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한다. 시간은 왜이렇게 빨리 가는걸까. 시간은 왜, 어째서, 플랭크 할때만 느리게 흐르는가. 어째서 그런가, 어째서..
기다리던 달콤한 주말도 또 다 지나가고 있고, 어쨌든 남은 열흘 정도의 시간동안 내가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해도 올해 인상깊었던 책이나 작가에 변동이 생길 것 같진 않다. 그러므로 정리해보는 2019년의 책과 작가들. 그동안 잘 안했었는데 올해는 꼭 하고 싶었다. 꼭 이름을 알리고 싶은 작가들이 있어서. 올해의 책이라고 해서 올해 나온 책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올해 2019년' 에 읽은 책을 기준으로 한다.
2019년 올해의 작가: 샤론 볼턴
샤론 볼턴의 소설들은 소설이 갖추어야 모든 것을 갖춘 그 이상이다.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결국 샤론 볼턴은 어떻게든 해야 할 이야기를 아주 세련되게 한다는 것. 나는 읽었던 세 편중에 [뱀이 깨어나는 마을]이 가장 좋고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최근에 읽었던 [피의 수확]도 여러가지 이유로 좋았고,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 작가의 책을 전부 다 읽어 보고 싶어진다는 것은, 그 작가가 말하는 방식이나 그 작가가 바라보는 방향, 그 작가가 보여주는 가치관에 동의함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다. 샤론 볼턴은 신비한 이야기들, 도무지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단 툭, 던져놓고는, 이것봐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지? 있다니까? 해서 독자로 하여금 영문도 모르고 계속 따라가게끔 한 뒤에, '그게 사실은 이런거야' 라면서 현실을 드러내준다. 그 과정에서 항상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개인적 서사가 더해지고. 그 주인공들은 완벽함과는 어느모로든 거리가 멀지만, 그러나 내게는 너무나 완전한 인간형이다. 각자의 부족함을 끌어 안고 각자의 고집을 끌어 안고 그들은 앞으로 성큼성큼 나아간다. 미스테리 소설로도, 성장 서사로도 손색이 없고, 게다가 그녀가 던지는 메세지는 언제나, 언제나 나를 움직인다. 이 모두를 조화롭게 녹여낼 수 있는 작가가 샤론 볼턴 말고 또 있을까? 게다가 독자와의 궁합이 있다면 나는 샤론 볼턴이란 작가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독자가 아닌가 싶다. 내가 소설을 얼마나 잘 읽어내는가와는 별개로, 샤론 볼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전체적으로도 부분적으로도 얼마나 짜임새있는지 완벽한지 다 알겠다니까? 다 보인다니까? 최고야 최고. 최고다 샤론 볼턴.
2019 올해의 책: 페이드 포
올해의 책은 '레이첼 모랜'의 [페이드 포] 이다. 사실 페이드 포를 읽기 전까지는 [여자는 인질이다]가 될 뻔했는데, 페이드 포를 읽은 지금은 페이드 포가 다 눌러버렸다. 레이첼 모랜은, 와, 정말 똑똑한 작가인데,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거리감을 두고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며 또 생각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책을 써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그저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슬퍼하거나 절망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들을 끈질기게 관찰하고 생각하고 찾아내는 것. 이것만해도 대단한데, 그렇게 찾아내고난 후에 그걸 책으로 써내기까지 했다. 그 안에 꾹꾹 눌러담긴 그 통찰과 깊은 생각들이 당연히 독자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레이첼 모랜이 앞으로도 다른 분야의 책을 계속 더 써주였으면 좋겠다. 그녀가 쓰는 책이라면 그게 뭐든, 허투루 쓰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가 생긴다. 사유할 줄 아는 사람의 진정성이 담긴 책이다. 진정성이란 단어가 어쩐지 요즘엔 그 빛을 바랜것 같아 사용하기 저어되는 단어이지만, 그러나 이 책에 진정성 말고 무슨 단어를 넣어 표현할 수 있을까. 읽기 힘든만큼 책의 모든 부분에 밑줄 긋고 싶은 책. 고민없이 올해의 책이다.
2019년 올해이 발견: 문목하, [돌이킬 수 있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올해의 발견이라고 김초엽을 극찬하길래 읽어봤는데, 그 책을 읽고 내가 생각한 건, '사람들이 아직 문목하를 모르는구나' 였다. 나는 올해 문목하의 [돌이킬 수 있는]을 읽고 SF 장르에 살짝 발을 담가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국내 여성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니' 하면서 뒤늦게 발견한 나를 원망하기도 했다. 한국의 한남문학은 스러져가지만, 여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어. 문목하의 이 책이 내게 그걸 얘기하고 있었다. 어느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사랑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가장 로맨틱한 소설'이라고 쓴 평을 봤는데, 정말 그렇다. 사랑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사랑이 가장 절절하게 담겨 있는 책.
2019 올해의 빅엿: 악인, 풍선인간, 실종
올해의 빅엿, 똥밟았다, 를 생각하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달의 영휴] 였다. 아동성애를 변명하고 포장해둔 거지같은 책이라서 그거 올해의 빅엿이다, 쓰려고 찾아봤더니 크, 아쉽게도 2018년 12월에 읽은거더라. 운 좋은 줄 알아라, 그 당시에도 리뷰로 까줬지만 이번에 다시 한 번 가열차게 까주려고 했었어. 그런데 2018년 12월에 읽은 거라 그냥 넘어간다. 얌전히... 다시는 그런 소설 쓰지마라. 그리고 일본 문단이여, 그딴 소설에 상주는 거면 니네도 좀 남자문학 죽여야 된다. 한국처럼...
위의 세 권에 대해서는 긴 말은 않고, 내가 썼던 백자평을 다시 한번 가져오는 걸로 대신하겠다.
악인: 딱 기다리고 있어라. 다 읽고나면 대차게 까줄테니까. (이러고 다 읽고 리뷰로 겁나 까버림)
풍선인간: 싫어... 세번째 단편은 쓰레기.
실종: 정의감 가득 차서 저 혼자 잘난 줄 알고 설쳐대는 민폐쟁이 멍청한 남주
[악인] 과 [풍선인간]이 여성혐오 가득한 쓰레기 소설이었다면 [실종]의 경우에는 뭐랄까, 캐릭터가 완전 엿같았다. 남자 작가들이 종종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본인이 정의롭다는 뽕에 가득차서 민폐 가득 끼치고 다니는 타입인 것이다. 제발 닥치고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거야, 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그런 성격의 남자들이랄까. 악인과 풍선인간과 나란히 놓기에는 초큼 미안하지만 그래도 민폐쟁이 남자는 너무 시러..........
몇 번이나 말했지만, 소설이라는 것은 허구의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로 작가가 하려는 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안의 세상은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세상이기도 하고 충분히 살아보았던 세상이기도 하다. 또한 그 안의 인물들도 각종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실수를 할 수도 있다. 여성혐오도 마찬가지.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소수자를 혐오하고 여성을 혐오하고 약자를 혐오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그 모든 소설들이 싫다거나 욕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보여주면서 작가가 어떤 얘기를 하는가가 중요한 거니까. 세상에 여자가 죽는 소설도 한두 권이 아니고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가 나오는 소설은 뭐 거의 대부분이 아니던가. 그러나 내가 유독 악인과 풍선인간을 싫어하는 이유는, 여성혐오를 하는 인물들을 드러내서 어떤 메세지를 전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여성혐오가 그 작가들에게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작가의 여성혐오가 드러나는 게 너무 싫다. [달의 영휴]를 다시 가져오자면, 작가는 이래저래 잘 꾸며서 자신이 상상한 세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다시 태어나는 영원한 사랑이야기가 가능하다, 는 걸 보여주려 하고 그걸로 인해서 상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건 성인 남자 어른과 일곱살 여자 아이의 사랑이다. 참으로 좆같지 아니한가. 그러니까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세상을 어떤 식으로 만드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사실 작가의 숨은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악인]은 '강간했다고 사람들에게 거짓말할거야' 라고 말하는 여자를 죽이는 남자가 나온다. [풍선인간]은 킬러가 배우출신 여성의뢰인에게 자신을 고용한 값을 '네 몸으로 지불해라' 라고 말한다. 그간 성접대로 살아온 몸이니 사실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냐면서. 그리고는 그 배우의 딸도 몸으로 감사를 표현하려고 한다고 나온다. 풍선인간에서는 성접대를 해서 성공하는 여성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 대한 비난이 있는 게 아니라, 성접대로 성공하는 여성만 보여준다. 그러니까 어떤 값을 몸으로 치를 수 있는 여성에 대해서.
아 길게 쓰지 말아야지. 흥분해서 또 길어졌네. 나 빨리 페이퍼 다 쓰고 책도 읽고 그래야 되는데...
2019년 올해의 장소: 뉴욕 휘트니 뮤지엄
나는 올해 여름 휘트니 뮤지엄에 갔던 일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얼마전에 [모리스] 읽고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는 사무실이다'는 얘길 한 적이 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실 가능하다면 나의 펜지의 보트하우스는 휘트니 뮤지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나의 로망이랄까. 어디 가면 다락방을 볼 수 있을까, 지금 다락방 연락이 안되는데 어디있을까 하고 생각한 뒤에 그래 거기야, 하고 달려오면 바로 내가 있는 그 곳, 휘트니 뮤지엄... 이었으면 좋겠는데. 슬프게도 휘트니 뮤지엄에 그렇게 가려면 일단 비행기도 할부로 끊어야 해서, 정작 내가 가기가 힘들다는 것... 나여.........슬픔의 새드니스.
휘트니 뮤지엄은 그 장소 자체로도 완벽했지만, 그 장소에 이르기까지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핸드폰 구글맵에 의지히 혼자 찾아갔던 길. 완전히 낯선 곳에서 온전히 혼자 걸었던 그 길과 시간. 그렇게 뮤지엄 앞에 다다를 무렵 비가 내렸고, 이를 어쩌나 우산도 없는데, 하면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는데 아흑 너무 좋은 거다. 특히나 뮤지엄에는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테라스가 있었고, 그 테라스에서 비가 오는 바깥을 바라보는 것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행복했던 것이다. 우산이 없어서 이따 어떻게 다시 돌아가나, 라는 걱정을 잠깐 하다가 층츰별로 가 그림들을 천천히 보고 다시 테라스가 있는 까페로 와서 커피를 주문해 마셨다. 정말이지 완벽한 시간이었고, 그 순간의 마법일까, 뮤지엄을 나왔을 때는 비가 멎어있었다. 크-
사람이 소설을 좋아하면 삶을 소설처럼 살게되는 것 같아. 소설같은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마침 내가 올해를 정리하는 페이퍼를 쓰려고 내가 작성했던 백자평들을 둘러보다가, [이웃집 공룡 볼리바르]에 작성한 이런 글을 보았다.
"뉴욕에 살며 미술관을 자주 찾는 공룡 볼리바르 덕에 뉴욕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천천히 다시 미술관을 향해 걷고싶고 미술관에서 걷고 싶다."
이런 글을 2019년 4월 14일에 작성하고 나는 8월에 정말 뉴욕으로 떠나 휘트니 뮤지엄에 갔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만세!
2019년 올해의 도전: 비릿
비릿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들도 있지만 꼭같은 크기로 감추고 싶은 말들도 있다. 그렇지만 올해 비릿은 내게 특별했고 계속하자는 의지를 불사르게 해주었다. 어떤 점에서는 분명 내가 잘 살아오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고 또 어떤 점에서는 내가 아직 부족한 인간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내 능력과 내 한계를 동시에 알게해준 문학잡지.
2019년 올해의 잘한 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한달 플랭크
2019년 올해의 인물: 더덕단 (더덕단 뽀에벌~)
2019년 올해의 반함, 올해의 사랑: 맥켄지 데이비스
2019년 올해의 영화: 5 to 7
2019년 올해의 화두: 공부. 아마도 공부는 앞으로도 내내 나의 인생 주제가 될 것 같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게 야속하다. 벌써 일요일 저녁 18:37이다. 이 시간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한다? 플랭크를 해야 한다. 이제 놋북을 접고 플랭크를 해야겠다. 1분만 해야지 그 1분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느껴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