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로 향하는 길의 변화는 내 인생의 변화와 함께 했다.

초등학교 때 지팡이를 짚고 아직 세월의 때가 많이 끼지 않았던 아버지와 함께 동행할 때에는 솟아오른 논둑길을 따라 유채꽃이며 제비꽃, 쑥이며 고들빼기 등 온갖 야생초가 어우러진 동화같은 길이 아니었던가?

옆으로는 호수로 이어지는 물줄기가 갈수록 폭과 깊이를 더해가며 우리를 따라 오고 있었고,

냇가에는 바지를 걷어붙이고 고기를 잡는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곤 하였는데... 

이제 그 길은 사라지고 없다.

아래길에는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길을 넓혀 놓은 곳에 오늘은 또 아스팔트가 깔리고 있었다.

오른쪽에 호수와 왼쪽에는 넓게 펼쳐진 논을 두고 예쁘고 길다랗게 펼쳐진 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고향에 대한 꿈을 얼마나 꾸었던가?

어릴 때 육촌 또래를 따라 소풀을 먹이러 왔다가 노을이 지는 둑길을 따라 흙투성이 모습을 하고서 집으로 향하던 풍경은 또 얼마나 또렷했던가?

할머니가 시내에서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빈집에 홀로 남아 산짐승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옷장 속에서 나는 또 얼마나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던가?

내 어깨만큼 자라고 있던 소나무들이 어느덧 돌을 던져야만 다다를 수 있는 높이로 자랐고, 손을 뻗어 잎을 따곤 했던 그 나무는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성장을 멈추어버렸는데....

내 손을 이끌고 장에 다니시던 할머니는 여기에 누워 있고, 나를 닮은 아들녀석이 이제 갸우뚱 갸우뚱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데...

아 아! 인생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 눈앞에서 철봉에 매달리던 아버지는 냉면에 든 고기가 질기다고 꺼내어 놓으시고...

담 옆에 키크게 자란 감나무에 올라갔던 소년은 이제 쓸쓸한 눈길로 썩어가는 고목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인생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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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없이 살고 싶습니다.
파란 하늘처럼, 구름처럼, 마당가 은행나무처럼.......

달팽이 2005-05-01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요? 그리고 무엇이 삶의 참된 의미인지 알고도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