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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무위당 선생님이 투병할 때 이현주 목사님과 "노자의 도덕경"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어 "노자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삶의 커다란 감동을 마음 속에 간직하게 되었다. 이후 장일순 선생님의 책을 찾아보았고 그래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고 하는 녹색평론에 실었던 글모음집을 구할 수 있었다. 무위당 선생님은 유,불,선 등의 다양한 종교적 입장을 아우르면서 그것이 지향하는 같은 하나를 자신의 사상에서 찾아내었고, 이를 삶 속에서 체화시켜 낸 분이다. 김지하 시인의 소개글이 무위당 선생님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하는 일 없이 안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 포기 산 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선생님의 사상은 해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동학사상이 단순한 사회운동이 아니라 서학에 맞서는 하나의 사상으로서 나오게 된 것을 재조명하고 재연구되게 된 것도 그의 영향이 컸다. 선생님이 부인을 비롯하여 모든 여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도 해월의 사상의 영향이 있었다고 보여진다. 나아가 선생님은 사람사는 도리에 대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좋은 귀감이 된다. 한 종교를 선택하여 한 교인으로서 깊은 정신적 경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많지만, 선생님처럼 자신의 한 명의 교인으로서 별로 드러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면서 사랑을 남김없이 베풀며 민중들 속에서 하나의 좁쌀같은 존재이고자 했던 특별한 친근함이 있다.
좁쌀 한 알이라는 이 책을 통하여 궁금했던 선생님의 삶과 사상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기쁘다. 호를 일속자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내면으로는 더욱 깊이 자신의 삶과 정신에 몰두했으며 그러면서도 밖으로는 자신을 가장 낮추어 밑바닥 사람들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그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성인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친 '난'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이미 인생에 대해 달관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이 베어 있다. '글'도 선생님은 고구마를 팔기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써놓은 글씨에 비할 바가 못된다고 하지만, 이미 선생님의 글에선 그 절절한 마음이 은은히 퍼져나오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