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니 고향 진안에 내려가 관기씨를 만나고 왔다. 아마 너나 나나 일터지고 제일 멀리 다녀온게 아닌가 싶다. 오지랖 넓은 니 탓에 관기씨도 내 일을 다 알고 있더구나. 니가 중국에서 나올 때마다 내 걱정을 했다고 하니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마음이 많이 무겁구나. 나는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그 마음이 더하다.

많이 울었다.

새벽에 썰렁한 인천공항에서 너를 기다릴 때 전광판으로 북경에서 들어온 비행기의 도착 사인이 나오고 사람들이 나오는 틈에서 나는 정말로 반가운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가 형의 품에 조그마한 상자에 안겨서 들어올 때 조차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와 형의 침통한 표정에도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힘겹게 니 아들 선호를 안고, 텅빈 눈빛으로 걸어 들어오는 제수씨를 보고서도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친구는 어디있나...



친구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아...이게 현실이구나라고 다들 말을 잃었을 것이다. 병원 영안실에 도착해 망자의 이름을 보고 영정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현실이 비현실임을, 설사 현실이라 하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 니 이름을 보고 니 사진을 보고서야 눈물이 나더라. 니도 봐서 알겠지만 니 앞에 엎드려 운 놈들 많았다. 찬홍이가 특히 많이 울었다.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니가 흔적을 그리도 많이 남겼을까 싶다. 관기씨 아내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뜸금없이 니가 보고싶다고 했다더구나. 니가 사온 작퉁지갑은 그날 아침에 고리가 떨어져버렸다고 우리 누나가 그러더라. 내가 니 소식을 받는 날 아침... 사무실에서 내가 얼마나 허둥대고 있었는지 니는 알지 않느냐? 오늘은 조심해야지..조심해야지... 그게 니 소식일 줄이야. 청천벽력 같은 니 소식일 줄이야. 얼마나 가기 싫었으면 내 옆에 그렇게 붙어있었더냐.

몇년 전 같이 지리산 올랐던 기억나나? 연하천 산장 앞 길바닥에서 침랑 하나 깔아두고 은하수 보며 비박할 때 따뜻하게 마시던 그 커피가, 시덥잖은 얘기에 희희덕거리던 너의 얼굴이, 장터목에 끼었던 비구름과 '사는게 죄지요'라는 철 다리의 낙서에 마주보고 웃던. 빈 속의 커피만큼 아린다. 제대하고 공부 좀 해보겠다고 도서관에 있는 너를 불러들인 내가 죄인이다. 현대 입사원서 갖다주고 대신 써 준 내가 죄인이다. 내 기숙사에 너를 집어넣은 내가 죄인이다. 지난날 북경에 갔을 때 너를 흠씬 두들겨 패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사람의 간사함에 놀란다.

너를 보내고, 그 춥던 밤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는 니가 몹시나 춥겠다는 난생 처음으로 느낀 말도 안되는 생각에 담배만 피워댔다. 이 녀석 갔구나... 몇 주가 지나 집에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 바깥 풍경을 보며 불현듯 너에 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울어댄게 불과 몇 주라고 나는 이리도 태평스레 살고있는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 너 역시 바라지 않겠지만, 보낸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만 이해해주라.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 싶었다. 그래서 너에게 빨리 달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이산 쌍봉우리를 보니 감회가 새롭더구나. 앞이 탁 트인 너의 보금자리는 기순씨가 두고 갔다는 시든 꽃다발 탓에 더 추워보였다. 그래... 이렇게 너와 같이 소주 한 잔 기울어야 되는데. 우리가 뭐 별거있나. 이거면 될 것을.

관기씨와 너를 찾아가면서 얘기 많이 했다. 관기씨도 새롭게 일하려하니 힘이든가 보더라. 기순씨도 그렇다니 가까이 있는 니가 자주 봐 주면 좋겠다. 나야 항상 잘 살지 않느냐. 걱정마라. 그리고 니가 가진 것은 다 놓아주어라. 북경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니 가족 사진도 다 버렸다. 다 놓고 멀리 가라.

따뜻한 봄 바람이 불면 친구들 데리고 다시 가마. 추워도 조금만 참아라. 이제 곧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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