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는 꼬꼬마 시절부터 아토다 타카시阿刀田高의 "취미를 가진 여인趣味を持つ女"의 열렬한 지지자였기도 하고, 이 작가를 기본적으로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제가 호시 신이치를 싫어하는 데 비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좋아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248/0/cover150/8989571510_1.jpg)
하지만 단편집 [나폴레옹광]은 재난이었어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사 버린 게 화근이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한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책을 들이밀며 내 기분을 좀 알아달라고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호시 신이치 식 실없음으로 꽉 차 있는 이 단편집은, 일단 표제작인 "나폴레옹광ナポレオン狂"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뻔히 예측 가능한 것은 그렇다치고-저는 이제 이 점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기로 했습니다-거기까지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너무나도 둔합니다. 재치 있는 서술과는 거리가 멀어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비슷한 종류의 문제점을 가진 다음 수록작 "뻔뻔한 방문자來訪者(알라딘 서재 에디터에는 '來'의 일본식 글자가 찍히지 않아서 대신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가 차라리 나을 정도예요.
사실 '~부터가' 라고 말하려면, "나폴레옹광" 이전에 표지의 문제를 얘기해야 하겠지만...저 유치한 표지에 대해서는 심지어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아뇨, 일러스트 얘기 아닙니다. 띠지의 컨셉 얘기하는 거예요.
나머지 단편들 중 "밧줄-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繩-編集者への手紙-('繩' 역시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은 이전에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쁘지 않습니다. 톤이 완전히 다르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인간의자人間椅子]를 연상케 하는 부분도 있고요. :] 마음에 들었던 것은 "뒤틀린 밤"捩れた夜과 "그것의 이면裏側"의 2편입니다. " 광폭한 사자 凶暴なライオン"의 경우 완전히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서술의 힘이 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상물로 개작되었을 경우에는 한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긴 건 말고, 뮤직비디오 같은 형식이 좋겠네요. "생 제르망 백작 소고 サン· ジェルマン伯爵考"는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라기 보다는,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거기 한참 못 미쳤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사랑은 생각 밖의 것戀は思案の外('戀'을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은 이야기가 너무 뭐랄까...'늙었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광]이 1979년에 출간된 단편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늙어보이는 이야기가 이 한 편 뿐이라는 점은 사실 좀 놀랍습니다. 가장 의외였던 부분이라고 할까요...:]
"골프의 기원ゴルフ事始め" 역시 이전에 본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쪽은 뭐랄까 아저씨 개그. 싫어요. "투명 물고기透明魚", "창공蒼空"은 실없고, 역시 "생 제르망 백작 소고" 레벨. "이白い齒('齒'를 한국식 한자로 표기했습니다)"는 그냥 도시전설 수준, 혹은 표제작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206/89/cover/8989571499_1.jpg)
그러니까 이것은 아토다 타카시라는 작가에 대한 호오라기보다는 [나폴레옹광] 이라는 단편집에 대한 호오에 가깝겠습니다. 단편집에는 장편과는 다른 단편집만의 '분위기' 라는 것이 있고, "취미를 가진 여인"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실은 그 단편을 처음 발견한 [일본 서스펜스 걸작선](고려원, 1993) 이라는 단편집 전체의 분위기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취미를 가진 여인"은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冷藏庫より愛をこめて](1978)에 처음 수록되었습니다. 이것이 아토다 타카시의 첫 번째 단편집이라고 하니까 어쩌면 저는 이쪽을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죠.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90553193426471.jpg)
◁ 참고로, [나폴레옹광]의 초판(講談社, 1979) 표지는 이렇습니다. 귀엽네요. 이쪽이 현
재 아마존에서 팔고 있는 버전 표지(▷)보다 나은 듯.
그러면, [나폴레옹광]에서 이제는 뭐가 남죠? ...물론, 복어의 미림보시가 남습니다. :] 미림의 '림'은 (酉+林)으로 쓰는 한자인데, 역시 안 찍히네요. ^^; 참고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미림'의 한자 표기를 味淋, 味(酉+林) 양쪽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미림보시는 흔한 요리법이기는 한데, 복어로 만든 것은 먹어본 적이 없어서 'ふぐの味(酉+林)干し'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이런 곳(클릭)에서 팔고 있는데...과연, 본문에 언급된 대로 아름다운 물엿 색, 혹은 호박빛이네요. 저 홈페이지의 설명에 의하자면 녹아내릴 듯이 보드라운 폭신폭신찰랑찰랑한 식감이라는군요. 먹어보고 싶어라...하지만 재료가 재료니만큼, 몹시 비쌉니다. 큰 것이 긴 쪽 길이 13cm 정도로 아마 어른 손바닥 정도 크기일 텐데요. 2~3장이 100g이 되고, 100g이 500엔이니, 저 단편에 나온 대로 이거 좋아하는 사람이 한 상자 선물받으면 매우 기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