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27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겐 일생의 꿈이자 반드시 거쳐가야 할 인생의 필요조건들이 그에겐 그저 거추장스러운 여행의 짊이었을 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과 집, 그리고 배우자와 자식,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에게는 한번도 눈길주지 않은 자기 밖 세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닥쳐버린 어머니의 죽음과 가족의 파괴, 실명이라는 사건은 그에게서 세상에서 움켜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결핍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언제 다시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책을 들게 하였다. 눈이 보일때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을 봐두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가진 것으로부터의 자유의 욕망은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였고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생의 가치를 찾게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어떤 흔적으로도 남기지 않게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 하루를 새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삶은 어떤 의미나 가치도 없다. 하지만 그 꿈이 허황된 상상력이 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현실로 만들어 갈 힘이 되는 것인지의 여부는 '용기'에 달려 있다. 꿈과 이상으로 부풀었던 가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고 두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꿈이 그저 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기력한 발걸음으로 현실로 되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용기있는 자들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결국은 우리 마음에서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이 된다. 무기력함은 무기력한 현실을 만들어내고 용기는 활기차고 자신있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인생의 모든 길 위에는 철학이 있다. 삶의 의미가 있다. 그것이 어떤 길인지는 묻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을 가는 우리들의 마음을 물을 뿐이다. 호퍼가 걸었던 길 위에서 놓여진 삶의 의미와 깨달음은 내가 걷는 길 위에도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길을 걷는 나의 마음일 뿐이다. 삶은 늘 새롭다. 과거에 의존하지 않는 마음은 현재를 온전하게 느끼게 하고 그 때 하루는 새로운 날들이다. 신비함과 경이로움으로 채워진 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가을 하늘 위에 산이 나타난다. 강이 나타난다. 도시가 있고 사람들의 삶이 펼쳐진다. 수많은 사람 그 하나하나의 삶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각 각 제 갈길을 간다. 그 길에서 우리는 옆 사람의 인생을 가타부타하지 않는다. 오직 내 인생만을 문제삼을 뿐이다.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비바람과 천둥이 치고 있을지 몰라도 나는 오직 내 삶의 비바람과 천둥만을 맞을 뿐이다. 내 하루의 투명한 하늘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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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9-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말고 다른 호퍼 자서전을 읽었거든요.(구판)
행동하는 멋진 철학자라는 판단을 내렸답니다.

달팽이 2005-09-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동감입니다. 물론 삶의 마지막 부분은 좀 더 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