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은 그렇게 왔다
얼음 녹는 개울의 바위틈으로
어린 물고기가 재빠르게 파고들 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눈을 투명하게 한다.
발가벗은 햇빛이 발가벗은
물에 달라붙듯이
수양버드나무의 그늘이 차양처럼
물을 어둡게 한다.
할 말 없는 수초가 말
잃은 채 뒤엉키듯이
가라앉아도 가라앉아도
사랑은 바닥이 없다.
2
사랑은 그렇게 갔다.
미처 못다 읽은
책장을 넘겨버리듯이
사랑은 그렇게 갔다..
말하려고 입 벌리면
더러운 못물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날아가며 남겨둔 여린
가지가 자지러지며 출렁이듯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꽃들은 예쁘게 피어났다.
이미 범람해버린 강물이
지루하게 제 수위를 회복해가듯이
사랑이 어루만진 부위에
홍수가 휩쓸고 간 잔해가 남았다.
3
기포가 떠오르고
말할 수가 없다.
- 채호기 '수련'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