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할 수 없는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에 있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에 있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거죽엔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오 누구인지 잘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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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05-09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시인데, 고딩들에겐 어려운 시이지요.
이 시와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가 문제로 나오면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까요?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

달팽이 2005-05-09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선생님...아직 아이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은 듯 하군요...

어둔이 2005-05-09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브이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티브이는 아무도 손댈 수 없다
티브이는 채널을 돌려도 이대로의 티브이다
드라마도 오락프로도 모두 티브이다
내가 보는 티브이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티브이의 여러 채널을 돌릴 수도 있다
싫증이 나는 그런 티브이 채널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는
티브이의 고정 채널을 두고 볼 수도 있다
마땅히 그런 티브이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티브이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티브이는 이미 티브이가 아니다
내가 보는 티브이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멍한 상태에 있다
티브이는 아랑곳없이 웃고 떠든다
시간이 허느적
늘어진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다.

그러나 전기가 나간 다음 순간,
티브이의 반들한 유리표면 위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내가 보는 티브이가 나를 보고 있다
오 그가 누구인지 잘은 몰라도


달팽이 2005-05-09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는 누구인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