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필라의 아침
퍼디넌드 해롤드 / 일지사 / 1981년 9월
평점 :
절판


  붓다의 생애를 이렇게 시적인 표현으로 기록할 수 있다니...책 자체가 하나의 시같이 느껴진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렇게 시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다니...분명 붓다는 시적인 삶을 산 성자였다. 또한 시적 비유가 주는 삶의 교훈만큼 진리에 근접할 수 있는 매체를 아직 보지 못했다. 저자나 역자나 자신의 마음을 이 책을 써내는데 모아서 오로지 작업만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 빛나고 텅 빈 무아의 작업에서 이 책은 탄생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필라의 아침에 여명이 밝아오고 밝은 아침의 빛이 궁전의 뾰족한 첨탑 위에 비치면서 시작되어 온누리를 밝히는 햇살로 바뀌듯 진리의 햇살도 온 세상 온누리에 비친다.

  붓다의 생애를 다룬 이 책은 세 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붓다의 탄생과 구도의 과정,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지혜를 사람들에게 전해 세상을 구원하는 과정, 그리고 붓다의 가르침을 왜곡하고 기만하는 배신자들과 그들을 대하는 붓다의 넓은 마음, 그리고 다시 깨우침과 진리의 길로 접어드는 과정이다. 마치 손을 뗄 수 없는 한 편의 영화처럼 책 속으로 푹 몰입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밤들이 책을 덮고 난 후에는 마치 한 편의 영화같다. 정말 꿈같다. 어젯밤 두 아들의 울음과 재촉 속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지치고 노곤했던 시간도 아침여명이 밝아오니 모두가 지나버린 한바탕 꿈일 뿐이다.

  모든 이야기의 비유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실적인 비유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내어야 되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보면 역사적이고 실제적인 부처님의 생애보다도 더 정확한 부처님의 생애가 될 것이다. 삶은 늘 우리들에게 환영과 꿈처럼 나타났다 스러져간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인생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진짜 현실이다. 따라서 비록 짧고 문학적인 형식을 띄었지만 이 책만큼 부처님의 생애를 잘 보여준 것도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붓다가 열반에 들기 전의 마지막 여행에서 만난 소지기 다니야와의 대화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보고 반해버린 말이었다.

다니야는 노래했다.

이 몸은 쇠젖을 짜고 있네.

식탁에는 맛있는 식사가 기다리네.

나는 강가에서 아내와 자식과 더불어 즐겁게 지내지.

우리 집은 지붕이 튼튼해.

기둥도 튼튼해.

아궁이에서는 따뜻한 불이 타고 있지.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소지기 다니야의 노래에 붓다는 또 다른 노래로 대답했다.

 

이름은 분노를 벗어 버렸네.

어리석음을 벗어 버렸네.

나는 강가에서 하룻밤을 지내지.

우리 집은 지붕도 없고 기둥도 없다.

욕망의 불은 모두 꺼져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붓다와 소지기는 계속 노래를 주고 받았다.

 

쇠파리는 가축들을 귀찮게 하지 않네.

소들은 푸른 풀밭에서 맛있게 풀을 뜯고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튼튼한 뗏목을 짰다.

해탈을 구하기 위해 저어간다.

욕망의 세찬 물결을 건넌다.

마침내 해탈의 언덕에 닿는다.

더는 뗏목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이 몸의 아내는 착하고 순결하고 진실하다

나는 아내와 수십년을 살아왔다.

그녀는 친절하고 유쾌해서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이 마음은 자비롭고 진실하다.

나는 이 마음을 수십년간 닦아 왔다.

이 마음은 친절하고 행복해서 모든 이를 가르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노예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다.

노예들에게 삵을 지급한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나는 노예가 아니다.

노예도 갖지 않는다.

이 마음이 나의 주인이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우리는 소가 있고 송아지도 있다.

소를 지키는 개도 있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내게는 소도 없고 송아지도 없다.

지키는 개도 없다.

그러니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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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4-23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니야와의 대화는 숫타니파타에서 봤습니다. 저도 인상깊게 봤어요. 내리고 싶으면 내리려무나, 하늘의 비여! 하고 따라 말하고 싶었지요.

달팽이 2006-04-2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셨군요.
대화 후에 다니야가 붓다의 발치에 몸을 던졌던 이유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