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할 권리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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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말만 들어도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지. 이제껏 제대로 여행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언제나 내게 여행은 현실적인 대상보다는 허구적인 대상에 가깝다. 여기가 아닌 그 어딘가를 향해서 마음과 몸이 함께 달려가는. 어느 날, 마음의 부름을 받아 느닷없이 떠나보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

김연수란 작가를 맨 처음 알게 된 것도 [청춘의 문장들]이란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그의 산문이 주는 재미와 깊이를 잘 알고 있기에 [여행할 권리]도 내심 기대했었다. 여행이란 경험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그 속에서 느끼고 겪으며 체득한 다채로운 사유의 기억들을 담은 산문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의 여행기와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야기가 있고 명확한 메시지가 있는 대목들에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기존의 생각하고 꿈꾸었던 여행들은 단순한 물리적인 이동의 끌림에 가까웠던 것임을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얼만큼의 '이동'이 아니라, 얼만큼의 '깊이'로 자신을 발견하며 스스로를 확장시킬 수 있느냐일 텐데 말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들 중에 여행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이며 정확한 편이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떠나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겠지. 다른 존재가 간절히 되고 싶어서 떠나고 본래의 나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말이다. '김연수'란 타인의 경험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던 것들이 그야말로 가치있게 여겨진다. 그의 정신과 감미로운 감상을 빌어서 비로소 보다 깊이있게 바라볼 수 있었고 더불어 생각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들이 되었다. 삶과 문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시선들을 바라보며 역시 작가들은 다르구나 새삼 다시 한 번 감탄하며 느끼기도 했고. 

누구나 여행할 권리는 있다. 그 여행을 규정하는 속성들은 개인마다 제각각일 것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여행이란 어떤 것인지 아직 명확하진 않다. 하지만 그 여행을 통해서 무엇보다 내면적으로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 여행의 도구가 물리적인 이동일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은 아닐 것이다. 내면의 여행을 위해서 책을 도구로 삼아도 적절한 것이라 생각한다. 계산하는 마음이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조금씩이나마 버리게 되어 더디지만 조금씩 성장함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생겼으면 한다.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을 기대하게 만드는 여행은 매혹의 다른 이름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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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등 푸른 활어영어
이미도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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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어에 관심은 있어도 꾸준히 노력하지는 못하는 나. 그래도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면 덩달아 영어에 대한 관심도도 함께 상승함을 느낀다. 영어라는 바다 속에서 건져올린 펄떡거리는 활어영어라. 책을 보기 전부터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영어학습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책이라곤 하지만 진정 영어학습에 얼마나 유익할지는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순전히 재미라는 측면에서 고른 책이였던지라 큰 실망감은 모르겠다. 나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기 쉽다는 것은 명백하지 싶다. 아무래도 '영화'라는 테마로 배울 수 있고 얻을 수 있는 '영어'들을 소개하고 있는지라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들을 이번 기회로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다. 하지만 메모하지 않고 그냥 눈으로만 한번 읽고만 것이라 그리 긴 생명력으로 내 기억 속에서 살아남지는 못할 듯 싶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으면 그래도 좋을 만한 것들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다루고 있다. 영화라는 친숙한 대상으로 영어를 조금씩이나마 익힌다는 것은, 내가 하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시작하기 어려운 일이 전혀 아니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딱딱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글은 이미도 님의 장점인 듯 싶다. <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를 읽고 그의 전작들도 한번 보고픈 마음에 고른 것인데 그 책과 내용면에서 겹치는 부분이 꽤 많아서 약간 빈정 상했다 할까. 반복학습이란 측면에서는 유익하겠다만 재미나 흥미란 측면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은 김빠지는 게 사실이니까.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한마디로 잡지를 보는 느낌과 유사했다. 엄청난 것을 알기 위해 잡지를 보는 것이 아니듯이, 그저 가벼운 읽을거리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과 동시에 건전한 영화적 영어적 재미를 맛보았기에 괜찮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를 부담감 없이 즐기듯이 영어도 똑같은 마음으로 즐길 수 있게 된다면 필경 지금 수준보다는 더 좋아질 수 있으리라. 영어공부를 하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영어적인 것들에 대해서 아예 관심 자체를 배제하기란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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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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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되자마자 지금까지 줄곧 이 소설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로만 알고 있었다. 원작으로든 영화로든 보고 싶은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기에 그냥 알고만 있었던 원작자. 이 작품에 대해 말들이 많은 것 같다. 당최 어떤 내용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내가 본 그의 소설은 [로드]가 처음이다. 내가 생각하고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대단한 작가였다. 내겐 이 한 권의 책으로 작가의 낯선 이름이 익숙한 이름으로 바뀌어진 것만은 확실하다.

길은 모름지기 떠남을 위해 존재한다. 그 길 위에 남자와 소년이 서 있다. 걷고 또 걷고, 묵묵히 남쪽 바다란 목적지를 향해 걷는 두 사람. 그들 앞에 놓인 현실의 모습이란 황폐와 참혹 그 자체이다. 생명의 흔적은 쉽게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은 죽어 있다. 그렇게 망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보이는 거라곤 온통 타버린 흔적과 남겨진 재와 먼지. 검은 밤의 이미지가 세상 한가운데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다. 추위와 배고픔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재앙 앞에서 그들은 도망칠 수도 없다. 살아 있기에 움직여야 했고 죽기 전까지는 그런 생활을 영위해야만 했다. 현실이 그러니까 말이다. 

사실 이렇게 글로써 사람을 암울한 느낌에 젖게 하는 내용인 줄 알지 못했다. 글을 읽는 동안 내심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와 동시에 색다른 재미에 끌려 책을 놓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작가의 문체가 상당히 좋았다. 명료하고 간결한 동시에 시적인 언어를 읽는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이야기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남자와 소년에게 무엇이 그들의 희망이었을까? 어떤 것이 그들의 희망일지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길 위의 두 사람이 살아남아 연명하고 생을 이어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비참하고 처참하게 그려지는 면이 이 이야기를 더 진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각인될 것 같다.

이야기 초반에서 느껴지던 막막함이 중후반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마지막 단 한 번 타오른 희망이라서 그런지 더 절실하게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리라. 모든 문명과 자연은 파괴되고 쓰러졌지만, 남자인 아버지와 소년인 아들 사이에서는 끝내 파괴되지 않았던 인간애 같은 것이 어쩌면 근본적인 구원의 핵심 및 참된 구원의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죽임이란 진실은 명백히 존재한다. 꼭 그만큼 선과 아름다움도 명백히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불'을 운반한다는 상징이 갖는 의미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남자와 소년의 대화도 인상깊고, 앞서 말했듯 작가의 문투가 인상깊다. 작가의 상상력으로 발현된 강렬함이 이 소설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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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는 영화관에서 시작됐다
이미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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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외화 번역가는 '이미도' 님이다. 예전보다 개인적으론 영화라는 대상이 점점 더 좋아졌고 가까워졌다. 그래서 영화와 연관된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든지 흥미와 관심이 생기기에 겸사겸사 이 책이 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덤으로 영어공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에 요긴한 도움되는 지침들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펼쳤다.

외화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영화와 영어가 어떤 의미인지 비교적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동안 번역가의 고충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그저 영어를 남달리 잘하니까 번역일도 하는 거겠지, 했었다. 너무 단순화시켜서 생각해왔던 것 같다. 번역과 창작의 차이점도 이 책을 통해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고. 언어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분이란걸 느낄 수 있는 재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미도 님에겐 영화관이 영어관이라지. 영화와 영어를 예찬하는 이미도 님에겐 영화란 인생 그 자체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대상이 전부가 되어버린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생각의 토대도 근본적으로 영화가 그 시작을 제공해준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재미있게 영화적 지식도 알 수 있고, 재미있게 하는 영어공부에 대한 원천도 바로 영화였다.

나에게 있어 영화란 과연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인지 덩달아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한 분야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 쓴 글을 보는 것만으로도 얻는 것이 있고 배우는 것이 있다. 영화에서 배운 긍정적인 깨달음들을 자신의 인생 속에서 그대로 녹여내는 생각과 마음을 나도 좇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예찬 중에서 <아이 엠 샘>에 그런 눈물나는 속내(?)가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저자는 영화와 언어 자체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고, 영화와 언어에 대한 감상과 이해가 뛰어났기에 번역이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었다. 영화이야기를 들으면서 소개된 영화 중 아직인 영화들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적어두었다. 이 책의 성격은 다분히 영화적이다. 솔직히 좀더 영어적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내겐 전반적인 재미나 취향 면에서 안성맞춤인 책이었다.

간추린 명대사나 인용문 중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귀들을 선물로 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마음과 생각의 전환을 이루고 사람을 끊임없이 꿈꾸게 하는 영화란 매체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이미도의 글은 정감이 느껴졌고 따뜻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영화란 꼭 필요한 존재이며 영화에서 얻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삶 속에서 이어나가는 면면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렇다. 모든 원천은 영화로부터,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런 산문집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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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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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이란 책꽂이에 꽂아둔 채 방치시켜 놓은 책들 중의 하나였다. 간단히 말해서 정말 의미없이 책꽂이 한켠에 놓여 장식의 역할만을 수행했었던 오래오래 묵혀둔 작품이었다. 당연히 읽어보려 두서너 번 시도했었더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강하게 느껴지던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책을 덮고 팽개치고야 말았다. "나만 이런가?" 괴로워하면서. 

토마스 만의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기실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희박하다. 작품을 보기까진 몰랐던 사실,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것도 내겐 새로운 사실이었으니까. 더 말해 무엇하리. '부덴부로크 가'의 4대를 연대순으로 조망하며 한 가문의 탄생, 성장, 발전과 아울러 성공과 실패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끝내 쇠퇴의 길을 체험한 후, 과거의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을 밀도 높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솔직히 말해서 활자를 읽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그동안 독서하면서 이렇게 많은 시간 할애해가며 낑낑거리며 읽어보긴 처음인 것 같다. 아무래도 작품이 씌여졌던 시대와 현재 내가 작품을 마주하고 본 시대의 차이가 작품에 대한 괴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리라. 그러나 전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작품이었다면 감동도 없었겠지만 오늘과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감대가 형성되기에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고비만 넘으면 한결 수월해지는 법이라 힘들었지만 끝끝내 고전의 유익함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시민성과 예술성은 서로 반하는 성질의 것들이라 동일선상에서 팽팽히 대립하는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순전히 신분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또 내면의 자리한 예술성을 따라 살아가기도 힘든 것이 삶의 현실이다. 적절한 선에서 조화롭게 섞기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것이다. 1,2대를 거쳐 3대인 토마스, 크리스찬, 안토니과 맨 마지막 세대인 4대인 하노까지 주변인물들과 촘촘히 엮어낸 이야기 중 일부분은 고루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어 어쩔 수 없이 집중력이 저하된 부분도 있었지만, 토마스 만이란 작가의 초기작으로, 오랜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괜스레 명성을 얻는 고전이란 없으니까.

시민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갈등과 개인적 갈등이 맞물리면서 초래되는 몰락의 길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걸까. 감이 안 잡힌다. 때론 텍스트만 쫓아 읽기에도 급급할 때가 있다. 분명 초반부에는 그랬었다. 생각보다는 덜 어려웠고 재미있게 읽었다. 고전만이 줄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면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의 진지한 재미도 있는 것이니까. 개인적으론 손사래를 치고 질색할 만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역량이 부족해서 작품에 자리한 면면을 제대로 읽어낸 것 같지는 않지만 가치있는 고전을 접하고 막연하게나마 느꼈던 사실만으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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