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카잔차키스, 그는 영적 스승(구루)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한 사람 선택해야 했다면 틀림없이 조르바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굶주린 영혼을 채우는 수단으로 늘 책만 파고들었던 그에게, 세월을 책 속에서 묻혀지내며 깨달은 진리들을, 조르바란 인물은 자신의 몸으로 삶 속에 직접 맞부딪히며 온전히 그 삶을 기어다니면서 체험에서 우러난 직설적 행동과 언어로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일할 때는 말 걸지마슈! 뚝 부러질 것 같으니까."

"나는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가 잔뜩 긴장하여 이게 돌이 되고 석탄이 되고 산투리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두목이 갑자기 내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돌아봐야죠? 그럼 꼭 부러져 버릴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그는 어떤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에 몰입한다. 과거의 생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너머 정신적인 성스러움으로 들어가는 메토이소스(거룩하게 되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행동이 산투리를 연주하거나 춤을 출 때이다. 이 산투리를 연주하는 것과 춤을 추는 것은 그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것에 대한 강렬한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행위는 조르바의 메토이소스의 두 날개가 된다.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충고한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고 직관에 의해 행동하라고.... 여자를 보면 가슴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라고....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쾌락만은 아니다. 자신의 육체가 이끄는 행위를 통해 정신적 승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확대경으로 보면 물 속에 벌레가 우굴우굴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거요, 아니면 확대경을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삶과 우주를 대하면서 늘 생각이 앞서고 앞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과연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솔직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어떤 행동을 통해서든지 그는 인간이 가진 한계를 뛰어 넘어 성화를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삶을 살아가며 그 곳에서는 이미 희망도 정복되고 따라서 절망도 정복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비로소 두목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그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한 판의 춤으로 승화시켜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실세계를 외면하고 정신적 신성함만을 쫓아서 사는 수행자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마음 속에 정복되지 못하고 회피하려고만 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정복한 인물로서 조르바는 그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 깊은 깨달음을 가져다 주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인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조르바 안의 조르바, 우리들 모두는 조르바이다. 우리의 몸과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우리의 경험을 그대들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메토이소스, 성화(聖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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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9-08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입니다. 10년에 한 번씩 읽기로 하고 20살에 한번 30살에 한번 읽었습니다. 앞으로 5번은 더 읽어야지...(오래 오래 잘 살겠다는 이야기죠)^^
잘 봤습니다.

달팽이 2004-09-0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보니...저도 언젠가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 소설에 대한 공감...문체도 아주 매력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