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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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6-1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황지우........
제가 가장 아끼는 시집<게 눈속의 연꽃>에 수록된 시입니다.
마음이 허허로운 날, 이 시집을 펼칩니다.

달팽이 2005-06-1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젊은 날에 이런 경험 가끔 생각나요...
눈이 펑펑 내리는 교정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에
신은 다 젖고 발을 얼었는데...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않고 날 저무는 교정 뒷산너머로 황혼은 흩어지고...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