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아들을 위하여

젊은 어머니가 부엌칼로

닭의 목을 힘껏 내리쳤습니다

낮달이 놀라 말없이 소리치고

꽃은 더욱 붉은데

모가지가 없는 닭이

온 마당을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저도 지금 그 닭처럼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여전히 햇살은 눈부시고

꽃은 붉은데

이제 곧 그 닭처럼

제풀에 꺾여 픽 쓰러지겠지요

멀리 떨어져나간 모가지를 향하여

길게 다리를 쭉 뻗은 채

 

                                     - 정호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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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5-10-2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기형도, "가는 비 온다" 중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꽃이 있듯이, 꽃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듯이 저 닭도 무언가 되고 싶겠지요. 무언가 되어지겠지요.

달팽이 2005-10-29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같은 선혈을 흘리며
꽃같은 비를 맞으며
쿨럭거리는 목의 침을 삼켜가며
가야 하는 인생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