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적인 면으로나 인간적인 면으로나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 계신다.
그 분은 늘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청중을 재밌게 하실 줄 아는 분이다.
거기다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의 거물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 겸손해서 누구나 따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서 더 좋아한다.
그러나 딱 한 가지, '책은 읽지 말라. 아무 쓸모없다.'라는 이론은 평소처럼 그 분의 말을 무조건
따르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생 때 3만여권의 책을 읽었다는 그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므로 더.
나를 키운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인생에서 직접 겪은 경험이 7할,
책이나 영화, 미디어 등에서 간접으로 겪은 경험이 3할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말할 때나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해줄 때 자연스럽게 나의 문장을 구성하게 해주는 바탕 중 일부가 책에서 나온다.
물론, 그 분은 무조건 책이 백해무익하다,라는 이론을 내세우시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안다.
그 분이 문제 삼고 염려하는 것은, 바로 책에서 얻은 지식을 여과없이 자신에게 적용하여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는 아마추어들 때문이다. 특히나 경험과 전문교육이 성공과 실패를 크게 좌우
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얄팍한 지식으로 쓴 하수급의 성공
에세이나 자기 계발서 등의 책들을 무분별하게 흡수하는 것을 염려하신 것이리라.
모든 책은 장르 불문하고 참고만 해야지, 그것이 완전히 나를 만들 수는 없다.
책 속의 지식,정보,간접 경험들이 실제 경험과 조화롭게 어울리다가 나만의 주관과 철학, 생활방식을
가지면서 타인의 생각과 이론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옳은 것.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왔기에 그 분은 그렇게 진저리를 치시는 것일까.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그런 충고를 하셨지만 옆에서 듣는 나는
책 먹는 것을 즐겨하는 인종이므로 조금 찔금했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아마추어는 아니에요. 아무리 책을 많이 접해도 늘 하얀 새 도화지처럼
다른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도 있거든요.'라고 마음으로 외쳤다.
혹시나 모든 장르의 책을 다 싸잡아서 '그다지 유익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작은
염려와 서운함이 밀려 왔었지만, 이렇게 정리해서 글로 쓰다보니 답답했던 것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분이 '이것만은 괜찮다'라고 추천해준 카네기의 성공 계발서가 몇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최고라는
것은 나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여러 장르의 책에서 감동과 인생과 철학과 지식과 깨달음을 얻으며
즐거움을 느끼는 나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책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역사, 과학, 지식, 철학, 인생, 의학, 추리, 논리, 상상력, 표현의 다양함, 정보, 건강, 미래와 현재, 세상 등..
그 맛있는 것들을 멀리하라니, 그렇게는 안 되지요.
그것은 마치 생선만 먹고 다른 야채, 고기, 곡식류 등은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어떻게 하나만 먹고 사나요.
물론, 중요한 것은, 여러가지 먹되 어느 것이 진정한 가치와 가르침을 가지고 있는지 판별하는 것과
어떻게 잘 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는 각 자의 능력이다.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돼지가 되어 네 발로 기어다니면서 꿀꿀거리고 진흙탕에서 뒹굴며
'난 돼지고기를 먹었으니까 난 돼지야. 그래서 내가 옳아!'라고 우기는 꼴은 면하지 말자,라는 것이
그 분의 속뜻이라 정리를 내놓는다.
아,이제야 속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