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켄 윌버 지음, 김재성.조옥경 옮김 / 한언출판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떠오른 영상들이 있다. 내가 대학 시절 암을 앓았던 한 소녀의 눈빛이었다. 그 때 내가 학술동아리서 공부를 하고 있을때 그녀는 도시의 빈민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새내기 대학생이었다. 그녀와는 농촌활동을 계기로 알게 되었는데, 뭔가 삶의 우수속에 젖어있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 유난히 보기 힘든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알고서 서로 만나면 인사를 나눌 정도였으나, 서로 갈 길이 달라 그 후론 오랫동안 보지 못했고, 이렇게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가까운 친구에게서 너 그 애 알지? 걔 암으로 죽었대, 20대의 젊은 나이로...하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그녀가 비록 20대의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이 삶에서 얻을 것을 모두 얻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녀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주었을 그 사람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또 하나의 영상이 있다. 내가 어느 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어렴풋한 단잠에 빠졌을 때 나는 넓은 바다 위에 빛의 알갱이들로 보이는 무수한 물별들이 한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영상을 보았다. 그것을 지켜보는 나의 시선이 뚜렷했으므로 그것이 꿈이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다만 그것은 내 의식을 한없이 고양시켰고 의식의 바다 위에 떠오른 일종의 영상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본다. 시골의 어느 한적한 산 아래에서 또는 도시의 어느 산 위에서 별들을 쳐다보다가는 생각한다. 저 무수한 빛나는 별들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떠오르는 영혼의 빛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우리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 별은 사실 수천년 수만년 아니 수억년 전에 이미 폭발해버리거나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별이다.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별의 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우리들 마음 속의 빛이 아니랴.

  트레야의 죽음의 과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가 무엇인지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이 우리를 어느 곳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캔과 트레야의 첫 눈에 상대방의 영혼을 알아보는 직관적인 만남 뒤에 그들의 만남이 지향할 곳 또한 분명했음을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죽음을 초월한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사랑이 당신을 산산조각내지 않았다면 당신은 진정으로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트레야는 자신의 생명의 빛, 영혼의 빛을 통해 캔이 자아을 버리고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은 그렇게 나와 타인의 구별을 사라지게 만든다. 트레야의 마지막 말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를 찾아낼 거죠?", "약속하죠?"

  단 한번의 포옹만으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과 동시에 찾아온 죽음의 그림자, 그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두 사람의 사랑은 읽는 내내 내 마음을 울렸다. 중간중간에 들어간 캔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설명이 책을 좀 지루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서 트레야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사랑의 빛으로 세상을 사랑하면서 사랑 그 자체로 녹아들어간 부분은 너무 감동적이다. 죽음을 이렇게 성숙하게 맞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란 겉모습으로 보이는 죽음을 넘어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니다. 죽음의 과정을 인생의 마지막 영적 성숙의 기회로 선택하여 그것을 통해 진리로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용기이다. 트레야의 마지막 삶이 나에게 주는 감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 보다 큰 사랑으로 죽음을 초월하는 진리와 생명의 빛인 것이다.

  그녀는 떠나지 않았다. 우리의 진정한 영적 스승은 떠나지 않는다.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으로, 이른 아침 교정에 들어서서 차에서 내릴 때 온갖 소리로 나의 의식을 깨우는 새소리들로, 우주의 기운이 생동하는 봄에 생명을 불어넣어 찬란하게 피어나는 꽃으로, 가지와 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봄바람으로, 장엄하게 떨어지는 태양과 빨갛게 물들어가는 강과 산으로 나에게 살아 있다. 진정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생명의 빛 한가운데 심어놓은 씨앗과 같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빛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고 시작도 끝도 없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게 할 것이다. 그것이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넘어서 인생의 바른 길과 생명의 빈들에 사람들을 세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빈들에서 새들은 운다. 그 생명의 빈들에서 해가 뜨고 진다. 그리고 그 생명의 빈들에서 우리들이 나고 죽는다. 거짓된 사랑은 죽고 참된 사랑의 싹이 튼다. 모처럼 사랑의 마음으로 가슴이 설레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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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26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진실한 사랑은 존재하나요?
1백원짜리 불량식품을 먹는 것처럼
여전히 사랑에 의심을 품고 삽니다.

혜덕화 2006-03-26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화로운 삶의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이 떠오르네요.
다음 생에 다시 찾고 싶은 사람으로 지금 이 생을 사는 것, 그게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일것 같아요. _()_

달팽이 2006-03-2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에서 넘길 수도 뱉어낼 수도 없는 그런 사랑
그래서 늘 품고 사는 사랑
그 사랑에 세상이 녹아내리는 사랑
그런 사랑이라면....
좋겠군요...여우님..

트레야가 나를 찾을 거지? 하고 물은 것은 개체성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무렵 그녀가 깨달은 참다운 자기의 본성을 찾아줄꺼지?
라고 하였던 것이라고 캔은 말하고 있습니다.
스콧 니어링이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다면
그의 삶이 더욱 빛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혜덕화 2006-03-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체로서의 나는 지금 이 생, 이 몸이 다하면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자기 자신의 본성을 자신 조차도 모른다면, 다른 어떤이가 날 찾기 전에 나부터 나를 먼저 찾아보아야겠죠. 트레야는 행복한 사람이군요. 죽기 전에 자신을 찾았으니, 책을 안읽어봐서 내용을 잘 모르겠지만......_()_

달팽이 2006-03-27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성철 스님의 불기자심, 다시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