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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숲에서 나오다 - 천성산 도룡뇽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
지율 스님 지음 / 도서출판 숲 / 2004년 3월
평점 :
절판
이름만 들어도 한없이 슬프고 애절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발과 속도라는 명분하에 파헤쳐지는 산등성이와 숲을 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얼굴 하나 있습니다. 천성산과 그 산이 품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의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개발과 속도라는 명분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자본의 횡포에 여린 한 수행자의 몸으로 오롯하게 맞서 싸우는 영성과 환경의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천성산의 수많은 동식물과 생명체 그리고 그 생명에 깃든 영혼들의 생존을 위해 꼬리치레 도룡뇽을 대표자로 하여 인간의 언어로서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에 이르렀지요. 그러나 과연 자연을 개발과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는 개발 만능주의와 과학 만능주의에 눈이 멀어 세상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는 인간사회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나 있을까요? 예상했던대로 울산법원은 도룡뇽의 원고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극단적 무지를 보여주었지요.
그들이 천성산의 숲을 갈아 엎고 수많은 생명을 밟아 죽이고 있을 때 천성산이 두려워 온몸을 떨고 있다가 "거기 누구 없나요? 우리가 죽어가고 있어요. 누가 우리 좀 도와주세요."하고 지율스님에게 하던 말을, 그 생존의 몸부림을 그들이 알기라도 할까요?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라고 간주해버리는 인간의 병적인 무지와 업이 나는 두렵습니다. 과연 그들은 자연과 모든 생명체의 몸짓하나가 우리들과 어떻게 관계하고 있으며 자연과 우리 사이에 드리워진 인과관계의 망을 볼 수나 있을까요?
그들이 좀 더 빠르고 편하게 서울에서 부산을 오가며 온 정신을 놓고 달릴 때 그 고속철도의 바퀴에 깔려 죽어가는 뭇 생명들의 죽음의 비명을 듣기라도 할까요? 그 고속철도의 레일위에 머지않아 우리의 썩어가는 육신이 놓일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듣기라도 할까요? 이렇듯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데에만 온 정신이 쏠려 있는 세상에 맞서 지율스님 수척해진 작은 몸 하나로 맞서 싸우는 모습이 자꾸만 나의 눈망울을 적십니다.
꼬리치레 도룡뇽 뒤에 줄줄이 서있을 천성계곡에 서식하는 모든 동식물들....그들의 언어를 알아주지 못하는 인간사회를 향해 절규하는 비명이 천지를 뒤흔들고 있어도 우리 인간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 광경을 보지를 못합니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눈멀고 귀멀어 이젠 우리 목을 죄어오는 자연의 저주를 알지 못합니다. 왜 인간은 이런 고통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요? 이제 우리가 뿌리는 저주의 씨앗이 머지 않아 우리 자식세대에 그 자식의 자식 세대에 돌아올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이런 뭇 생명들의 고통과 업장을 한 마음 속에 다 담고서 지고가려는 지율스님의 힘겨운 어깨를 보면 다시 어쩔 수 없는 슬픔의 눈물이 흘러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