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한 일이다. 내가 가진 몸의 능력은 나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마음내는 것은 우주까지도 포용할 수있으니 말이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진리에 대한 물음은 내 마음 속에서 무수한 천지개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몸이 살아가면서 겪는 경험 하나 하나 사이로 난 보이지 않는 문을 통해 미지로 향하는 길은 놓여져 있다. 마음의 비밀을 풀어내야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문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진리의 땅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현실의 한계인 강을 건너야 한다. 그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방편과 도구가 있어야 한다. '뗏목'을 그 방편으로 삼았다면 이제 깃을 올리고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 한데 물살은 급하고 뗏목은 늘 그 물살에 휩쓸린다. 뗏목은 언어이다. 언어화할 수 없는 진리의 체험을 언어화시키는 것은 하나의 방편이다. 그 방편은 파격이어야 한다. 아니 파격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아니하고 어찌 언어가 가지는 의미의 한계를 넘어 저 곳으로 다다를 수 있겠는가?

금강경의 말씀은 그래서 파격이다. 그 파격적인 말 중 가장 검증되고 교과서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바이기 때문이다. 그 설하신 말씀에는 부처님의 마음의 가장 깊은 정수가 담겨져 있다. 이해하려고 하면 즉시 물살에 휩쓸리고 만다. 부처님의 그 마음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폭풍과도 같은 물살을 피해갈 곳은 없다. 천지를 뒤흔드는 폭풍의 한가운데.... 그 부처님의 마음 한가운데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길은 없다.

금강경이 사족을 달았다. 부처님의 마음, 진리의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경이 나왔다면 이 경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또 주석서가 나왔으니 말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언어적 기교에 빠져버린다면 헤어날 곳이 없다. 그럼에도 장님인 우리는 방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장님인데다가 신랄한 입을 가진 도올 선생의 손을 잡았으니...이젠 정신을 바짝 차릴지어다...잘못하다간 맞아죽을 지도 모르니까...ㅎㅎㅎ

금강경 앞에서도 당당하고 때에 따라서는 오만하기까지 한 도올 선생이 때로는 존경스럽다가도 마음한구석이 편치않은 것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生其心)하는 마음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음인데, 이것은 도올선생의 마음인가 내 마음인가? 아무래도 경을 해설함은 시원한 마음보다 경건한 마음이 더 낫다는 생각이다.

금강경을 읽는 데 가장 바른 자세는 2500여년 전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 부처님을 앞에 두고 부처님법을 듣는 마음으로 읽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금강경을 해설하는 것도 바로 부처님이 계신 그 자리의 마음자리를 될 수 있는 한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부처님의 마음과 공명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책을 펼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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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8-0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일상의 분노가 쌓이거나 욕심으로 머리가 산만해질 때는 불경을 꺼내 봅니다.그저 아무데나 펼쳐서 몇 구절 씩 천천히 읽다보면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문제를 다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김용옥의 금강경은 아직 보지 못했는데 조만간 읽어야겠네요.

달팽이 2004-08-03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사실 저도 금강경을 읽는 마음의 눈을 아직 갖추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를 방향삼아 맞추다보면 삶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생기고 그 눈으로 인하여 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유와 지혜가 생기는 것 같아서 편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