? 다른 여자의 나이를 묻고 몸매를 묻고 자빠뜨리자는 의기투합하는 게, 그게 친구와 나누는 대화의 전부인 게, 그게 정말 스스로 만족스러워? 그래?
그런 중년의 남성들에게 매일 일기 쓰는 걸 권합니다.
일기를 쓰세요. 매일. 매일 쓰세요. 짧게라도 일기를 쓰세요.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어보세요.
그러고도 그런 삶을 여전히 살게 된다면, 당신이 진정한 한심이.... 가망없는 한심이......
아무튼 나는 한나 아렌트를 읽을 것이고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도 읽을 것이다. 완독해야지.
아니 근데 내가 페이퍼 쓰려고 이 책을 검색하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오고
'우리는 왜 그토록'
까지만 쳐도 안나와서 대체 왜 안나와, 왜. 이토록 아니면 그토록인것 같은데, 왜?
하고 어제 내가 독서앱 IReadItNow 에 올린 걸 보니,
'우리는 왜 이렇게'
였어..... 나여........
아무튼 1월의 도서는 매우 어렵습니다, 매우. 여러분 열심히 읽고 글 써요!! 뽜샤!!
나는 완독할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두구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