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번도 쓴 일이 없다

외양간에서 논밭까지 고삐에 매여서 그는

뚜벅뚜벅 평생을 그곳만을 오고 간다

때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보면서도

저쪽에 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쟁기를 끌면서도 주인이 명령하는 대로

이려 하면 가고 워워 하면 서면 된다

콩깍지 여물에 배가 부르면

큰 눈을 꿈벅이며 식식 새김질을 할 뿐이다

 

도살장 앞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두어방울 눈물을 떨구기도 하지만 이내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시인의 6년 전의 시 한편과 올해 나온 시 한편이다.

왠지 그는 이제 뿔과 낙타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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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3-08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대 중반이후 뜸뜸이 시를 읽고 있습니다.
시의 힘이라니..
저에게는 많은 위안이 된답니다.
세상의 시인들께 많은 신세를 지고 있지요.
고맙답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도 물론 좋아합니다. 달팽이님.



달팽이 2008-03-0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이 다 되서야 저도 시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 단어라도
마음 속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글귀 있습니다.
내가 비록 쓸 순 없어도
읽고서 공감하는 글귀가 있어 감사합니다.
한사님.

2008-03-24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5 0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