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맨드라미, 나팔꽃, 봉숭아 같은 것
철마다 피곤
소리없이 져 버렸다.
차운 한겨울에도
외롭게 햇살은
청석 섬돌 위에서
낮잠을 졸다 갔다.
할 일 없이 세월은 흘러만 가고
꿈결같이 사람들은
살다 죽었다.
부재
너는 없다
너 없으니 나도 없다
마음에 묻은 너와의 사랑
마음에 햇살처럼 남아
나의 손잔등을 간지런다
그런데 너는 없다
이별이란 너없이 살아가는 세월
내가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너를 바라보는 촛점없는 나의 시선
허공 속에 너를 묻는다
먼지가 문틈에서 잠시 빛나도
나는 너를 지울 수 없다
너를 생각하는 나를 지울 수 없다
이 늦봄 꽃잎처럼 날리어 가버린
바람 속의 너는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