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런거리는 뒤란 창비시선 196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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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운 과거의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자신의 주관으로 받아들이고 재생산해나가는, 새롭게 창조된 기억이다.

자신의 마음이 그리는대로 기억도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변해간다.

문태준 시인은 나와는 같은 또래의 나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려내는 농촌 풍경들은 유년시절 내가 잠시 머물렀던 농촌에 대한 기억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가 더욱 깊은 농촌에서 자신의 기억 속에 더욱 깊이 새겨놓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탓일게다.

그는 현대의 도시적인 삶의 원심력에 묻혀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에서,

푸근했던 흙냄새가 나고 어머니의 포근했던 가슴같았던 농촌을 떠올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현실에서 본 농촌은 그 포근함과 그리움마저 파헤쳐진 폐허로 변해버린 농촌이다.

APEC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던 부산에서 반 아펙운동이 외쳐대는 함성 소리 사이로 쓰러져가는 농촌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폐허같고 빈집같은, 그래서 이제는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하는 그 농촌이 시인에게는 몸이 갈 수 없지만 마음은 자꾸만 끌려가는 중력같은 공간인 것이다.

때로는 그 중력이 봉산댁의 젖같이 관능적이기도 하고 선무당의 춤처럼 샤머니즘적이기도 하다.

"물길 아래

돌들은 팔을 괴고 앉아 복화술로 말을 걸고 있네"

겉보기엔 정지된 세계,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참다운 신비

자꾸만 빨라져가는 원심력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삶이 느림의 중력공간으로 들어가다가

어느듯 그 삶이 멈추어버린 무중력 공간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게 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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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1-2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폐허, 빈집...
우리가 도시에 많이 산다고, 농촌을, 우리의 근원이었던 젖줄을 빈집으로 만든다면,
과연 원심력이 우리를 날려보낼 거기는 어디인지요...

달팽이 2005-11-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몸은 뻘밭에 뒹굴러도
마음은 늘 중력으로 향해야 하고 나아가 무중력 공간으로 향해
그 빈 곳에서 자신을 보아야 할 일인가 봅니다.

파란여우 2005-11-22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들은 복화술로 말하고
말많은 파란여우는 주둥이로 떠들다 잠이 들테죠
아, 궁금한 책입니다.

달팽이 2005-11-2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에 고이 묻어 둔
입으로 나오지 못한
입으로 나올수 없는
그런 말
말 아닌 말
하나 간직하고
고이 잠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