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 읽기의 즐거움
김풍기 지음 / 아침이슬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팍팍한 인생살이를 살아가건 여유롭고 넉넉한 인생살이를 살아가건 우리는 인생의 희비애락의 감정곡선을 타고 세월의 선율을 탄다. 그러다가 때로는 가슴 속에서 울리는 감정들을 언어로서 표현하는 때가 있다. 때로는 감정의 생멸에서 그것이 끝나는 때도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삶과 인생을 조명해주기도 하고 그 의미를 담아내기도 한다. 나아가서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언뜻 내비칠 때가 있다. 비록 시간적으로는 짧은 순간이지만 그 잊지 못할 짧은 경험이 때로는 삶의 모습을 뒤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우선 현대인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할 뿐더러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사는 사람이 드물다. 늘 자신의 속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 부끄러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아상과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아가 세상의 많은 것들과 단절되어 사는 우리들의 또 다른 모습은 그런 것을 격물해도 자신의 가슴에서 느끼는 감정을 스스로가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주어진 외적 조건에만 맞추어 살다보니 자신의 내면적인 소리와 느낌에 귀기울이는 감각 자체를 상실한 탓이다.

  우리 옛 조상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알았고, 때로는 그것을 미적 감각으로 되살려내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람의 심성을 건드려서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아니 그들 스스로의 감정을 갖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보다는 절제하거나 우회적인 표현 방법을 빌어서 표현하는 데에도 아주 능수능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우리 옛 글을 읽을 때에는 단지 글자를 따라 읽기만 한다면 지은이의 마음을 놓치기가 쉽다. 행간의 의미를 깨우치려면 그 마음을 쫓아야만 알 수 있는 언어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선율을 타지 못한다면 옛 시를 읽지 못한 것이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의 가슴에 와 닿은 것은 이러한 인생살이의 희비애락을 겪으면서 갖게 되는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력이 가져오는 인간 존재의 깊은 깨달음에 관한 절창의 시들이다. 이 시들이야말로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인생을 고도로 농축되고 집약된 언어로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로 옛 스님들의 선시라고 할 수 있는 이 글들은 사물과 자신과의 경계, 자연과 자신과의 경계, 자아와 참나와의 경계를 어느 순간 훌쩍 넘어서서 경계없는 존재의 진실에 대한 체험을 글을 빌어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그 글들만으로 그 마음의 경계를 짐작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쫓으면서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다.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

  삶은 언제나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글들없이 나는 언제쯤 내 삶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아직은 글들이 내겐 필요한가 보다. 글을 통해서 나는 보다 고양되고 보다 마음을 바로세우게 되고, 보다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글을 떠나려면 우선 글에 대해 자유자재하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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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7-06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검색했는데, 목차를 보니 너무 좋아요. 보관함에...덕분에 고맙습니다.

달팽이 2005-07-0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여우님 덕분에 요즘 새로운 책도움을 많이 받고 있답니다.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