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 지향의 일본인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연말에 일본에 있었다. 처가 무척 여행을 좋아한 탓이기도 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던 데다가 여행이라는 매력을 나도 또한 바라고 있었다. 여행 전에 일본어까지는 배우지 못해도 일본인에 대해 조금은 알아야겠다는 마음에 몇 권의 책을 보았다. 여행의 맛의 하나는 풍경이요 또 하나는 맛이요. 나머지는 그 사람과 문화에 있다. 그런데 풍경과 맛은 어차피 외국이니 어느 정도 새로움과 호기심이라는 위안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면이 있음을 어쩔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과 문화인데 언어가 잘 안되니 책으로라도 허기짐을 조금 채우고 가려했다. 결론적으로 몇 권의 책을 읽었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서 갔다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텐류지(천룡사)에서 본 용 그림은 훌륭했다. 구름 속인 듯 용은 그 뚜렷하게 살아있는 눈매와 발톱들 사이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휘어진 몸의 부분부분은 구름 속에 묻혔으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회오리가 만들어내는 허공은 마치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어떤 다른 존재의 공간을 상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 텐류지의 아주 정제되었으면서도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와 그 호수 위에 분재처럼 가지를 뻗은 소나무 그리고 별채로 이어지는 디딤돌의 의미를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청수사 입구에 도열된 가게에 놓여진 부채와 도예공품들 그리고 교토 거리의 다양한 도시락도 나는 이 책을 접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축소지향"이라는 표현 속에 어쩌면 이렇게 일본의 특성을 일관되고 잘 캐치해내었는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이 책을 썼다는 자부심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책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이 첫번째 물음이었다. 경제대국이며 아시아의 유럽을 지향하는 일본인의 자존심에 어감부터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책 제목부터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직하고 열린 일본인이라면 식민지시대에서 살아온 저자가 모국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의 수인 처지를 겪어오고 난 후 그 지배자에게 대한 글을 썼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한국어의 아름다움에 대해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실테니까) 더구나 일본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일본인의 특성을 외부에서 바라보아서 제대로 정리된 일본론을 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가치는 결코 언어적 표현 몇 가지를 꼬투리삼아 내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수용하는 마음의 포용력 또한 일본인들의 오지랖이니까... 일본에서도 양심적인 학자들이 많아서인지 이 책은 그들에 의해 일본론의 고전처럼 소개되었고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서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현실은 늘 축소와 확대의 파동을 따라 등락한다. 때로는 어떤 영역에서는 축소의 성향이 강점을 가지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확대의 성향이 강점을 가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축소지향의 일본인 특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들의 강점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으며 나아가 어떻게 확대해야 하는가도 고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들은 이어령 선생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일본론에 대한 이 책이 일본인의 21세기의 세계적 요구와 역할에 부응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소지향의 20세기의 일본에서 결여된 세계사적 요구와 세계적 공동체의식에의 참여 등의 일본적인 과제를 그들 앞에 시원하게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펴는 나는 처음에는 일본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한국인의 우월성같은 것에 대한 시원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적어도 일본의 정원보다는 소쇄원같은 한국적인 자연스러움의 미가 좋았고 사찰의 종소리도 우리의 것이 훨씬 깊고 그윽한 맛이 있어 오랫동안 내 마음에 울려왔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의 과잉친절과 그 이면에 놓여진, 마음으로 교류할 수 없는 외부성이 나의 기질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내 오랜 삶의 습관처럼 일본보다는 한국적인 것이 끌리고 한국적인 것을 일본적인 것과 비교하여 나름대로의 우월감으로서 가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식민지배의 삶을 직접 살아온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마음이 얼마나 더 클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적 객관성 이외에 사족같은 감정과 분노를 붙이지 않은 선생님의 마음의 평정심이 부러웠다. 이 제대로 된 책 하나로 이미 그의 자존심과 당당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책을 덮을 때 쯤에는 오히려 이 책은 우리들을 다시 보게 하는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확대지향과 축소지향의 모든 면을 세상에 맞추어 함께 길러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세계 전자산업의 석권이라고 하는 축소지향적인 면과 세계의 것을 신속히 받아들여 세계시장에서 문화적 갈등없이 진출하고 나아가는 확대지향적인 면 모두가 우리들에게 있다. 또한 자연의 것을 우리들의 삶으로 그대로 축소시켜 끌어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미로서 느끼는 호연지기, 우리들의 고전문화에서 보이는 훌륭함들은 확대와 축소의 양면들에 통달했던 선현들의 지혜를 보게 한다.  그러나 세계공동체의식으로 세계사적 과제와 요구에 동참하고 세계인의 행복 실현으로 나아가려는 확대지향성은 이미 갖추어진 어느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과제로서 늘 앞에 놓여진 것이 아닐까? [작은 분재가 좁은 정원에 놓였을 때에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되지만 그것을 넓은 대지에 옮겨놓으면 그 미와 특색을 상실하고 말 것이라는 비유]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안의 배타성과 타인과의 소통의 장벽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우리들로서도 일본이라는 거울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이고 그것은 이어령 선생님이 이 책을 통해 한국에 전하는 메세지이기도 한 것이라고 생각드는 이유는 왜일까?  다시는 타국의 식민지배의 상처를 가져서는 안되며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이 반성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하고 또한 타국을 식민 지배 하지 않기 위해 우리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하고 말이다. 타인과 더불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준비가 우리에겐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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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1-0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읽는 달팽이님의 글이 단정합니다.
글 좋습니다.
이어령 교수님은 천재의 반열이시지요..


달팽이 2010-01-09 22:56   좋아요 0 | URL
이어령 교수님의 책이 이게 제겐 세번째입니다. 아직 사놓고 못 본 몇 권의 책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재의 반열이라는 표현처럼 타고난 석학이시라는 생각입니다. ㅎㅎ

2010-01-09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9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