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중용 - 인문학연구소 고전총서, 동양사상 1
김학주 옮김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던 중 불교TV에서 종범스님의 설법을 듣게 되었다. 스님의 말씀 중에 반조라는 말이 가슴속으로 쏙 들어왔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볼 때 마음이 외부에 가서 달라붙지 않고 자신의 마음 속에서 받아들이는 바를 지켜본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러한 감정과 생각이 생기고 사라지는 그 자리를 지켜보라는 말로써 받아들였다. 두번째로 들게 되는 대학과 중용은 나에게 반조하는 공부를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학자이기 때문에 마음의 경계로서 써내려간 글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듯하였지만 그래도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해석을 충실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읽어내는 데 큰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음에 다시 대학을 읽을 때에는 마음공부가 된 사람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이미 격물치지가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 성의와 지선이 무엇인지를 마음으로 점검한 이가 적어낸 글이기 때문에 단순히 학문적으로만 풀어서는 그 의미를 마음으로 담아내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죽은 글이 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격물치지인가? 치지격물인가? 이를 놓고 주자학과 양명학의 논쟁이 떠오른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사물의 본성에 다를 것인가? 치지하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천지의 본성을 깨달아서 격물하는 것인가? 우선 마음으로는 후자에 더욱 끌린다. 그것은 수신하는 방법으로서 우선 나의 내면을 성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격물치지와 함께 대학을 대표하는 말을 고르라면 나는 '혈구지도'를 고르겠다. 이는 논어의 종심소욕불유구의 구를 가지는 것이 되고, 중용에서는 충서의 정신으로 나타난다.

   忠은 마음의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흔들림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중심을 도의 한가운데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恕는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격물하는 대상과 같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마음 속의 곱자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불성과 같은 것이라고 보여진다.

  대학이 수신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먼저 읽어야 하는 방법론에 관한 책이라면 중용은 공부를 마친 사람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내용을 한 권에 묶어 둔 것이 어색하기조차하다. 하지만 마음으로 점검하는 공부에 시작과 끝이 어디있는가? 대학이든 중용이든 그것이 가리키는 진리는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중용의 첫구절부터 마음이 환해진다. 천명이 제일 첫부분에 나온다. 자신을 비운 상태에서 떠오르는 마음이 바로 천명이 아니겠는가? 정성이 하늘의 덕이면 그것을 따라 정성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덕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따르는 것이 도라고 했다. 이 도는 멀리 있지 않으니 바로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이라면 지성을 다하는 곳에 마음이 자리잡아야 하며 그러할 때 만물을 화육하게 한다.

  중용에서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말이 있었다.  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 그대가 방에 있는 것을 보건대, 방구석에 대하여서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고 했다. 군자는 사람들이 보나 보지 않으나 그 마음가짐을 지성에 닿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우리가 이르는 곳이 어딘지는 명백하다. 이런 공부가 세상에 나아갈 때에라야 비로소 다툼과 논란이 없을 것이다. 공부를 마치지 않고 세상에 나아가서 오히려 세상을 혼란되게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큰 공부는 비로소 치우침이 없는 삶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삶의 완성이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야할 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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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6-03-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문으로 읽으면 씹으면 씹을수록 맛나는 음식처럼 더디더디 맛나게 다가옵니다. 저는 다양한 역주를 읽어본 게 없습니다. 그나마 읽은 것 중 하나가 감산 스님의 "중용"입니다. 감산 스님을 따라 중용을 읽으면 이렇게 읽으면 참 재미있구나, 허튼 말 없이 연관되어 쓰여져 있구나 싶습니다. 선지식이나 서적이 어떤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내 하는 모양이 어떤지 살필 때 생활이 스승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기자심이라고 가만히 보면 저 자신을 속일 수는 없더군요. 세상을 다 속여도 제 자신, 제 자신의 생활을 속일 수는 없더라구요.

달팽이 2006-03-01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불기자심...성철스님 책 사니까 끼워져있던 붓글씨가 생각나네요.
저는 불기자심을 나의 본성을 속이지 않는다고 풀이하고 싶었습니다.
고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몸마음에 착 달라붙는 맛이 있어
공부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 같습니다.
감산 스님의 중용도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