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요지 - 주머니속대장경 301
허운 화상 지음 / 여시아문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책을 읽는 것이 예전에 읽었던 글인데도 달리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겨우 이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화두를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마음으로 가물하게 만져지는 것이 생겼다는 정도이다. 백성욱 선생님께서 '미륵존 여래불'하고 바치라고 하셨는데 이 책을 들다가 문득 책을 놓고 '미륵존 여래불'하면 그 마음이 올라오는 그 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가볍게 생기게 된다. 아직은 마음에서 크게 올라오는 것 정도라야 파악할 수 있는 정도이지 티끌처럼 올라오는 마음은 지나고 나서야 아! 하고 탄성을 지르게 된다.

  참선에 내가 인연이 있는 것일까? 잠자리에 앉아서는 제대로 한 시간도 못 버티고 망상과 잠 속으로 빠져드는 내가 그래도 왜 '참선'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인지 가끔 생각한다. 과거의 어느 생에 승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문득 꿈에서 눈 앞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은 스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 스님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정하게 앉아서 좌선을 하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자판을 두드린다. 그 자판을 두드리기 전에 마음이 먼저 올라온다. 그 마음이 영글기 전의 마음 바닥이 있다. 그 바닥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끝도 없이 잠시도 쉬지 않고 갖은 생각들을 만들어낸다. 미세하게 올라왔다가는 마음이 보태어지면 어느덧 내가 쉽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가물하다'라는 '현'자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인가? 정말 미세한 마음일수록 가물가물하다. 그 가물가물한 밑바닥에서 백년 3만 6천 여일 동안 쉬지 않고 망상이 일어난다. 그러니 불쌍한 대중인 내가 언제 한번 모두 놓아버리고 편히 쉴까!

  화두를 들려고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미륵존 여래불 하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있다. 거칠게 화두 들려고 하지 말고 가볍게 한 번씩 들고 들어서 이어주는 노력이 나에게 필요하다. 너무 마음이 앞서니 집중이 되어 머리만 아플 뿐이다. 한동안 머리가 아파 토할 것 같은 시간에서 한숨만 푹푹 쉬어대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아, 그래도 게을리 놀고 지나가는 시간들도 나에겐 필요했던가? 이런 식으로 나의 나태함이 정당화될 것은 아니지만 좀 쉬고(?) 난 뒤의 글들이 다시 마음에 붙는 맛이 있다.

  그렇지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한다는 것은 기연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느낀다. 일상의 일들에 쉽게 마음뺏기면서 설렁설렁해서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쉬는 듯 쉬지 않는 듯 해도 마음의 긴장은 뾰족하게 세워야 하며 올라오는 생각들이 어디에서 비롯되며 어디로 또 사라져가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섬세하고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럴 때 조금 공부에 힘이 붙는다. 그래서 잘 되면 화두가 나를 이끌 것이고 아니면 내가 끙끙 대며 화두를 끌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바퀴가 굴러갈 때까지..나는 가슴에 마음을 품는다. '직지인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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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다들 서재구경 다니느라 조금은 들떠있는 것 같아요.
님은 여전히 마음을 붙잡고 혹은 놓고 계신가요? 편안한 밤, 빗소리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사실은 조금 취해보고도 싶구요. 늘 마음공부가 되는 글들, 감사합니다.

달팽이 2007-06-14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침에 더욱 굵어진 빗줄기를 맞고 출근하였습니다.
그 빗줄기는 지금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뒷산의 초록이 한 층 더 무성해졌습니다.
음반 하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합니다.
북치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둥둥둥~

글샘 2007-06-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묘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면... 골똘해져야 하는데요...
저는 요즘 좀 산만한 상태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요즘 공부가 잘 되시는 것 같네요.

달팽이 2007-06-1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봐야 노력하는 수준이랍니다.^^
오늘 날씨가 좋군요..

혜덕화 2007-06-15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서재라 그런지 모든게 낯설군요. 전에는 즐찾 서재의 글이 첫화면에 보여서 좋았는데, 이젠 찾아 다녀야 보겠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_()_

달팽이 2007-06-17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그렇군요. 이젠 찾아다녀야 하는군요.
유월의 햇살이 데워집니다.
안녕히 보내세요.