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인지워스Strangeworth집안의 마지막 한 사람인 미스 아델라 스트레인지워스는 일흔 한 살의, 정정하다는 말이 무색할 지경인 노부인입니다. 그녀는 혼자 살며 사람 손을 빌리지 않고도 장미를 가꾸고, 스트레인지워스 저택을 관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마을의 악덕을 정화하는 일에도 힘씁니다. 스트레인지워스 집안 자체가 이 작은 마을의 역사와도 같아서, 미스 스트레인지워스는 이 마을을 스트레인지워스 집안의 장미처럼 '나의 것' 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지요. 평생을 통틀어 마을 바깥에 나가 본 적이 거의 없는 미스 스트레인지워스에게 실제로 이 마을은 세상의 전부입니다.
실제로 눈으로 보지는 못했더라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악덕의 뿌리를 뽑기 위해, 미스 스트레인지워스는 위험한 일을 벌입니다. 그녀의 행동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소한 잘못을 바로잡기보다 오히려 주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근원이 됩니다. 그리고 우연한 실수로 인해 폭발하게 된 사람들의 악의는 그 즉시 미스 스트레인지워스를 덮칩니다.
(사진 : Est Bleu2007 @ Flickr)
'플레전트 가 스트레인지워스 저택의 장미꽃'으로 상징되는, 영원히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은 채 살아갈 것만 같던 초반의 마을 풍경-미스 스트레인지워스가 지키고 싶어했던 것-과, 악의 씨앗을 모두 뿌리 뽑고 싶어하는 미스 스트레인지워스의 행동, 그리고 그 결말까지, 이 세 가지 요소의 선명한 대비는 너무나 아름답고도 끔찍한 광경을 그려냅니다. 셜리 잭슨은 별로 어려운 말도 쓰지 않으면서 인간의 악의나 야만성의 정수를 짚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악의 가능성]은 그녀의 스완 송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집필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죽음 후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에 발표되었고, 그 해 에드가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실을 훑어봐도 놓치기 쉬운 고찰을 산뜻하게 잡아내는 것이 단편소설의 훌륭한 점 중 하나겠지요. [악의 가능성] 에서 다루고 있는 바는 실제로 우리의 현실에서도 그렇게 먼 부분이 아니고, 누구나 근처에 비슷한 사람이 하나...아니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겁니다. 저는 한국인들이 이 소설을 포함해서, 셜리 잭슨의 단편을 좀 더 많이 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잊어버리기 딱 좋은 문화에 살면서, 제 정신을 유지하고 깨어 있기가 힘들 때는 남의 통찰력을 좀 빌릴 필요성이 있습니다.
Trivia
1. 점심으로 다이제스티브 비스킷과 우유를 먹으면서 썼습니다. 이 메뉴는 먹을 땐 배가 불러서 많이 먹을 수 없는 대신 세 시간만 지나면 죽을 정도로 배가 고파집니다. 점심으로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죠. :<
2. [악의 가능성]은 명지사에서 나온 [에드가상 수상작품집 II]에 실려 있습니다. 처음 읽은 지 10년이 넘는 걸 새삼 다시 읽고 포스팅한 이유는, 이번에 셜리 잭슨 단편집 [Just an ordinary day]를 구해서 마침내 이 소설을 원문으로 읽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제가 처음 본 저 번역이 얼마나 못력이었는지가 뼈저리게 느껴지네요. 일단 일본어판 중역의 혐의가 있고 말이죠. 하지만 이 앤솔로지의 구성은 좋습니다. 저는 리스 데이비스의 [선택된 것The Chosen One]의 음울한 분위기도, [세계를 속인 남자The Man Who Fooled the World]의 유머감각도 높이 치고 있습니다. [드리워진 커튼The Fallen Curtain]도 충분히 루스 렌델다운 찝찝한(=이 경우에는 '좋은') 단편입니다.
3. 지금까지 리뷰한 소설 중에서, 스포일러 안 하고 쓰기가 제일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4. 봄특집을 하나쯤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