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
정민.박동욱 엮음 / 김영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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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조선시대의 이름만 들어보면 알만한 사람들의 자식에게 보낸 편지다. 추상같고 대나무같고 서리발같았던 기상을 갖춘 그들의 사적인 면모와 사생활에서의 꿋꿋한 모습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흔들리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화나 서운한 감정을 터트리는 면들을 볼 수 있다. 손주를 보고싶어하고 출산에 기뻐하고 조바심을 내는 할아버지의 감정과 아내의 병수완을 직접 챙기며 부부간의 정을 확인하는 부분이라든가 자식에 대해 몸이 아프고 힘이 드는 상황을 토로하는 글에서는 그들도 인간적인 모든 감정들을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그것을 극복하는 또 다른 마음의 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친근한 느낌들이 생긴다.

 

  그러나 조선시대 선비의 본분은 글읽기와 시 문장을 짓는 일이었고 나아가 과거에 응시하여 자신의 공부를 점검하고 매듭짓는 기회로 삼는 것이었다. 연암처럼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과거장을 뛰쳐나오고 그림만 끄적이다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는 과거에 대한 응시를 권유하는 장면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과거란 어떤 의미였을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더 나아가 박세당은 자식들이 이른 나이에 과거에 합격하자 공부가 과거공부에 얽매이지 말고 더 큰 공부로 나아갈 것을 엄히 가르친다. 글을 여러번 읽고 외워 자신의 몸에 붙이고 생활화시켜서 이른바 자신의 삶이 되어야 비로소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선현의 가르침은 그들은 제대로 배웠던 것이다. 오늘날 전문적인 지식으로 나뉘어져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정밀한 분석력을 갖고 있지만 삶 전체에 대한 통찰에서는 무지한 오늘날의 공부가 되돌아봐진다.

 

  자식에게는 늘 엄한 모습만을 보였던 선비의 꿋꿋한 모습에서도 가끔은 못 다 풀어낸 따스함과 배려심이 묻어난다. 연암 선생은 그의 열하일기나 허생전 등 문집에서 보인 호호탕탕한 면들과 달리 자식을 위해 고추장을 직접 담그며 아이들의 안부를 묻고 또는 자신의 노동이 들어간 고추장 맛이 어떤지 잘 먹고있는지 채근할 때에는 알뜰한 부자의 정과 더불어 조바심내는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친근하다. 국가에 나아가서는 사를 버리고 공을 위해 마음을 칼처럼 세웠다면 가정으로 돌아온 공간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따뜻함은 그들이 가진 이중성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인 선비로서의 훌륭함과 사적 공간에서의 평범함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자식들에게 어떤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문득 나는 어떤 말로 어떤 내용으로 자식들에게 권면하는 충고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묻게 된다. 봄이 지나가고 계절이 지나가는 자리에 서서 공부가 중요한 것은 예전의 선비나 나나 다름없지만 엄숙하고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살뜰한 정을 나누는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 어떻게 되살려내어야 할 것인지 오늘날을 사는 내게 하나의 고민거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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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13-05-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식에게 존경받는 아버지자리가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죠?
부인에게 존경받는 남편도 마찬가지구요. ^^
달팽이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달팽이 2013-05-29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안부 여쭙니다. 바람돌이님.
무탈히 잘 지냅니다.
가끔 들리는지라 때맞춰
답글 드리지 못함을 이해하세요.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